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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Aug 04. 2020

라떼 마늘, 라떼 집밥.

쌀값이 얼마인지 모른다. 밥을 안해먹고 살아서가 아니다. 시골에 계신 작은아버님께서 두어 달에 한 번씩 20kg짜리 쌀을 보내주시기 때문이다. 가끔 시골집에 들르는 날이면 트렁크가 꽉 찰 정도로 먹거리를 챙겨주신다. 덕분에 식재료비에 대한 부담이 확 줄었던 게 사실이다. 이래저래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사람은 참 간사해서 택배 상자를 열었을 때 감자, 고구마가 아닌 '마늘'이 모습을 드러내면 벌어진 입이 더 크게 벌어지고 만다.


일 년에 한 번, 6월경이면 마늘이 한 박스 도착한다. 다듬는 과정이 녹록지 않은데도 유구한 역사 동안 모든 음식에 쓰이는 걸 보면 몸에 좋긴 한가 보다. 한국인의 몸에서는 특유의 마늘 냄새가 난다고도 할 정도로 우리는 마늘을 많이 소비한다. 국, 반찬, 김치의 기본양념으로 이용할 뿐 아니라 마늘 자체로 장아찌를 담가 먹기도 하고 구워 먹거나 검게 발효해서 먹기도 하니 말이다.

영국 셰프 존 토로드는 "한국인에게 마늘 조금이란 마늘 열 쪽을 의미한다."며 한국에서 마늘은 더 이상 향신료가 아니라고 했다. 올리브유에 마늘을 잔뜩 넣어 볶다가 파스타면을 함께 볶아 먹는 것으로 알고 있는 '알리오 올리오'의 경우, 정작 이탈리아 사람들은 약간의 마늘을 기름에 볶다가 향만 뽑아낸 뒤 건진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알리오 올리오에 넣는 한 움큼의 마늘을 본 이탈리아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장면에서는 되려 내가 의아했다. "왜? 알리오 올리오잖아!" 한국의 마늘 사랑이란...


다양한 음식에 많은 양을 소비하다 보니 웬만하면 깐 마늘을 이용하게 된다. 1kg을 구입하면 한참을 먹는다. 그런 나를 보며 친정엄마는 혀를 차신다.

"마늘 쌀 때 몇 접을 사놔~ 대 자르고 반 갈라서 뒷베란다에 신문지 깔고 그 위에서 바짝 말려놓으면 한참을 먹을 수 있는데? 김치도 담가 먹는 애가 마늘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깐 걸 사 먹어?"

엄마는 햇양파가 나올 때면 무안에 직접 전화를 거신다. 양파 역시 잔뜩 사서 마늘처럼 바짝 말려 잘 보관하면 양파가 비싸지는 계절까지 먹을 수 있단다. 그런 번거로움과 수고스러움을 난 늘 거부했다. 베란다 한편을 양파와 마늘이 잔뜩 차지하고 있는 상황도 싫었고 몇 시간 동안 까 봐야 작은 볼 하나밖에 나오지 않는 마늘 까기에 내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요즘엔 사시사철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구입할 수 있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니 시골에서 올라오는 마늘 한 박스는 '이걸 어쩐다...'라는 고민을 먼저 불러일으킨다.


얼마 전 맘 카페에 올라온 고민 하나는 나의 그것에서 한 발짝 더 나간 것이었다.

"아... 다진 마늘 사 먹는 사람인데 안 깐 마늘이 10킬로 생겼어요. 마늘 껍질을 한 번도 안 까 봤어요. 옥수수처럼 벗기면 되는 거겠죠? 근데 어떻게 보관해야 하나요? 다 까서 냉동하면 되나요?"

친절한 고수들의 답변이 이어졌다.

"까지 말고... 그냥 알만 톡톡 따서 신문지에 돌돌 말아 지퍼백에 넣어 김치냉장고에 넣어두세요. 먹을 때마다 꺼내서 쓰면 신선한 마늘을 오래 먹을 수 있어요."

"다 까고 갈아서 냉동실에 소분해 넣어요. 한번 할 땐 일인데 하고 나면 든든해요~"

"물에 담갔다 좀 불면 잘 까져요~"

고민 작성자는 다시 한번 질문을 했다.

"껍질 통째로 물에 담그는 건가요?"

"갈 때는 물을 같이 안 넣어도 갈리나요?"


마늘을 까 본 적이 없고 갈아본 적이 없다면 10kg의 마늘을 떠안았을 때 당황할 수 있다는 그 당연한 사실에 깜짝 놀랐다. 엄마세대가 마늘이 쌀 때 쟁여놓고 먹지 않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듯이, 마늘을 까고 가는 법 조차 모르는 다음 세대가 올 것임을 난 왜 미처 몰랐을까. 마늘, 양파뿐 아니라 반찬도 모두 사 먹는 세상의 변화를 왜 다른 세상 일이라고 여겼을까.

'우리 엄마'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반찬 대신 우리 동네 OO반찬집 대표 메뉴가 생각날 수 있다는 것. 오후만 되면 오늘 저녁 뭐할지를 고민하거나 이웃과 반찬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장면은 드라마에서만 볼 날이 올 수도 있다는 것. 집밥에 얽힌 소소한 추억을 끌어내는 것이 내 세대에서 끝날 수 있다는 것. 어쩌면 반찬가게마저도 사라져 '밥'이라는 건 식당에서만 먹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될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껏 집밥에 관해 20편이 넘는 글을 써왔다. 누군가에게는 음식과 사람에 대한 추억을 소환해 주는 글이었을 테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나때는 말이야'에 불과한 공감 포인트 제로의 글이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보통의 집밥'이라는 타이틀을 붙였지만 그 '보통'이라는 기준이 달라질 시대에 대해서는 고민을 해보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이미 '보통'의 집밥이라는 건 '2분 만에 데운 즉석밥에 반찬가게 사장님의 반찬을 먹는 것'으로 정의가 달라졌을 수 있다.


그런 고민을 하며 박스에 남은 마지막 마늘 30여 알을 바가지에 쓸어 담는다. 물에 담가 잠시 불려놓는다. TV를 틀어놓고 식탁에 자리를 잡는다. 양손에 라텍스 장갑을 끼고 마늘을 깐다. 껍질 벗긴 마늘이 깨끗한 볼에 성실히 쌓인다. 물에 여러 번 비벼가며 씻어 얇은 막까지 말끔히 제거한다. 채에 담아 물기를 없앤 마늘을 기계에 넣고 간다. 통에 담거나 지퍼백에 넣어 냉동실에 차곡차곡 쌓아둔다. 왠지 뿌듯하다. 반찬을 하거나 김치를 할 때 하나씩 꺼내 쓰다 보면 다시 마늘 철이 돌아오고 시골에서는 어김없이 마늘 한 박스가 배달 온다.


마늘을 잔뜩 넣은 알리오 올리오 스파게티와 마늘과 새우 양을 비슷하게 넣은 감바쓰를 만든다. 김치찌개에도 한 큰 술, 미역국과 콩나물국에도 한 큰 술을 넣어 끓인다. 나물에도 넣어 조물조물 무치고 멸치꽈리고추볶음에도 편으로 썰어 넣어 함께 볶는다. 고기를 굽는 불판 한편에서 마늘을 잔뜩 구워준다. 그러면서 쌈 싸 먹을 때 마늘장아찌를 또 곁들여 먹는다. 김치에는 마늘을 많이 넣을수록 맛있다고 했으니 영혼까지 끌어모아 팍팍 넣어준다.


나때는 말이야. 그렇게 마늘을 소비했단다.

나때는 말이야. 그렇게 집밥을 해 먹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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