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 하나에 백만 원?

by 늘봄유정

안방과 건너방 사이 벽 장식장 한 칸을 꽉 채운 머그컵이 총 마흔 개다.

한 번도 컵으로서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는 아이들. 컵으로 태어나 누군가의 목마른 입을 적셔주거나 주인장의 독서시간 벗이 되어줄 커피잔이 되기를 꿈꾸었겠으나, 그저 어느 집 허술한 장식장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마흔 개의 컵 중 30개 정도는 여행지에서 구입해온 것들이다. 30개국을 돌아다닌 것은 아니고, 여행지 한 군데에서 들렀던 명소마다 사모은 것이 그리됐다. 미국에서 산 것이 대부분이고 그 외 마카오, 홍콩, 일본, 사이판, 괌 정도가 몇 개 있다. 인형, 우표, 티스푼을 수집하는 다른 이들과 같은 이유로 여행의 전리품처럼 모으게 됐다. 언젠가 커피숍을 하게 된다면 벽 한쪽면을 장식해도 좋으리라 생각했던 적도 있다. 그때가 되더라도 컵으로 사용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장식품으로서의 컵.


혹은, ''나 여기 가봤소!'라며 으스대기 위한 용도이기도 하며 컵 하나를 볼 때마다 여행지에서의 순간을 추억하기 위함이기도 하겠다. 그도 아니면, 가계 살림은 생각지도 않고 일단 떠나고 보자 식이었던 나와 남편의 무감각한 경제관념을 탓하기 위한 용도도 되겠다. 여행지마다 얽힌 이야기가 새록새록 피어나기보다는 컵 하나가 얼마만큼의 여행 빚을 짊어지고 있는지를 계산하는 게 쉽고 빠를 것 같다. 적어도 하나에 백만 원은 되지 않을까...

그렇게 비싼 값어치를 갖고 있어서 못 버리는 것일 수도 있겠다.


무튼, 늘어놓고 보니 쓸데없는 일에 돈을 쓰고 공을 들였다. 하나에 만원이 훌쩍 넘는 돈을 지불했으며 갖고 올 때 깨질까 싶어 꽁꽁 싸매고 짐 사이사이에 끼워 넣느라 얼마나 신경 썼던가... 정리하려고 보니 버리기는 아깝고 남 주기는 더 아깝고, 앞으로 컵의 본래 용도를 찾아줄지도 확신이 안 서고...


그보다도, 여행을 가게 된다면 더 이상 컵을 안 살 자신은 있을까?


꺼내서 하나하나 사진으로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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