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처럼 살아가 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 친대도 어떤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 없는 바위처럼 살자꾸나
바람에 흔들리는 건 뿌리가 얕은 갈대일 뿐 대지에 깊이 박힌 저 바위는 굳세게도 서 있으니
우리 모두 절망에 굴하지 않고 시련 속에 자신을 깨우쳐가며 마침내 올 해방세상 주춧돌이 될 바위처럼 살자꾸나
대학교 1학년 OT부터 시작해 MT, 농활, 시위 현장 곳곳에서 부르던, <바위처럼>이라는 노래다. 양손으로 무릎을 두 번 치면서 시작하는 율동까지 곁들이면 가사가 주는 묵직함은 잊히고 똥꼬 발랄한 노래로 탈바꿈했다. 흡사 축제의 서막을 알리기라도 하는 듯 어디서나 시작은 이 노래였던 것 같다. 거실 서랍에서 발견한 '꽃다지' 테이프 뒷면 세 번째에 수록되어 있었다.
거실 TV 아래 서랍장에는 200개에 달하는 CD와 카세트테이프가 있다. 앞으로 하나하나 곱씹어 볼 예정이지만 그중 유독 눈에 들어오는 덩어리들이 있다. 소위'쟁가'라고 부르던 민중가요 수록 테이프가 그들이다. 세어보니 총 9개. 플레이어로 돌려보니 약간 늘어지기는 하지만 아직 들을만하다. 잊은 줄 알았는데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게 되는 노래도 아직 있다. 20여 년이 지났는데도 버리지 않았다니... 잊지 않았다니...
누구한테 잡혀갈 걱정은 없어진 지 오래니 그게 두려워 감춰뒀던 것은 아닐 테고, 누가 보면 엄청난 학생운동가인 줄 알까 봐 꽁꽁 숨겨두었었나 보다.
그 시절, 정경대학 학생회의 선전국장을 지내고 현수막과 대자보에 선전문구를 쓰던 사람은 맞다. 하지만 무슨 대단한 '의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요, 불의에 항거하는 정의로운 사람도 아니었다. 정치학도라는 의무감 때문이었다는 것이 한 가지 이유요, 나머지 하나는... 노래가 좋았다는 것이다.
진짜 순수하게, 수백 명이 어울려 떼창으로 부르는 민중가요가 좋았다. 가사도 마음에 와 닿았고 가수들의 절절한 목소리도 좋았다. 그렇게 어울릴 때의 가슴 벅참이 좋았다. 단지 그 이유로 학생운동을 했다. 창피하지만 사실이다.
학교를 오가던 지하철 안,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재생되는 민중가요를 길게 늘어뜨린 이어폰으로 듣고 있노라면 독립운동가라도 된 것 같은 비장미를 느끼곤 했다. 실제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무엇을 위해 투쟁해야 하고 무엇을 쟁취해야 하는지는 모른 채 노래만 불러재꼈다.
다른 이들은 어땠을까... 세월이 흘러 회사원, 농부, 아나운서, 공무원, 주부가 되어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선배, 동기, 후배들은 그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당시의 나를 생각하면 이 노래들을 불러대는 게 부끄럽지만 오히려 지금의 나는, 머리 위에서 불끈 쥔 주먹을 절도 있게 앞뒤로 흔들며 절절하고 당당하게 부를 수 있다.
노래 가사처럼,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고, 바위처럼 당당하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알고 있기에 흔들림 없는 삶을 살고 싶고,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진짜 사람이고 싶기 때문이다.
그저 나의 아픔만을 생각하며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투쟁하고 쟁취해야 할 것은 바로 내 안에 있음을 알고 온몸 부딪히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