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큰 아이의 임신과 출산은 굉장히 용의주도한 계획으로 진행됐다.
결혼 후 임신을 계획하며 산부인과를 찾아가 자궁 상태를 확인했다. 따뜻한 봄날을 출산 예정일로 잡고 임신 가능일을 계산했다. 합방일 한 달 전부터 커피와 인스턴트 라면을 끊었으며 남편의 금연과 금주를 종용했다. 경건하게 거사를 치른 후 바로 임신을 확인했다. 시작이 이러했으니 임신 내내 들인 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신기한 태교 나라>를 구독했으며 임산부 요가, 임산부 수영, 남편과 함께하는 출산교실까지 극성맞게 돌아다녔다. '임신 출산 대백과'같은 류의 책 몇 권을 쌓아놓고 읽고 또 읽으며 내용을 숙지했다. 출산을 한 달 앞두고 계획표를 세운 뒤 착착 진행했다.
출산예정일 열흘 전 갑자기 진통이 시작되었던 밤, 남편은 음주중이었다.
야심한 밤 혼자서, 미리 공부한 대로 냉장고 정리를 시작했다. 한밤중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왔다. 며칠 동안 비울 집을 생각해 화장실 청소를 비롯한 대청소를 했으며 남편의 양말이 부족할까 걱정돼 잔뜩 빨아놓고 널어놓았다.
둘째를 낳을 때도 그렇게 준비했다.
여행을 갈 때도 남겨질 남편과 아들들을 위해 며칠간의 먹거리를 챙겨두었다. 엄마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게 빨래도 미리미리 해두었다.
서울시 임신출산정보센터를 맘껏 욕하지 못하는 것은 나의 이런 과거 때문이다.
어제 여론의 질타를 받았던 '서울시 임신 출산 정보센터'의 게시 내용 상당수는 20년 전 내 모습을 그대로 베껴놓은 듯한 설명이었다. 만일 지금 당장 임신을 한다고 해도 다르지 않을 모습.
2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여전히 저런 매뉴얼이 돌고 있다는 것은 과거 나와 같았던 임산부들의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왜 만삭의 몸으로 숨쉬기조차 힘든 나 자신을 먼저 챙기지 않았을까?
왜 서른이 다 된 남편이 밥도 잘 챙겨 먹고 빨래도 할 수 있는 성인임을 인정하지 않았을까?
왜 A부터 Z까지 다 준비해 놓는 것이 현명한 아내이자 엄마의 미덕이라고 생각했을까?
왜 그런 것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까?
'그 당시에는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
'그때는 그게 잘못됐다는 걸 인지하지 못해서...'
라는 것은 비겁한 변명이다. 분명 그런 그릇된 정서에 반기를 들었던 여성은 있었고 주변의 따가운 눈총을 견뎌낸 이들이 있었다. <며느라기>에 나오는 주인공의 형님 같은 사람들이 말이다.
지금은 온몸에 굳은살로 박혀버린 생활방식이 되어버렸다. 내일 당장 출산을 하러 가는 게 아닌데도 생필품을 점검하고 밑반찬을 챙기며 옷을 챙겨 놓는다. 어디까지가 주부의 역할이고 어디서부터가 그들의 자립을 해치는 경계인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며느라기를 한참 지나 이제는 시어머니가 될 날이 더 가까워진 시점이다. <셤니기>라고 명명해볼까? 슬기로운 셤니기를 보내기 위한 고민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