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샀다

by 늘봄유정

화장대 서랍 속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외국 지폐들을 모았다. 중국 위완화, 일본 엔화, 홍콩 달러, 베트남 동, 필리핀 페소가 골고루 조금씩 있었다. 가지런히 한 봉투에 모았다.


여행이 끝난 후 집으로 오는 공항에서 커피라도 사 먹어가며 남기지 않으려 애썼지만 결국은 다시 함께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온 돈이다. 언젠가 그 나라를 다시 방문하게 될 때 사용하자며 남겨둔 이들. 그 대책 없는 기다림과 막연한 희망이 갑자기 싫었다. 그래서 몽땅 들고 은행으로 갔다.


516,644원

외국 통화를 팔고 통장에 입금받은 돈이었다.

팔아버린 외국 통화와 정확히 같은 가치의 한화를 받았으니 손해 본 것도 아니요 꽁돈이 생겼으니 기쁘기도 하건만... 다시는, 어느 나라도 가지 못할 것 같다는 선고 같기도 해서 씁쓸했다.

어쩌면 나는, 가끔씩 낯선 그네들을 만지작거리며 이국의 태양이나 바닷가, 도시의 냄새를 그리워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남편의 출장 덕에 처음 접한 화폐들을 만지작거릴 때 입술을 삐죽거리며 셈을 부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다음 여행을 기약했겠지.


그런데, 과연 우리의 다음 여행은 언제가 될까? 언제쯤이면 마스크 없이, 도착 후 자가격리 같은 거 없이 예전처럼 서로를 넘나들 수 있을까. 그날이 오기는 할까.

막연한 기대와 희망 때문에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고 놓치고 있는 것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

전당포에 저당 잡혔던 '현재'와 집에 고이 모셔두었던 '미래'를 맞바꾸고 50만 원을 챙겼다. 그 돈으로 현재를 살기로 결심했다.


예전에 개콘에서 김대희가 했던 유행어가 생각났다.

"돈 많이 벌면 뭐하겠노, 기분 좋~~~다고 소고기 사 묵겠지."

외국화폐 몽땅 환전하면 뭐하겠노~~ 기분 좋~~다고 소고기 사묵, 아니 학원비 결제하겠지~


소고기 대신 학원비 결제를 하는...웃픈 현재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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