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초

by 늘봄유정

봄이다.

월요일마다 서는 아파트 장에 화분 아저씨가 등장하는 것으로 봄을 체감한다. 겨우내 집안에서 무성하게 자라난 화분의 분갈이뿐 아니라 짧은 생을 마감한 식물의 빈자리를 다른 식물로 채우는 시기다. 냉정해 보이지만 빈 화분을 그냥 놔두는 것이 더 힘들다.


아저씨는 정확히 지난주부터 나타나셨다. 작년 11월을 마지막으로 꼬박 석 달만이다. 어머님 댁에서 가져온 작은 화분 두 개와 지인에게서 받은 화분 두 개를 들고 쪼르르 내려가 늘 해왔던 요구조건을 제시했다.

"사장님~ 벌레 잘 안 꼬이고 제일 안 죽는 애로 추천해주세요~"

사장님은 화분의 사이즈와 색상, 나의 요구조건을 면밀히 검토하신 후 이것저것 추천해주신다.

크게 친절하지도 아주 무뚝뚝하지도 않은 사장님이시지만 "아... 그건 너무 비싸요~ 기껏 데려와 놓고 죽으면 돈 아깝잖아요~"라는 나의 말에는 언짢은 심기를 그대로 드러내신다.

"왜 데려가기 전에 죽일 생각부터 해요~? 그러면 안돼요~ 잘 키울 생각을 해야지~ 물 잘 주고 신경 쓰면 안 죽어요~"

뜨끔해진 나는 화초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되고 군소리 없이 주시는 대로 받아온다. 집에 와서 생각해보면 사장님 수완이 대단하다 싶다.

왁스플라워와 매화 분재

지난주 새로 들인 화초는 매화나무 분재와 왁스 플라워. 둘 다 예쁜 꽃이 피는 아이들이라 제대로 봄을 보여주고 있다. 아침마다 새로 피어난 꽃송이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다가 둘러보니 집안 곳곳에 서럽게 찌그러져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작년 여름, 이사 가는 동네 언니가 들고 가기 힘들다며 화분 몇 개를 준다고 했다. 원예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오던 시절이라 이게 웬 횡재인가 싶어 덥석 받겠노라 했다. 그렇게 집에 들인 화분이 4개였는데, 하나같이 성한 몰골이 아니었다. 윗 둥이 볼썽사납게 잘려나간 키 큰 선인장, 잎이 나다가 떨어지고 나다가 떨어지곤 하는 파키라 , 무성의하게 심어진 염좌,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났다는 아라우카리아.

신축 아파트로 이사 가서 화분을 몽땅 새로 들였다는 언니가 보내 준 사진에는 싱싱하고 파릇파릇한 화분들이 정글을 이루고 있었다. 새 식구를 맞이하기 위해 오랫동안 함께했던 아이들을 버리고 간 거였다. 길에다 버릴 수는 없으니 친한 나에게 맡기면서 죄책감을 덜었나 보다. 그런데 어쩌나... 난 원예 똥 손인데...

우리집에 버려진 유기초들. 다시 잘 살아보자~


2년 반전, 교습소를 오픈하며 받은 화분을 필두로 화분 키우기에 흥미를 가졌다. 생각보다 쑥쑥 잘 자라는 녀석들이 신기해 신경 썼더니 사랑을 먹고 더 잘 자랐다. 그런데 언니가 버리고 간 녀석들은 살아있으나 생기가 없었다. 죽은 건지 산 건지, 죽고 싶은 건지 살고 싶은 건지. 그나마 염좌는 해를 향해 쑥쑥 자라나고는 있는데 속없이 신난 거 같아 슬퍼 보였다. 버려졌다는 걸 온몸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봄이다.

주인에게서 버려진 슬픔에서 그만 나오기를...

쑥쑥 자라지는 않아도 좋으니 우리 집에서 행복해지기를...


사진을 찍으며 보니 우리 집에 화분이 많이 늘었다.
우리집 생장왕, 홍페페. 아이들 수학선생님이 내 교습소개업때 주신 선물이다. 페페만큼만 잘됐어도 폐업은 면했을텐데...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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