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은 다를 줄 알았는데 올해도 '3분의 2 등교', '온라인 클래스'등의 단어들이 여전히 등장한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둘째 아이는 개학이 얼마 안 남았다며 좋아하지만 첫 주부터 온라인 클래스라 개학 맛은 덜할듯하다. 나 역시 개학을 해도 예전과 같은 해방감은 맛볼 수 없다....
이 와중에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아이가 2학년이 된다는 어머니께서는 격양된 목소리를 의식적으로 차분하게 가라앉히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하셨다. 지난 한 해 코로나로 온라인 클래스가 확대되던 과정에서 당신의 아이가 휴대폰 과몰입에 빠져 삶이 엉망이 되었다는 사연이었다. 아직까지 학부모회장의 임기가 끝나지 않은 나에게 부탁하기를, 학교에서만이라도 휴대폰 사용이 불가능하게 등교 시 수거 조치해줄 것을 건의해 달라는 것이었다.
휴대폰 사용에 대해서는 학교마다 사정이 다르다. 학생 자율에 맡겨 수업시간에만 규제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등교와 동시에 일괄 수거하는 곳도 있다. 우리 아이 학교의 경우는 몇 년 전 학생 대토론회를 통해 최소한의 규칙만 정하고 자율 사용으로 결정이 된 사항이었다. 그러니 이 학부모님의 의견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바꾸자는 것.
학부모님의 주장은 이러했다.
첫째,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
온라인 클래스를 하면서 어쩔 수 없이 휴대폰에 대한 노출이 심각해진 상황이다. 직장맘뿐 아니라 전업주부인 엄마도 아이의 휴대폰 사용을 계속 지켜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수업을 핑계로 게임을 한다거나 영상을 보는 것에 무방비로 내던져진 아이들이니 등교 때 만이라도 휴대폰에서 멀어질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둘째, 사용 금지 수칙이 제대로 안 지켜진다.
수업시간에는 사용하지 않도록 정해져 있지만 교실 내 사각지대 학생들의 사용까지 규제할 수는 없다. 게다가 개인 칸막이까지 설치한 지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 사용하다 걸려도 사정을 얘기하면 하루 압수, 일주일 압수 등의 처벌이 제대로 안 지켜진다.
난 그저 들어주기만 해야 하는 입장이라 당시에는 주장에 반하는 말씀은 드리지 못했지만,
첫째, 학생들의 결정이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때로 실수할 수도 있고 어긋날 수도 있지만 학생들이 스스로 만들어놓은 규칙과 약속이니 지키려는 노력을 하리라 믿어주는 것도 어른들의 몫이다. 자발적, 주도적인 아이로 성장하기를 원하면서 또다시 규제, 제한의 규칙들을 제시할 수는 없다.
둘째,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휴대폰 과몰입이 심각한 문제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이의 학업과 생활을 마친 원인인지 다른 원인이 있는지는 살펴보아야 한다. 대체로 휴대폰이나 게임과몰입은 무엇의 원인이기보다는 결과인 경우가 더 많다. 해소되지 않는 갈등, 불만 등이 원인이 되어 나타나는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학교에서만이라도 휴대폰을 못하게 막는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생각보다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가 있는지를 면밀히 검토해보아야 한다.
오죽 답답했으면 얼굴도 모르는 낯선 이에게 전화해 부탁했을까,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아들 둘을 키우는 엄마로서, 특히나 나에게 엄마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들었던 아이를 키웠던 사람으로서, 그분이 느꼈을 막막함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동시에 아이가 가진 가능성을 믿어야 한다는 것도 안다. 엄마의 기대와 소망을 내려놓고 아이가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기를 기다려줘야 한다. 속이 답답해 썩을 것 같지만 맛있는 밥 한 끼 해주는 것을 엄마의 최대 소임으로 생각하면서 말이다...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육아의 궁극적인 목적은 독립시키는 거다."
나 역시 다시 다짐해본다.
관심과 참견의 경계를 잘 알며 아이의 독립을 응원하는 부모가 되어야겠다고.
새로운 대학에 진학하여 작년에 다니던 학교의 자퇴 원서를 제출하는 큰 아이의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 신청은 제대로 했는지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입학한 학교의 수강신청은 잘했는지, 시간표는 잘 짰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이런 엄마를 아이는 한마디로 무력화시켰다.
"내가 알아서 할게!"
너의 독립을 응원한다!
그래서 오늘의 Topic은...
< 고등학생의 교내 휴대폰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 >
< 등교 시 전 학생의 휴대폰을 수거해야 한다. >
* 작은 아들에게 물었다.
"너는 어떠니? 게임이나 휴대폰 사용에 있어 힘든 부분이 있어?"
"우리집은 초등학교 때부터 규칙이 있었잖아. 주중 게임 금지, 주말엔 밤 9시까지 무제한. 시험 2주 전 게임 금지. 그래서 지금도 문제없는 것 같아."
그랬다. 우리 집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아이들과 했던 약속이 있었다.
'주중에 매일 찔끔찔끔 한 시간씩 할래, 주말에 실컷 할래?' 주중에 게임하면 그다음 날 학교에 가서 뇌에 잔상이 남아 공부도 못하게 된다는 근거를 얘기해 주었다.
아이들은 주말 새벽부터 일어나 밥 먹고 미친 듯이 게임만 했다. 그 모습을 정 보기 힘들 때면 핑계를 만들어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양가 조부모님과의 식사, 영화 관람 등등...
약속은 습관이 되었고 게임에 대한 갈증 역시 해소해주었다. 최고의 방법은 아니었겠지만 나로서는 최선이었다. 엄마의 고민을 알아줄 나이가 된 작은 아이는 지난 1월부터 게임을 끊었다. 휴대폰도 일반폰으로 바꿨다. 설연휴때만 실컷 게임을 한다더니 나흘동안 잠도 아껴가며 게임을 했다. 그러더니 다시 단번에 손절했다. 게임에 관해서는 완벽한 독립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