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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Mar 13. 2021

맛있는 된장 만드는 비법을 전수합니다

작년보다 한 달이나 늦어버렸다.

매년 달력에 꼬박꼬박 체크하고 계획대로 하던 일이지만 올해는 한 달을 늦춘 정당한 이유가 있다.


휴대폰 달력을 들여다보니 작년에는 2월 5일에  <된장 담그기>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3월 10일에 된장을 담갔다. 올해는 왜 이리 늦어졌을까?

성질 급한 나는 겨울이 오기도 전에 된장을 항아리에서 퍼내 냉장고로 옮겼더랬다. 더 놔두었다가 곰팡이가 피거나 어떻게 되는 건 아닐까 지레 겁을 먹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도 된장 맛에는 크게 문제가 없다고 여겼다. '된장이 된장이지 뭐!'라고 업신여기는 태도도 있었고 된장찌개를 끓이거나 쌈장을 만들면 제법 된장 맛이 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꾹 참았다. 된장을 가능하면 오래오래 항아리에 품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 데는 메주를 공급해주는 지인의 당부가 큰 몫을 했다.

"가능하면 한 해 동안은 항아리에서 숙성시키고 그다음에 냉장고에 넣든, 나눠 먹든 하셔요~"

게다가, 작년 한 해 집콕 생활을 하면서 매일매일 된장을 들여다보니 된장이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제발~ 조금만 더 항아리 안에 있게 해 줘~~ 제발~~~ 급하게 굴지 좀 말고 조금만 더 기다려봐~"

뚜껑을 열고 그들의 아우성을 듣노라면 차마 냉장고로 보낼 수 없었다. 위에 뿌려놓은 고추씨 때문인지 곰팡이도 안보였고 구수한 냄새가 솔솔 났다. 안심을 하고 뚜껑을 닫아주었다. 그렇게 이번 된장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모두 보내고 다시 봄을 맞이했다.


된장 윗면을 꼼꼼히 덮은 고추씨를 걷어내니 고운 빛깔의 된장이 드러났다. 나무 주걱으로 퍼내서 준비한 유리병과 유리 밀폐용기에 나누어 담았다. 콩 한말 분량, 큰 세 덩어리의 메주로 만든 된장은 우리 네 식구가 일 년 동안 소화하기에 어마어마한 양이다. 그래서 늘 양가 부모님과 지인들에게 나눠 드린다.


소분한 된장 다섯 병을 들고 길을 나섰다. 지근거리에 있는 지인들의 집을 한 바퀴 돌며 집 앞에 서프라이즈로 놓아두었다. 다섯 집을 다 돌고 나서 함께하는 단체 톡방에 쿠팡 배달 기사님처럼 사진을 올리고 '배달 완료'를 누를 계획이었다. 세 번째 집을 돌았을 무렵, 집으로 귀가하던 지인에게 된장병은 발각되었고 바로 톡방이 시끌시끌해졌다.


"범... 유정이야? ㅎㅎ"

"오~ 부럽~ 잠깐! 혹시 나도?"

"혹시나 하고 보니 나도~"

"나도 쓰레기 버리러 나가다가 발견!"

"오늘은 왜 벨도 안 누르고 그냥 가니? ㅎㅎ 내가 창문 밖으로 소리 지를까 봐? ㅋㅋ"

"어머~~ 된장 맛 미쳤다~ 살짝 찍어먹었는데 짜지도 않고 맛있어~~~"

"내일 딸기 생크림 케이크에 커피 사줄게~"


이 맛에 매년 된장을 담가 나누는가 싶다. 작은 된장병 하나에도 호들갑 떨어주는 사람들.

며칠 뒤 만난 그들은 또다시 한번 날 띄워줬다.

"이런 건 그냥 돈 받고 팔아라~ 대놓고 사 먹게~"

"빈말이 아니라 올해는 유난히 맛있어. 남편이 그러더라. 이번 된장엔 미원 친 거 아니냐고. 하하하하하"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인 줄은 알지만, 내가 먹기에도 올해 된장은 유난히 맛있다. 그 원인을 난, 두 가지로 분석했다.

하나는, 4계절을 모두 항아리에서 보냈다는 것.

또 하나는, 갑작스러운 집콕생활 때문에 매일 뚜껑을 열어 말을 걸어줄 수 있었다는 것.


올해는 어떤 한 해가 될지 모르겠다. 개학과 동시에 슬슬 일정이 늘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비법을 알아냈으니 다시 야심 차게 새 된장을 담아본다. 맛있는 된장을 만들겠다는 욕심과 지인들의 환호성 한 바가지를 듣고픈 바람 때문이다.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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