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힐 두려움

전역까지 D-544

by 늘봄유정

"나, 당신 어학연수 갔을 때랑 같은 기분이야..."

"그 정도로 내가 보고 싶었어?"

"그럼.... 그땐 그랬지... ㅋㅋ"


너와 헤어진 후 집에 오며 아빠와 나눈 대화란다.

1997년, 연애를 한 지 1년이 되던 때 아빠는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갔단다. 복학생이었던 아빠와 연애를 했으니 엄마는 고무신 생활도 못해봤는데 어학연수라니... 갑작스러운 생이별에 애달프던 마음이 아직도 생생하다.


무엇 때문에 그리도 슬펐던 걸까, 눈물로 몇 날 며칠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시차 때문에 늦은 밤이나 새벽에 전화통화가 가능해서 엄마는 엄마 방에 전화를 한대 더 놓았단다. 번호를 하나 개설한 거지. 언제 전화가 올지 모르니 컴퓨터도 하지 않았어. 유니텔이라는 걸 했었는데, 접속을 하면 전화가 통화 중이던 시절이거든. 5분 대기조처럼 전화기 옆에 딱 붙어 있었지. 그런 엄마를 외할아버지, 할머니는 한심해했단다.

라떼는 국제전화가 아주 비쌌고 감도 좋지 않았단다. 아빠가 어학연수 간 동안 전화요금이 한 달에 20,30만 원 나왔었어. 지금처럼 카톡 무료통화가 있길 했나? 그냥 쌩으로 돈을 내며 전화를 했지. 엄마는 그때나 지금이나 간땡이가 너무 크다... 미친 거지. 그 돈 아꼈으면 뭐라도 했을 텐데 당시엔 당연히 써야 되는 돈이라고 생각했네. 외할머니한테 전화요금 통지서를 들킬까 봐 노심초사했단다. 걸리면 얼마나 혼났겠니. 아르바이트 한 돈을 모두 국제전화 요금에 쏟아부었으니... 알잖냐. 외할머니 폭풍 잔소리.


IMF가 터지는 바람에 아빠는 3개월간의 짧은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왔어. 돈이 없었던 건 아니고 엄마의 눈물바람에 돌아왔다는 게 더 맞을 것 같아. 대학 겨울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엄마가 미국으로 날아갔거든. 고걸 못 참고 말이다.


미국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그제야 알았지. 할아버지가 IMF로 부도를 맞으셨고 우리 집이 쫄딱 망했다는 걸.

엄마는 그렇게 철이 없었단다. 그저 네 아빠밖에 몰랐던 시절이야. 아마 아빠가 입대를 했더라면 탈영을 시켰을지도 모르겠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맹목적이었을까?

무엇 때문에 한 달에 기십만원의 전화요금을 지불했으며, 가세가 기우는 것도 외면한 채 남자 친구를 만나러 미국까지 한달음에 날아갔을까?

그리움? 보고 싶다는 마음? 그걸로는 설명이 안돼.


잊히는 것이 두려웠단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에 매몰되어서 그 사람이 나를 잊으면 어떡하나, 새 사람에 마음 빼앗기면 어쩌나 노심초사했단다. 사랑을 모르던 시절의 얘기다. 사랑한다면 그깟 물리적 거리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다. 가까이 있어도 얼마든 잊힐 수 있고 멀리 있어도 얼마든 깊어질 수 있는데...

지금이라면, '잊을 테면 잊어라, 빼앗기든지 말든지 네 맘이니 맘대로 해라'의 심정인데 말이다. 하하하.

잊히는 게 두려운 것도 사랑일까? 그 정도로 믿음이 없는 건 사랑이 아닌 거 아닐까?


25년 가까이 지난 지금.

엄마는 다시 두렵네.

연인과는 달리 난 엄마니까 잊힐 일 없다고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이 앞선다.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엄마 얼굴이 안 그려진다거나, 친구들 생각에 엄마는 저만치 뒤로 밀려나 있는 건 아닐까... 질투도 나고 심술도 난다.


불현듯 생각이 났는데 말이다.

엄마는 고새를 못 참고 미국으로 날아갔는데, 아빠는 고새를 못 참고 남미에서 유학 온 가브리엘라라는 여학생과 썸을 타고 있더라는.... 하마터면 넌 파란 눈의 아이가 될뻔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맘에서 멀어지는 거 맞더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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