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까지 D-543
아들아.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작년부터 시작된 아빠의 도전이 종지부를 찍을지, 다시 시작될지를 판가름하는 날.
아빠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더구나. 어제만 유독 더웠던 것도 아니고 덥다고 못 자는 사람도 아니면서 열대야 탓을 하더라. 뒤척이다 일어나 물 마시고 그래도 잠이 안 오면 책을 펴보다가 동틀 녘 잠깐 눈을 붙이더라. 덕분에 엄마도 비몽사몽으로 운전해 아빠를 시험장에 데려다주었네.
작년 수능날이 생각나더라.
반수를 하느라 두 번째 수능을 보던 너는 고3 때와는 달랐다. 수능 도시락 반찬을 비엔나 햄, 분홍 소시지, 베이컨으로 싸 달라며 소풍 가듯 들뜨던 첫해와 달리 작년엔 빈속이 더 편할 것 같다며 안 싸도 된다고까지 했지. 새벽 1시까지 책을 보다 잠들더니 수능 당일 새벽 일찍 책상에 앉아 있는 널 발견하고 깜짝 놀랐어.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스무 살 버전...
얼마나 긴장하는지, 시험에 대한 기대가 얼마큼인지가 전해져 짠했던 기억이 난다.
2019년과 2020년의 네 수능 시험.
작년 5월의 아빠 자격증 시험 1차와 12월 2차.
오늘, 아빠의 두 번째 2차 시험 도전.
우리 집은 3년째 수험생들로 가득한데, 내년엔 네 동생의 입시가 있구나. 재수 없이 내년에 끝내주면 좋으련만 그게 계획대로 될는지...
시험 보고 떨어지고, 시험 보고 합격하고, 또 시험 보고 시험 보고 시험 보고...
이번 시험에 합격하면 다음엔 어떤 시험에 도전할지를 고민하는 네 아빠. 정말 못 말리지? 가만히 있으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사람.
전인권이라는 가수의 < 돌고 돌고 돌고 >라는 노랫가사같은 게 우리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해가 뜨고 해가 지면
달이 뜨고 다시 해가 뜨고
꽃이 피고 꽃이 피고
새가 날고 날고
움직이고 움직이고
바빠지고 바빠지고
걷는 사람 뛰는 사람
서로 다르게 같은 시간 속에
다시 돌고 돌고 돌고
춤을 추듯 돌고 노래하며
다시 돌고 돌고 돌고 돌고
운명처럼 만났다가
헤어지고 소문 되고
아쉬워지고 아쉬워지고
헤매이다 헤매이다
다시 시작하고 시작하고
다시 계획하고 계획하고
우는 사람 웃는 사람
서로 다르게 같은 시간 속에
다시 돌고 돌고 돌고
춤을 추듯 돌고 노래하며
다시 돌고 돌고 돌고
어두운 곳 밝은 곳도
앞서다가 뒤서다가
다시 돌고 돌고 돌고 돌고
다시 돌고
네가 살아온 20년을 돌이켜보니 참 열심히 살았더구나. 입대하기 전 맨날 누워 잠만 잔다고 구박했는데 따지고 보면 남들 자는 시간만큼만 잔 거더라. 새벽 5시쯤 잠들어 낮 12시에 일어났으니 7시간 잔 건데 엄마는 중천에 뜬 해 눈치만 봤다. 오후에 일어나 학교 수업 듣고 아르바이트하고 조별 과제도 하고 게임도 하고 술도 마시고, 하루를 바쁘게 살고 있었는데 내 시간을 기준으로 잔소리를 해댔구나. 미안하다.
너는 꽤 괜찮은 학점으로 네 반년을 증명했지. 코로나로 학점 인플레 시대가 됐다지만 어쨌든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학생에게 학점을 주지는 않을 테니까.
그러고 보니 엄마는 늘 그런식이었던 것 같다.
널 믿는다고 말만 했지 실제로는 의심하고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 조금만 늘어지는 꼴도 못 봤고 너의 노력을 성에 차지 않아 했네. 그러다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들고 오면 그제야 엉덩이 두드려주고 말이지.
넌 한순간도 쉼 없이 움직이고, 바빴고, 돌고 돌고 돌았는데 엄마는 네게 쉼이 되어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다.
입대 전날, 엄마는 네가 부럽다고 했지. 기억나니?
"어쩌면 군대는 네가 아무 걱정, 고민 없이 살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일지 몰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밥 먹고, 훈련하라고 하면 훈련하고, 쉬라면 쉬고, 시간 되면 잠들면 되는 곳, 돈이 없어 걱정할 것도 없고 주말까지 마무리해야 하는 일에 대한 압박도 없는 곳. 갈 수만 있다면 엄마도 가고 싶다~"고 염장을 질렀지.
엄마의 말에 아빠는 썩소만 날리더라.
군대의 'ㄱ'도 모르는 사람이 떠드는 얘기였어. 그곳도 같을 텐데 말이야.
그곳 역시 만났다가 헤어지고 아쉬워지고 헤메이다 다시 시작하고, 다시 계획하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세상인데 말이다.
우리는 우리의 자리에서 돌고 돌고 돌고 있을게.
너는 너의 자리에서 돌고 돌고 돌고 있으렴~
서로 다르게 같은 시간 속에서...
그런데...
그곳 시계는 조금 느리게 가지 않을까? ㅋㅋ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