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집에서 19분 거리에 위치한 <특수전학교>로 파견 훈련을 온 날.
집 근처에 왔더니 뭔가 공기가 다르다는 너의 실시간 톡과 함께 어디선가 네 냄새가 나는 것 같더라. 집에서 255km 떨어진 함안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가까운, 집에서 14km의 경기도 광주. 그럼에도 5주 동안의 훈련기간 동안 얼굴 한번 보지 못한다는 게 아쉬웠다.
순자 아줌마가 그러더라. 담장 너머로 네 모습이 보일지도 모르니 일단 그 근처라도 가보자고 말이야. 산속이라 부대 안이 안 보인다면 보이는 곳을 찾아 산등성이를 타고 올라가자더라. 대답하지 않았다. 그 아줌마는 한다면 하는 아지매잖니... 어쩌면 아줌마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담장 너머에 있을 네 이름을 목이 터져라 외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널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중사 한 명, 소위 한 명, 대위 한 명, 그리고 이등병인 네가 4인 1실의 내무반을 함께 쓴다고 했을 때 엄마 아빠는 첫 번째 '헐~'을 했다.
59명의 교육생 중에 이등병은 너 하나라는 말에 두 번째 '헐~~'을 했다.
훈련 첫날부터 레펠 할 때 쓰는 8자 하강기를 떨어뜨려 전체 얼차려를 받았다는 말에는 '헉!' 했지. 연대책임이라 너로 인해 모두가 어깨동무하고 앉았다가 점프를 했고 상당히 눈치가 보였다는 말에 걱정이 많이 됐단다. 그럼에도 씩씩하게 "몸 좋은 간부들을 보며 자극을 받았다", "인맥이 엄청 늘어날 것 같다"며 신이 난 네 모습에 또 한시름 놓았지.
그렇게 이등병의 특별한 경험이 시작됐구나.
군대라는 새로운 삶에 적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네가 그 안에서 또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는 것, 부족한 것 투성이인 이등병이지만 씩씩하게 배우고 있다는 것, 네 말마따나 이등병으로서는 아무나 가보지 못한 전군 최초의 길에 뛰어들었다는 것, 그것이 의무가 아니라 너의 '선택'이었다는 것에 엄마는 많은 생각이 들더라.
유치원에 처음 들어간 아이가 어느새 자라 7세 형님반에 들어가면 유치원에서 덩치도 제일 커지고 까부는 것도 최고가 되지. 미운 7살의 정점을 찍고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면 반전이 일어난단다. 엊그제까지는 그렇게 크고 멋진 형님반이었던 아이가 코 찔찔 1학년, 다시 아기가 되거든. 어떻게 가방이나 메고 다닐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작고 여린 몸뚱이의 세상 어리바리한 귀염둥이가 된단다. 작은 손에 연필을 쥐고 받아쓰기를 하는 모습은 또 왜 그렇게 야무지던지.
세월이 흘러 6학년이 되면, 거뭇거뭇 콧수염도 나고 목소리도 쇳소리가 나면서 슬슬 징그러운 형님이 되지. 엄마 말 선생님 말도 안 듣고 쭉 찢어진 눈으로 삐딱하게 변한단다. 그러다가 중학교 입학을 하면 또 반전 2막이 시작되더라. 큼지막한 교복에 파묻혀 등교하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신입생이지. 쉬는 시간엔 선배들 눈치 보느라 복도에 나와 떠드는 것도 조심스러워하고 급식 먹으러 가서도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하나 눈치보기 바쁘지. 짧게 자른 머리 밑으로 이마에 '나 신입'이라 쓰여있는 것 같다.
중3이 되잖아? 세상 불량한 동네 양아치 같지. 교복이 다 뭐야. 작아졌다는 핑계를 대며 대충 트레이닝복 한벌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실내화 하나 신고 등교를 하지. 점심시간에는 몰래 빠져나와 집에서 라면 하나 끓여먹는 일탈을 저질러보기도 하고 말이야. 학교 끝나면 친구들이랑 우르르 몰려다니며 코인 노래방과 피시방을 전전하는 거야. 그러다가 고등학교 입학하면 다시 신입.
깍듯하지. 선배들에게 인사도 잘하고 교복도 다시 갖춰 입고.
입시에 신경 쓴다며 대충 아무거나 걸치고 학교 다니다가 고등학교 졸업해서 대학 가면 거기서 다시 신입. 대학 대신 취직을 한다 해도 신입. 군대를 가도 신병.
그렇게 국면이 전환될 때마다 '신입'의 이름을 달고 새내기, 귀요미의 역할을 맡는 삶이 반복되지. 하지만 그것도 언젠가부터는 간격이 점점 벌어지다가 '뚝!' 끊기는 시점이 오더라.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를 멈추는 순간이 오면 더 이상은 신입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거지. 처음엔 신선함으로 다가왔던 것들이 차츰 매너리즘과 무료함으로 바뀌고, 종국엔 지긋지긋해지는 거야.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낯선 환경에 몸을 던지기에는 너무 늦지 않았나 싶어지는 순간 더 이상의 출구 찾기를 멈추고 '신입'의 생활을 스스로 포기하게 되는 거지.
그러니 아들아.
너의 '신입' 시절을 충분히 즐기기 바란다. 네가 누릴 수 있는 온갖 새로운 경험에 몸을 던질 수 있는 용기로 가득 찼으며 어떤 실수든 관대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시절 말이다.
그래서 아들아.
엄마도 '신입'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으려 한다. 삶의 방향과 속도를 끊임없이 비틀어대면서 언제든지 이등병의 자리에서 시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