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면회 간다고 절임배추 10kg으로 김치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한 달 전 예약해 둔 절임배추가 도착했으니, 피할 수 없었다.
김치 속에 넣을 무를 썰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왜 채칼을 쓰지 않는가...'
나는 무채를 썰때 채칼을 쓰지 않는다.
도마 위에 무를 올려놓고 식칼을 이용해 채를 썬다. 적당한 길이로 나눈 무를 눕혀서 얇게 편으로 썬 다음 다시 옆으로 뉘어서 톡톡톡 두드린다. 순서대로 층층이 누운 무를 최대한 가지런히, 내가 선호하는 길이로 썬다. 그렇게 썰어 놓은 무를 칼로 받히고 손으로 덮어 양푼으로 옮겨 담는다. 난 이 과정을 좋아한다.
'정직하게 썬다'는 표현은, 채칼을 사용하는 이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
'정석대로 썬다'는 표현도 맘에 안 든다. 요리에 정해진 공식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채칼을 쓰지 않고 도마와 칼을 사용하는가...
고집이다.
쓸데없는 고집.
그래야만 김치가 더 맛있을 것 같다는 고집, 그래야만 요리를 진심으로 하는 사람 같다는 고집 말이다.
채칼 대신 도마와 칼로 무를 썰어야 생채가 더 맛있어진다는 과학적인 근거도 없거니와 요리 전문가들은 채칼을 쓰지 않는다는 통계는 더더욱 없다. 그러니 나의 고집은 그저 심리적 만족을 위한 '사서 하는 고생'이다.
하지만,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도 않고 김치 맛에 큰 타격을 주는 행위도 아니니, 그 정도 고집이야 뭐, 부려볼 만하다.
얼마 전, 지인의 말에 마음이 동요된 적이 있다.
"글 쓰는 사람들만이 가진 특유의 고집이 있어요."
어떤 이에 대해 이야기하며 스치듯 던진 말이었는데, 내 마음은 크게 반응을 했다.
나는 지인이 말한 '글 쓰는 사람'에 해당될까?
내가 쓰는 글이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는 글일까?
내가 글 쓰는 사람이라면, 내게도 특유의 고집스러움이 있을까?
'글 쓰는 사람은 고집스럽다'라는 말은, 어떤 것을 두고 하는 말일까?
흔히들 말한다.
글쓰기는 치유의 과정이라고.
치유... 힐링...
힐링을 검색하면 '인간의 정신적, 신체적 상태가 회복되는 것'이라는 정의가 나온다.
육체에 기분 좋은 자극을 주어 정신을 안정시키거나 마음 깊은 곳에 억압되어 있는 감정을 발산시키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 상담학 사전 >
마음 깊은 곳에 숨겨 두고 억압되었던 감정 혹은, 엉킨 실타래 같던 생각을 다른 것이 아니 글로 드러내는 사람들은 글쓰기를 통해 마음의 평온을 얻는다. 내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이 글이요, 내가 가진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글인 것이다. 그러니 나의 글은 나를 거스를 수 없다. 언제나 나를 다독여주어야 하고 나를 위로해주어야 한다.
"그랬구나...."
"에구... 속상했겠구나..."
"뭐 그런 일이 다 있다니?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힘내~~ 넌 할 수 있어~~"
제삼자가 되어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나에게 매정한 돌직구를 날리는 대신 내가 들으면 기분 좋아질 말을 끊임없이 풀어내어 놓는 게 '나의 글' 아닐까.
내가 원하는 말, 내가 듣고 싶은 말, 내가 생각하는 바를 쓰는 게 글이라면, 글 쓰는 사람은 고집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를 벗어나지 못하고 애초에 내 생각 밖으로 벗어날 의지조차 없는 나의 글도, 고집스럽다.
무생채를 무채 대신 칼로 써는 고집은, 기껏해야 나의 몸만 축낼 뿐이지만 글은 다르다.
내가 생각하는 바, 내가 원하는 바만 써 내려가는 고집스러운 글쓰기는 읽히고 회자되면서 나와 타인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