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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Oct 30. 2019

D-100 프로젝트
< D-60 >

사람은 '언젠가' 죽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죽을 수 있다.( 키키 키린 )               

100일 후에 죽는다고 생각하고 살면 하루가,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다.


평일 오후 3시의 연인.

얼마 전 TV에서 하던 드라마다. 제대로 시청한 적은 없지만 결혼한 여성들이 평일 오후 3시마다 금기된 사랑을 한다는 내용이다. 불륜을 미화한 건지 조장한 건지 아니면 비난한 건지는 안 봐서 전혀 모른다.

다만, 난 그럴 수가 없다는 얘기를 하려고 한다.


평일 오후 3시부터 극심한 피로가 몰려와서 저녁 식사 준비 시간 전에 '반드시' 낮잠을 자야하기 때문이다.

지중해 나라들이나 남미에서 한낮 무더위를 피해 행한다는 '시에스타'와 같은 개념이다. 그 시간에 낮잠을 자지 못하면 그날 오후부터 저녁을 넘어 밤까지는 그냥 버티는 하루가 돼버린다. 저녁 준비도 대충 하게 되고 저녁 수업시간에도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시간에 갑작스러운 피로가 몰려오면 무조건 자야 한다.


나의 시에스타에도 나름의 원칙은 있다.

1. 최대 30분을 넘기지 않는다.
2. 아이들 하교 전에 일어난다.


15분 정도의 낮잠이 가장 적당하다. 눈이 맑아지고 정신이 번쩍 난다. 어쩌면 아침 기상 때보다 더 개운한 것 같다. 30분 이상 늘어지게 잠을 잔 날은 아니 잔 것만 못한 오후를 맞이하게 된다. 다행히 알람 없이도 눈이 번쩍 떠진다.


아이들 하교 전에 일어나기로 한 원칙은 솔직히  짠~~ 한 원칙이다.

아이들이 집에 왔을 때 잠자고 있는 엄마 모습을 보이는 게 너무 싫었다. 아니 창피했다는 표현이 더 옳다. 집안일도 하고 학교 엄마들과의 모임도 하느라 바쁜 일과를 끝낸 후 당당히 낮잠을 자도 되건만 아이들에게 낮잠 자는 가정주부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쪽팔렸다. 그래서 잠시 낮잠을 자다가도 현관문 "삑삑 삑삑" 소리가 들리며 벌떡 일어나 세탁실로 가서 빨래를 만지작거렸다. 여태껏 집안일한 것처럼 보이려는 꼼수였다.

신기하게도 남편은 꼭 내가 낮잠 잘 때 전화를 했다. CCTV로 감시하나 싶을 정도로 귀신같이 알고 전화한다. 수화기 너머로도 잠의 기운은 느껴지는지 꼭 첫마디가 "잤어?"였다. 애들한테도 쪽팔렸는데 남편한테는 오죽했겠는가. 한껏 격양된 목소리로 "아니~~~?"라고 티 팍팍 내며 대답하곤 했다.

결국, 가사노동에 대한 평가절하, 가정주부에 대한 비하는 나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2번 원칙이 많이 무너졌다. 아이들 오기 전에 낮잠 잘 시간이 없는 날이 많은 탓도 있지만, 4시든, 5시든 아이들이 있건 말건 졸려 죽겠으면 그냥 잔다.

남편이 전화 오면 되려 화를 낸다. "아주 그냥 기다렸다 전화하지? 꼭 잠들만하면 전화해서 깨우고!"

남편 카톡 소리는 "자니?"로 바꿔놓았다. 그래서 톡이 올 때마다 "안자! 안자!" 하며 확인한다.


낮잠이 뭐! 그게 뭐 어때서! 졸리면 자는 거지!

새벽 한, 두시까지 이어지는 긴 하루의 가운데에서 숨을 고르는 시간. 

'평일 오후 세시의 연인'보다도 더 달콤한 나만의 'pa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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