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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Dec 22. 2021

사자(獅子)의 서(書)

남은 사자들에게 고함


2021년 12월 넷째 주의 첫 번째 주제

'동글이'의 그림 속 세상

[사자가 화났어요]




사자(獅子)의 서(書)


1.

달리고 또 달렸다.

유희와 쾌락만을 쫓아 작은 것들을

탐한 것이 아니다.

살고자 함이었다.


창자가 등가죽에 달라붙기 직전 베어 물은

한 마리의 여우

노을보다 더 붉은 여우의 털이 흩날릴 때

지켜보던 토끼는 웃다가 이내 울었다.


여우가 사라진 골짜기

토끼의 빨간 눈에서 흐르던

검은 눈물

사자는 눈을 질끈 감았다.


살고자 함이었다.

알량한 목숨

부지하고자

달리고 뜯었다.


더 빨리 달려 곰을 잡겠다는 야심 찬 목표.

작은 것들에서부터 차근차근 밟고 올라가겠다는 야무진 계획.

애초에 없었다.

있을 리 없었다.


생존에서 멀어지는 꿈

따위는 꾸지 않았다.

그게 바로 나다.

동물의 왕이라 불리는 자.



2.

어쩌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곰이 휘두른 앞발에 두개골이 산산조각 나고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오늘, 지금


곰을 잡지 않은 것은

빠르지 못해서가 아니라

바르지 못해서였다.


곰을 찾지 않은 것은

서툴러서가 아니라

배불러서였다.


이제 사자(死者)의 길에 들어서며 뉘우치나니

토끼와 여우의 고혈을 빠는 것은

사자(獅子) 일이 아니었다.


무릇 사자로 태어난 자

곰을 향해야 했다.

무릇 왕으로 추앙된 자

고상한 의무를 다해야 했다.




힘센 리더, 추앙받던 군주이자 뜀박질이 느려 곰을 잡지 못하는 것이라고 알려졌던 사자가 실은, 잡기 쉬운 토끼와 여우만 잡아먹으며 호의호식하는 존재였다사실을 알게 된다면 동물들의 반응은 어떨까요?

숲 속 동물을 위협하는 곰을 잡아 모두의 평화와 안녕을 지켜주는 데는 애당초 관심조차 없는 사자였다는 사실은 얼마나 많은 동물들에게 배신감을 안겨줄까요?


곰에게 맞고 뜯겨 죽던 그 순간, 사자는 깨닫게 됩니다.

숲 속 동물들의 존엄과 평화를 지키는 것이 사자의 책무라는 것을요.

개인의 영달만을 탐한 자의 말로는 쓸쓸하고 처참하다는 것을요.

곰과 싸워 이겼을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일부러 외면한 것은 분명 잘못이라는 걸 말이죠.


그리하여 죽어가는 사자는 자신이 못다 한 과업을 남은 이들에게 고합니다. 

토끼와 여우를 착취하는 삶은 그만두고 좀 더 원대한 꿈, 모두를 위한 목표를 위해 달리라구요.

너무, 늦지 말라고요.


현실세계로 돌아와 볼까요?

자신의 배만 불리는 이, 국민을 분열시키는 이, 국민을 섬기지 않는 이들 때문에 국민의 삶은 언제나 고달팠습니다. 국민이 맡긴 권력을 사익 추구의 수단으로 삼고 오로지 권력 획득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이들로 인한 창피함은 국민의 몫이었습니다.

게다가 권력을 잡은 자들이 돌본 것은 대다수 힘없는 국민이 아니었습니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함께 게임을 즐기는 이들만이 그들의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박탈감, 소외감, 상실감도 국민의 몫이었습니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가졌다면 조금은 더 원대하고 값진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국민들이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개인의 존엄함이 존중받고 공공선이 지켜지도록 하는 것 말이죠.

실현 가능성 없는 이상적인 목표라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합니다.

그게, 리더입니다.


아직 기회는 남아있습니다.

그들에게 고합니다.

사자의 운명을 가졌다면 곰을 잡으라구요.




* 매거진의 이전 글, 최형식 작가님의 글입니다.


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소개합니다. 주제는 그림책을 매개로 하여 선정됩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매일 한 편씩 소개됩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언제든지 제안하기를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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