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로 나누는 마음의 선물
사자가 화났어요.
사자가 화났어요. 곰을 잡으려고 했는데 너무 빨라서 못 잡았거든요.
사자는 배고파서 점점 더 화가 났어요
다음 번엔 토끼나 여우처럼 작은 동물을 잡을 거예요.
그러면 사자가 더 빨라서 다 잡아먹을 수 있어요.
사자가 화가 났어요. 아기곰 때문이에요. 조금 전에 아기곰이 지나갔는데, 본체만체하고 쓱 지나갔거든요. 감히 숲속의 왕에게 인사를 하지 않다니! 사자가 눈을 크게 뜨고 말했어요.
“야! 곰, 너 이리 와!”
아기곰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어요.
“왜요?”
“너! 나한테 인사 안 했잖아!”
“제가 인사를 하지 않았나요?”
아기곰은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사자는 더 화가 났어요. 조그만 녀석이 시치미를 떼다니! 사자가 으르렁거리며 다가왔어요. 아기곰은 너무너무 무서워서 뒤돌아서서 후다닥 달아났어요. 사자는 어이가 없었어요.
“야! 거기 서! 서라고!”
아기곰이 어찌나 빠른지 벌써 보이지 않았어요. 사자는 머리끝까지 화가 솟았어요. 인사도 안 하고 거짓말만 하고 도망을 쳤잖아요. 사자도 먼지를 일으키며 아기곰을 쫓아갔어요. 아기곰은 언덕을 넘어 동굴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어요. 아기곰은 동굴 제일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꼭꼭 숨었어요.
사자는 아기곰이 동굴 안에 산다는 걸 다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아기곰이 사는 동굴 안에는 들어가 보지 못했어요. 그곳은 어둡고 좁아서 사자한테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사자가 동굴 앞에서 크게 소리를 질렀어요.
“아기곰! 빨리 밖으로 나와!”
깊은 동굴 속에 사자의 큰 목소리가 쩡쩡 울렸어요. 놀란 박쥐 몇 마리가 동굴 밖으로 날아갔어요.
동굴 안에 있던 아기곰은 작은 손으로 눈을 가리고 몸을 잔뜩 움츠렸어요.
사자가 또 고함을 쳤어요. 아기곰은 병아리처럼 벌벌 떨고 있었어요. 아기곰이 나오지 않으니까 사자는 더 화가 나서 갈기가 곤두섰어요. 그래서 씩씩거리며 동굴 속으로 달려갔죠.
“쿵!”
사자가 동굴에서 뛰어가는 바람에 벽에 머리가 부딪쳤어요. 너무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어요. 머리에 커다란 혹까지 생겼어요. 사자는 뛰지 않고 벽을 더듬어 천천히 걸었어요. 동굴은 좁고 꼬불꼬불하고 어두웠어요. 사자가 또 발을 헛디뎠어요.
“어어.... 콰당!”
커다란 몸이 울퉁불퉁한 동굴 바닥에 벌렁 자빠졌어요. 커다란 자루가 넘어지는 것 같았어요.
“아이고! 아파!”
사자는 얼른 일어나서 흐트러진 갈기를 손으로 빗고 사방을 둘러보았어요. 숲속의 왕이 넘어지는 모습을 아무도 보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자는 더듬더듬 아기곰을 찾아다녔어요.
여기서 쿵! 저기서 쿵!
여기서 콰당! 저기서 콰당!
사자가 동굴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갈 때마다 어둠 속 여기저기서 큰북 치는 소리가 났어요. 동굴 벽에 거꾸로 붙어서 낮잠을 자던 박쥐들이 참다못해 한마디씩 했어요.
“시끄러워요!”
“그만 좀 해요!”
“낮잠을 잘 수가 없잖아요!”
박쥐들이 눈을 흘기며 파도처럼 동굴 밖으로 날아갔어요.
‘아니! 그럼 박쥐들이 내가 넘어지는 모습을 다 보고 있었던 거야?’사자는 힘이 쏙 빠졌어요. 배도 고팠어요. 할 수 없이 결국 동굴 밖으로 나와 털썩 주저앉고 말았어요. 머리 여기저기 볼록볼록 혹이 생겼어요. 멋진 사자 갈기는 땀에 젖어 영 볼품이 없게 되었어요. 사자는 절뚝거리며 집으로 돌아왔어요. 너무 속상해서 밥도 안 먹고 침대에 누워 끙끙댔어요. ‘어떻게 하면 아기곰을 잡을 수 있을까?’사자는 밤새도록 그 생각만 했어요.
다음 날 아침, 사자는 침대에서 일어나서 심부름꾼 비둘기를 불렀어요.
“당장 가서 박쥐 할머니를 데려오너라!”
박쥐 할머니는 동굴 속을 잘 아니까, 아기곰이 숨어 있는 곳까지 데려 줄 것 같았어요. 심부름꾼 비둘기가 동굴로 날아가서 박쥐 할머니를 모셔왔어요. 사자는 아주 무서운 표정으로 동굴 속에 아기곰 있는 곳으로 안내해 달라고 말했어요.
“만약 도와주지 않으면 커다란 돌로 동굴을 막아버리겠어요!”
박쥐 할머니는 곰곰이 생각했어요. 사자가 자기 말을 안 들어주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았어요. 동굴 속에 사는 박쥐들이 쫓겨날지도 몰라요. 박쥐가 거꾸로 매달려 잘 수 있는 곳은 동굴밖에 없으니까요. 조금 있으면 찬 바람이 불고 얼음이 얼기 시작해요. 박쥐 할머니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잠깐만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사자님.”
하지만 사자는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어요.
“셋 셀 때까지 대답을 안 하면 그냥 안 있을 거야!”
사자가 눈을 무섭게 뜨고 숫자를 세기 시작했어요.
“하나!”
박쥐 할머니는 얼른 처음 고양이를 만질 때를 떠올렸어요. 누구나 고양이를 처음 만질 때는 정말 무섭거든요.
“둘!”
무서움을 꾹 참고 살살 손을 내밀면 고양이의 부드러운 몸을 만질 수 있어요. 지금은 그런 용기가 필요해요.
“셋!”
박쥐 할머니가 용기를 내어 말했어요.
“좋아요. 안내해 드리겠어요.”
박쥐 할머니는 사자가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대답했어요.
“그러면 그렇지!”
사자는 기분이 조금 좋아졌어요.
사자와 박쥐 할머니가 동굴을 향해 떠났어요. 얼마나 걸었을까요. 토끼들이 숨바꼭질 하는 곳을 지나게 되었어요. 다른 토끼들이 숲속으로 몸을 숨기고, 술래 토끼 한 마리만 나무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던 사자가 훌쩍 뛰어 토끼 뒤로 갔어요. 토끼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죠.
“사자님 안녕하세요. 박쥐 할머니도 안녕하세요.”
토끼가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를 했어요. 박쥐 할머니가 인사를 받아주셨어요.
"안녕, 착한 토끼!"
사자는 인사도 받지 않고 입맛을 다시며 침을 흘렸어요. 작은 동물을 잡아먹고 힘을 더 키워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박쥐 할머니가 얼른 날아가서 날개를 펼쳐 토끼를 막았어요. 그리고 사자한테 말했어요.
"안 돼요! 안돼!"
"왜요?"
"토끼가 사자님을 도와줄 수 있다고요."
"이 꼬맹이가 나를 도운다고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박쥐 할머니가 토끼를 감싸 안으며 대답했어요.
"나는 어두운 곳은 잘 보지만 소리를 잘 못 들어요. 커다란 토끼 귀를 보세요. 아기곰의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니까요. 토끼가 안 도와주면 아기곰을 잡지 못할 거예요."
토끼는 너무 무서워서 잉잉 울음을 터뜨렸어요. 박쥐 할머니가 토끼를 달랬어요.
"토끼야, 울지 마. 사자님이 지금 화 주머니가 많이 커져서 그래. 네 잘못이 아니야."
사자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할머니 말대로 작은 토끼가 도울 일이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토끼를 잡아먹지 않기로 했어요.
사자와 박쥐 할머니와 토끼가 오솔길을 걸었어요. 이번에는 숲 가장자리에서 여우를 보았어요. 부지런한 여우는 크리스마스트리로 쓸 나무를 베다가 잠시 쉬고 있었어요. 여우는 땅바닥에 드러누워 있어서 동물들이 다가오는 것을 몰랐어요. 박쥐 할머니와 토끼가 여우한테 인사했어요.
"안녕, 여우!"
"반가워. 여우야!"
여우가 벌떡 일어났어요.
"안녕! 토끼님 박쥐 할머니... 그리고 사.사.사자님"
여우는 사자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왜냐하면 사자가 눈을 날카롭게 뜨고 몸을 잔뜩 낮추었기 때문이에요. 동물을 공격할 때처럼 금방이라도 덮칠 것 같았어요.
박쥐 할머니가 재빨리 사자를 가로막았어요.
“안 돼요. 우리는 여우가 필요해요.”
“또 무슨 소리 하는 거요?”
“여우 코를 보세요. 냄새를 얼마나 잘 맡는다고요.”
“상관없어! 나도 냄새를 잘 맡는다고!”
“아니에요. 반짝거리는 여우 코를 좀 보세요. 만약 사자님도 저런 코가 있다면 동굴 벽에 부딪히지 않고 금방 아기곰을 찾았을 거예요.”
여우가 무서워서 울상이 되었어요. 박쥐 할머니가 여우를 달랬어요.
"여우야, 겁내지 마. 사자님이 지금 화 주머니가 많이 커져서 그래. 네 잘못이 아니야."
박쥐 할머니는 사자한테 말했어요.
"동물을 잡아먹으면 안 돼요. 사자님이 배가 뚱뚱해져 달릴 수가 없잖아요."
그 말이 맞는 것 같았어요. 뚱뚱해지면 동굴 벽에 자꾸 머리를 찧고 바닥에 넘어져 정말 부끄러울 것 같았어요. 혹도 생기고요.
“좋아! 너도 아기곰을 잡을 수 있게 도와야 해!”
“고마워요. 사자님.”
여우가 꾸벅 인사를 했어요.
사자와 박쥐 할머니 그리고 착한 토끼와 부지런한 여우가 다시 길을 떠났어요. 길에서 여러 동물을 만났지만 사자는 더 이상 동물을 잡아먹지 않았어요. 만나는 동물마다 서로 인사를 나누었어요. 하지만 사자는 "어험!" 하거나 고개만 까딱했어요. 동물들은 항상 먼저 보는 쪽이 인사를 건네었어요. 몸집이 크든지 작든지, 힘이 세든 약하든 상관이 없었어요. 동물들이 서로 밝게 웃으면서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니, 사자 가슴속에 있던 화 주머니가 조금씩 쪼그라드는 것 같았어요.
드디어 동굴 앞까지 왔어요. 동물들은 나무 밑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했어요. 여우가 사자한테 물었어요.
"그런데 사자님, 왜 아기곰을 혼내 주려고 하세요?"
"감히 나한테 인사를 하지 않았다고!"
토끼도 궁금해서 물어보았어요.
"인사를 받지 않으면 왜 화가 나죠?"
사자는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어요. 박쥐 할머니가 웃으며 대답해 주었어요.
"인사란, 마음으로 주는 선물이기 때문이지."
토끼가 활짝 웃으며 말했어요.
"맞아요! 인사를 나누면 기분이 좋아져요. 마음의 선물을 받는 것 같아요."
사자는 '마음의 선물? 그런 게 어딨어!'라고 생각했어요.
“이상한 말 하지 말고 아기곰이나 잡으러 가자고!”
동물들은 차례대로 줄을 서서 동굴 안으로 들어갔어요. 박쥐 할머니가 여러 갈래 길 중에서 제일 깊은 곳으로 가는 길을 찾았어요.
“머리 조심하세요. 발밑도 잘 보고 걸어요.”
모두 조심조심 들어갔어요. 이번에는 사자가 뛰지 않았어요. 또 두 갈래 길이 나왔어요. 여우가 반짝이는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어요.
“저쪽에서 아기곰 냄새가 나요. 포근하고 귀여운 냄새.”
여우가 말하는 쪽을 가니 커다란 물웅덩이가 나왔어요.
토끼가 큰 귀를 이리저리 안테나처럼 돌리더니 말했어요.
“아기곰 소리가 들려요. 잘 들어보세요.”
하지만 다른 동물들 귀에는 위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만 들렸어요. 토끼가 한번 더 말했어요.
“아유, 답답해. 저기 물웅덩이 건너에서 들리잖아요.”
토끼는 새근새근 잠자는 아기곰 콧바람 소리가 들린다고 했어요.
동물들이 물웅덩이를 헤엄쳐 건넜어요. 그랬더니 정말로 바위틈에 아기곰 혼자 콜콜 자고 있었어요.
아기곰은 얼마나 깊이 잠들었는지 사자 발소리가 쿵쿵 울리는데도 모르고 있었어요. 박쥐 할머니가 아기곰 귀에 대고 속삭였어요.
"안녕 아기곰, 일어나 보렴."
아기곰은 꼼짝도 하지 않았어요. 여우도 다가가서 아기곰 엉덩이를 톡톡 두드렸어요.
"아기곰아, 멋진 사자님 오셨어."
그래도 꼼짝하지 않았어요. 토끼는 너무 걱정되어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아기곰아, 얼른 일어나서 사자님한테 인사드려."
아기곰은 여전히 깨어나지 않았어요. 그때 동굴 벽에서 지켜보던 박쥐들이 한 마디씩 했어요.
"아기곰은 어제 사자님 때문에 지쳤다고요."
"사자님이 동굴을 나가자마자 픽 쓰러진걸요."
"아무것도 안 먹고 잠만 자요. 하루 종일요!"
사자 가슴이 갑자기 쿵쿵 뛰고 머리도 어지러웠어요. 토끼와 여우와 박쥐 할머니의 가슴도 콩콩 뛰었어요. 박쥐 할머니가 아기곰의 솜사탕 같은 가슴에 날개를 살짝 얹어 보았어요. 얇은 날개가 오르락내리락했어요. 박쥐 할머니가 "쉿!" 하고 말했어요.
"괜찮아요. 괜찮아. 아기곰이 겨울잠을 자기 시작했나 봐요."
토끼와 여우가 한숨을 “휴!”하고 쉬었어요. 사자도 안심이 되었어요. 사자는 아기곰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어요. 고마운 마음도 들었어요. 아기곰은 정말 잠꾸러기인가 봐요. 잠깐이라도 잠을 깨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아무도 아기곰을 깨우지 않았어요.
아기곰이 콜콜 잠자는 모습은 정말 사랑스러웠어요. 귀여운 아기곰을 보니 사자의 마음이 간질간질하더니 따뜻해졌어요. 그래서 아기곰의 동그란 귀에 뭐라고 속삭였어요. 다른 동물들이 사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려고 귀를 쫑긋 세웠어요. 하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사자답지 않게 너무 작은 목소리였거든요.
박쥐 할머니가 말했어요.
"아이고 힘들다. 나도 겨울잠 잘 시간이 되었네."
박쥐 할머니가 사자와 여우와 토끼한테 인사를 하였어요.
"모두 잘 가요. 내년 봄에 만나요."
동물들도 할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였어요.
“할머니 안녕!”
“봄에 또 만나요!”
“고생 하셨수. 잘 주무시오.”
박쥐 할머니는 동물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날개를 흔들어 주었어요. 그리고 아기 곰 옆에 있는 벽에 거꾸로 매달려 날개로 몸을 감쌌어요.
“야! 눈이다!”
사자와 여우와 토끼가 동굴 밖으로 나왔어요. 세상이 환해졌어요. 어느새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어요. 숲이 온통 하얀색으로 덮였어요. 하얀 숲마을은 반짝이는 흰색 포장지로 싼 커다란 선물 같았어요. 여우가 사자한테 물었어요.
“그런데 사자님 아까 아기곰 귀에 대고 뭐라고 했어요? 참 궁금해요.”
사자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함박눈을 보며 빙그레 웃고만 있었어요.
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소개합니다. 주제는 그림책을 매개로 하여 선정됩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매일 한 편씩 소개됩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언제든지 제안하기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