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연휴가 끝났습니다. 택배기사님이 명절 전보다 바빠지는 시간입니다. 일반 택배 물량에 명절 선물 반품, 교환까지 더해지기 때문이랍니다. 개인 사업자인 택배기사님에게 물량의 많고 적음은 수익과 직결되니 바쁘다는 건 좋은 일입니다만, 힘에 부치는 일임은 분명합니다. 그분들에게 명절은 기다려지는 날일까요, 공포스러운 날일까요?
명절이 끝나면 바빠지는 사람들이 또 있습니다. 며느리들입니다. 평소 시댁을 향해 품고 있던 불만에 명절 스트레스까지 더해지기 때문입니다. 커피를 핑계로 삼삼오오 모여 한바탕 시원하게 풀어내면 그제야 진정이 됩니다. 별거 아닌 일들이 마음에 켜켜이 쌓여 별거가 되고 병이 됩니다. 그러기 전에 조금은 덜어내야 합니다.
친정이나 친구에게도 털어낼 수 없는 사연이 지역맘카페에 속속 올라오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대나무 숲이라 생각하고 풀어내 버리려는 것이죠. 그중 많은 이의 공분을 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명절을 보내고 시댁을 나서는 며느리에게 시어머니가 급하게 챙겨준 비닐봉지에는, 꼬치전을 부치고 남은 햄 몇 가닥, 맛살 몇 가닥, 단무지 한가닥이 들어있었답니다. 집에 가서 애들 볶음밥이라도 해주라며 가방에 쑤셔 넣어주셨는데 집에 와 생각하니 모멸감이 밀려왔답니다. 식사할 때도 형님이 먹다 남긴 생선을 먹어 치우라며 자기 앞에 놓아주셨고 조금씩 남은 반찬들도 아깝다며 '먹어 치워라'라고 하셨다는 거죠. 아까워서 그러신 거라고 이해하려 했고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 했지만 자신만 쓰레기통이 된 것 같아 속이 상했다는 사연...
단무지 한가닥이 삐죽이 나온 비닐봉지 사진이 서글펐습니다. 별거 아닌 일이라고 넘길 수 있지만 그 글을 올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연이 쌓였을지를 생각하면 참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언젠가 저도 시어머니가 될 텐데 벌써부터 저의 변신, 둔갑이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서둘러 작은 아이를 불러 이야기를 했죠.
"있잖아. 엄마가 나중에 시어머니가 됐을 때 네 아내가 엄마 때문에 힘들어하면 말이지, 너는 무조건 아내 편을 들어야 해. 엄마 마음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다고 엄마 편을 든다거나 중간에서 어정쩡하게 있지 말고! 알았지?"
"갑자기?"
"어. 하하. 갑자기. 맘카페에 사연이 올라왔길래 엄마가 제정신일 때 너에게 말해놓으려고. 지금은 미래의 며느리에게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시어머니 입장이 되면 잊을지도 모르잖아. 네가 잘 기억하고 있다가 엄마에게 정색하면서 말해줘. 꼭 정색해야 해. 물론 엄마가 자식 키워봐야 소용없다며 속상해할 테고 너랑 싸우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속으로 생각이라는 걸 해볼 거 아니야. 나한테 문제가 있나 고민도 해볼 테고."
"크크크. 알았어."
"결혼하는 순간부터 네 가정과 엄마의 가정은 분리가 되어야 하거든. 일단 네 가정의 평화가 먼저인 거야."
저도 참...
결혼, 고부간의 갈등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는 고3 아이를 앉혀놓고 엉뚱한 다짐을 늘어놓았습니다. 마음속으로 하는 혼자만의 다짐이 아니라 누군가의 머릿속에 제 다짐을 박제해 놓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게 아들이어야 가장 확실했고요.
저를 박물관에 기증해야 할 며느리라고 귀히 여겨주시는 제 시어머님은 가끔 제게 대놓고 물으십니다.
"애미야. 너 말 좀 해봐라. 너도 명절 스트레스받냐? 우리 집이 할 일이 뭐가 있기나 하냐? 그저 우리 가족 한 끼 식사하는 게 다잖냐?"
오래전에는 그런 말도 서러웠습니다만 이제는 웃으며 받아치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흐흐흐 어머니. 그렇게 물어보시는 게 바로 그건데..."
그러면 어머님도 "그러냐?" 하며 함께 웃고 마십니다.
남은 명절 음식도 그렇습니다. 오래전엔 우리 집에 갖고 와도 천덕꾸러기가 되는 음식을 싸주시는 게 싫을 때도 있었고 '먹어치우라'는 말씀이 거슬릴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혼자 불만을 쌓아가는 건 제 마음의 구멍만 후벼 파고 있는 꼴이라는 걸 알았죠. 그래서 그때그때 할 수 있는 말을 용기 내서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물 가져가도 아무도 안 먹을 것 같아요. 이번엔 안 가져 갈게요~"
"어머니, 물김치 너무 맛있어요. 조금만 싸주세요~"
"남겨뒀다 어머님 드세요~ 저희는 집에 많아요~"
"비빔밥 해 먹게 이번에는 나물만 싸 주세요~"
"너무 배불러서 도저히 못 먹어요. 남은 거 그냥 버릴게요."
필요할 땐 가져오고 싫을 땐 거절합니다. 어떤 계산도 없고 눈치보기도 없습니다. 그러니 마음이 편안합니다. 어머님이 싫을 이유도 없습니다.
저 역시 외며느리 혼자 전을 부치고 혼자 설거지를 하며 남편은 TV만 보는 현실이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제를 제기하고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큽니다. 그걸 당연하게 여기던 시절을 살아온 어머님과 맞서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내 세대를 마지막으로 확실히 끊어내겠다'는 다짐만을 할 뿐입니다. 그 다짐이 훗날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