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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ul 31. 2022

우리 집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

새벽부터 분주한 날이었습니다. 한복 대여점에서 올림머리와 화장을 받고 서둘러 길을 나선 저와 몸에 잘 맞춘 정장을 차려입은 남편, 셔츠를 단정하게 입은 작은 아이, 일주일 휴가를 내고 비행기까지 타고 올라온 군인 아들까지 온 가족이 총출동했습니다. 시조카의 결혼식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모든 결혼은 성스럽고 아름답지만 이 결혼식은 유난히 그랬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특별한 사연이 있던 둘의 사랑이 그랬고 그 둘을 바라보는 모든 이의 따스한 시선이 그랬죠. 신부를 위한 깜짝 선물로 준비했다는 신랑의 피아노 연주는 더욱 그랬습니다. 슈만이 아내 클라라에게 결혼식 전날 선물했다는 <마르테의 꽃 - 헌정> 연주에는 결혼을 대하는 조카의 진심이 듬뿍 담겨있었지요. 마이크를 잡고 하객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하던 조카의 장난스러운 말투는 차분하고 진지하던 식장 분위기를 한층 밝고 즐겁게 만들어주었습니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 화려한 학벌과 풍부한 문화적 감성, 수수하고 겸손한 태도, 속 깊고 다정한 마음씨, 적절한 유머가 가미된 언변.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조카의 모습은 가족 모두에게 자랑이자 행복이었습니다. 조카는, 아이들에게는 멋진 형의 본이 되었고 저희 부부에게는 그 아이를 키운 '무엇'에 대한 질문이 되었습니다.


"OO 이는 어쩜 그럴까? 어떻게 그렇게 살갑고 다정하기까지 하지?"

"그러게 말이야. 타고난 것도 있을 테지만 누나랑 매형의 어떤 점이 우리랑 달랐던 걸까? 우린 뭐가 문제지?"

"에이... 문제랄 것까지 있나? 우리 애들이 뭐 어디가 어때서? 살갑고 다정한 건 없지만 그렇다고 사랑이 없는 아이들은 아닌 걸?"

"그렇네. 문제라는 표현은 좀 그렇지. 우리 집은 그 집과 어떤 무엇이 다른 걸까?"


특별한 문제가 없는 아이들을 상대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이들로 만들고, 우리 부부와 우리 가정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처럼 생각을 해버렸습니다. 우리만의 색깔, 우리만의 사랑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부질없는 비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마음속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내가 좀 더 다정한 엄마였어야 했던 걸까? 아빠의 영향이 컸을까? 경제적인 여유도 영향을 미쳤을까?

우리, 잘 하고 있는 걸까?

우리, 잘 살고 있는 걸까?


...

얼마 전, 작은 아이와 함께 간 음식점 옆 테이블에서 두 청년의 대화가 들려왔습니다.

"내가 어제 술 먹고 새벽 세시에 들어갔거든? 엄마가 그 시간에 안 자고 김치를 하고 있는 거야. 아, 온 집안에 김치 냄새가 가득하더라고. 그 시간에 김치를 왜 하는지."

"그 새벽에 김치를? 너 기다린 건 아니고?"

투덜거리는듯한 말투와는 달리 청년의 표정에는 어떤 만족스러움이랄까 하는 것이 넘쳐 보였습니다. 어울리지 않는 시간에 김치 냄새가 가득하지만 그래도 좋은 게 집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싶었지요.


다른 집에 가면 특유의 냄새가 훅하고 납니다. 명문대를 보낸 어떤 집의 냄새, 돈 잘 버는 누구네 집의 냄새를 맡으면 우리 집 냄새와 뭐가 다른지를 고민합니다.

정작 우리 집에 들어오면 평소 우리 집에서 어떤 냄새가 나는지는 잘 맡못합니다. 너무 익숙하기 때문이겠죠. 익숙해서 알 수는 없지만 우리 가족만이 내뿜는 우리의 냄새를 찾기 위해 코를 킁킁거려봅니다.


"으... 발꼬락 냄새. 이거 무슨 냄새야?"

간장을 달이던 날, 하교하던 아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궁금함 가득한 얼굴로 묻습니다.

"아후, 냄새... 오늘 김치 했어?"

퇴근한 남편이 부엌을 쓱 지나가며 심드렁하게 말합니다.

"누구야! 누가 뀌었어!"

은근하게 퍼지는 독한 냄새에 제가 소리칩니다.


슈만의 피아노곡이 들려오지는 않지만, 부족한 것이 많은 우리지만, 우리 가족만의 냄새, 우리 가족만의 사랑, 행복을 들여다봅니다. 킁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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