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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un 13. 2022

무슨 일이 있어도 마스크는 포기 못해요.

디베이트를 배우는 중3 아이들이 교내 토론대회에서 우수상을 탔습니다.

토론대회 공고가 나온 순간부터 예선, 본선을 거쳐 결선에 이르기까지, "학교 수행이나 발표, 대회가 있을 때 나를 충분히 활용해~"라는 제 평소 요청대로 시도 때도 없이 질문 공세를 퍼붓던 녀석들. 기특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준비과정에서 아이들이 보여주었던 의욕이 참 아름다웠지요. 그러니 축하연을 열어야 했습니다.


아이들의 요청으로 와플 가게에 갔습니다. 크림, 아이스크림, 각종 과일, 잼 등 각자 입맛에 따라 1인 1 와플을 시키니 햄버거만한 와플이 나왔지요.

"자~ 다시 한번 축하하고, 맛있게 먹어~"

"네~~ 쌤~~ 잘 먹겠습니다~"

아이들 덕분에 저도 모처럼 크림이 잔뜩 들어간 와플을 먹었네요. 마스크를 벗고 입을 풀어준 다음 크게 벌려 한입 베어 물었습니다. 함께 시킨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먹으니, 아이들을 위한 축하연이 아니라 내 입을 위한 호사연이구나 싶었죠.


입에 단 게 들어간 후 정신이 돌아온 저는 그제야 아이들도 잘 먹고 있는지 둘러보다가, 황당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마스크를 살짝 앞으로 잡아당겨 마스크 밑 빈틈으로 와플을 넣어 한입 먹는 아이.

어른 앞에서 술 받은 사람처럼 뒤로 돌아 마스크를 내리고 한입 먹는 아이.

어찌할지 모르고 눈만 끔뻑거리고 있는 아이.

귀에 걸린 마스크 끈을 만지작거리며 벗을까 말까를 고민하는 아이.


"너희 뭐해? 왜 안 먹어? 아니, 마스크를 왜 안 벗어?"

"도저히 못 벗겠어요. 엄청 친한데 서로의 얼굴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어색해요."

"그냥 뒤돌아 먹는 게 편해요!"

"이렇게 마스크를 잡아당겨 들고 먹으면 돼요."

"벗을까 말까 고민 중이에요. 너무 어색해서..."

"그러고 보니 우리가 수업을 시작한 게 코로나 때라서 서로의 마스크 벗은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구나? 어색하긴 하겠다만... 먹으려면 벗어야 하지 않겠니?"

"그러니까요... 서로의 민낯을 본 적이 없어서 벗을 수가 없어요. 저희는 학교에서도  안 벗는단 말이에요. 급식 먹을 때도 마스크 밑으로 먹어요."

코로나와 함께 중학교를 입학한 세대들이 갖고 있는 특유의 문화,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일부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요.

"우리 하나 둘 셋 하면 벗는 거 어때?"

"좋아. 하나! 둘! 셋!"

아이들은 여러 번 외쳤지만 한참동안 벗지 못했습니다.


편하게 먹으려는 마음이 컸던 한 아이만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나머지 세명은 마스크를 쓴 채 와플을 먹었습니다. 마스크를 벗은 한 아이를 향해서는 찬사가 쏟아졌죠.

"와~ 너 진짜 이쁘다. 피부가 어쩜 그렇게 좋아?"

"마스크 벗기 전이랑 후가 크게 다르지 않은? 상상했던 그 모습이야."

그러더니 하나 둘 자신들의 얼굴이 담긴 사진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어렸을 때 사진부터 최근 모습까지 서로에게 보여주더군요. 그것은 마스크를 벗기 위한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관이 드러났을 때의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한 안전장치랄까.


결국 네 명 중 세명은 마스크를 벗고 편히 먹었고 한 명만은 마지막 한입을 먹을 때까지 절대 벗지 않았습니다. 코에 커다란 뾰루지가 났다는 이유였죠.


"얘들아. 난 오늘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어른들도 어색하긴 마찬가지이지만 결국벗거든. 코로나 시작과 동시에 중학교 입학한 너희들에게는 마스크를 벗는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오늘 확실히 느꼈어. 마치 친한 친구들이랑 목욕탕에 처음 온 날 같은 기분이니?"

"맞아요. 그런 느낌이에요. 옷을 홀딱 벗은 느낌이요."


확진자는 만 명 아래로 떨어졌지만 사람들은 쉽게 마스크를 벗지 못합니다.

인크루트가 지난 4월 성인 남녀 121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78.1%가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 이후에도 마스크를 쓰겠다고 응답했답니다. 코로나가 종식돼도 마스크를 계속 착용할 것이라는 응답도 26.3%에 달했지요.

꾸밈 노동에서도 해방되고 표정관리를 해야 하는 부담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는 마스크의 순기능에 모두 익숙해졌습니다. 마스크에 가려졌던 하관과 눈, 이마가 합쳐지면서 완전체 얼굴을 마주하고 당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지만, 그렇다고 밥 먹고 차 마실 때조차 마스크를 끝까지 내리지 않는 일을 성인들은 하지 않습니다.


청소년들에게는 그게 '그렇게도' 힘든 일이었습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마스크는 내릴 수 없다는 결연함, 벗을까 말까 눈알을 굴리며 고민하는 진지함이 참 귀여웠습니다. 동시에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지요.

얇은 마스크 한장을 사이에 두고 서로에게  다가서기를 주저하는 모습도 언젠가는 사라지겠죠?

우리들의 코로나는 이렇게 조금씩 저물어가나 봅니다.




코로나 초반에 쓴 마스크 관련 글이 있어 소개합니다~

< 열일곱 번째 시시콜콜 디베이트 - 사람의 인상은 하관이 결정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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