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 있어도 마스크는 포기 못해요.

by 늘봄유정

디베이트를 배우는 중3 아이들이 교내 토론대회에서 우수상을 탔습니다.

토론대회 공고가 나온 순간부터 예선, 본선을 거쳐 결선에 이르기까지, "학교 수행이나 발표, 대회가 있을 때 나를 충분히 활용해~"라는 제 평소 요청대로 시도 때도 없이 질문 공세를 퍼붓던 녀석들. 기특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준비과정에서 아이들이 보여주었던 의욕이 참 아름다웠지요. 그러니 축하연을 열어야 했습니다.


아이들의 요청으로 와플 가게에 갔습니다. 크림, 아이스크림, 각종 과일, 잼 등 각자 입맛에 따라 1인 1 와플을 시키니 햄버거만한 와플이 나왔지요.

"자~ 다시 한번 축하하고, 맛있게 먹어~"

"네~~ 쌤~~ 잘 먹겠습니다~"

아이들 덕분에 저도 모처럼 크림이 잔뜩 들어간 와플을 먹었네요. 마스크를 벗고 입을 풀어준 다음 크게 벌려 한입 베어 물었습니다. 함께 시킨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먹으니, 아이들을 위한 축하연이 아니라 내 입을 위한 호사연이구나 싶었죠.


입에 단 게 들어간 후 정신이 돌아온 저는 그제야 아이들도 잘 먹고 있는지 둘러보다가, 황당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마스크를 살짝 앞으로 잡아당겨 마스크 밑 빈틈으로 와플을 넣어 한입 먹는 아이.

어른 앞에서 술 받은 사람처럼 뒤로 돌아 마스크를 내리고 한입 먹는 아이.

어찌할지 모르고 눈만 끔뻑거리고 있는 아이.

귀에 걸린 마스크 끈을 만지작거리며 벗을까 말까를 고민하는 아이.


"너희 뭐해? 왜 안 먹어? 아니, 마스크를 왜 안 벗어?"

"도저히 못 벗겠어요. 엄청 친한데 서로의 얼굴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어색해요."

"그냥 뒤돌아 먹는 게 편해요!"

"이렇게 마스크를 잡아당겨 들고 먹으면 돼요."

"벗을까 말까 고민 중이에요. 너무 어색해서..."

"그러고 보니 우리가 수업을 시작한 게 코로나 때라서 서로의 마스크 벗은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구나? 어색하긴 하겠다만... 먹으려면 벗어야 하지 않겠니?"

"그러니까요... 서로의 민낯을 본 적이 없어서 벗을 수가 없어요. 저희는 학교에서도 잘 안 벗는단 말이에요. 급식 먹을 때도 마스크 밑으로 먹어요."

코로나와 함께 중학교를 입학한 세대들이 갖고 있는 특유의 문화,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일부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요.

"우리 하나 둘 셋 하면 벗는 거 어때?"

"좋아. 하나! 둘! 셋!"

아이들은 여러 번 외쳤지만 한참동안 벗지 못했습니다.


편하게 먹으려는 마음이 컸던 한 아이만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나머지 세명은 마스크를 쓴 채 와플을 먹었습니다. 마스크를 벗은 한 아이를 향해서는 찬사가 쏟아졌죠.

"와~ 너 진짜 이쁘다. 피부가 어쩜 그렇게 좋아?"

"마스크 벗기 전이랑 후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상상했던 그 모습이야."

그러더니 하나 둘 자신들의 얼굴이 담긴 사진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어렸을 때 사진부터 최근 모습까지 서로에게 보여주더군요. 그것은 마스크를 벗기 위한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관이 드러났을 때의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한 안전장치랄까.


결국 네 명 중 세명은 마스크를 벗고 편히 먹었고 한 명만은 마지막 한입을 먹을 때까지 절대 벗지 않았습니다. 코에 커다란 뾰루지가 났다는 이유였죠.


"얘들아. 난 오늘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어른들도 어색하긴 마찬가지이지만 결국은 벗거든. 코로나 시작과 동시에 중학교 입학한 너희들에게는 마스크를 벗는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오늘 확실히 느꼈어. 마치 친한 친구들이랑 목욕탕에 처음 온 날 같은 기분이니?"

"맞아요. 그런 느낌이에요. 옷을 홀딱 벗은 느낌이요."


확진자는 만 명 아래로 떨어졌지만 사람들은 쉽게 마스크를 벗지 못합니다.

인크루트가 지난 4월 성인 남녀 121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78.1%가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 이후에도 마스크를 쓰겠다고 응답했답니다. 코로나가 종식돼도 마스크를 계속 착용할 것이라는 응답도 26.3%에 달했지요.

꾸밈 노동에서도 해방되고 표정관리를 해야 하는 부담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는 마스크의 순기능에 모두 익숙해졌습니다. 마스크에 가려졌던 하관과 눈, 이마가 합쳐지면서 완전체 얼굴을 마주하고 당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지만, 그렇다고 밥 먹고 차 마실 때조차 마스크를 끝까지 내리지 않는 일을 성인들은 하지 않습니다.


청소년들에게는 그게 '그렇게도' 힘든 일이었습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마스크는 내릴 수 없다는 결연함, 벗을까 말까 눈알을 굴리며 고민하는 진지함이 참 귀여웠습니다. 동시에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지요.

얇은 마스크 한장을 사이에 두고 서로에게 다가서기를 주저하는 모습도 언젠가는 사라지겠죠?

우리들의 코로나는 이렇게 조금씩 저물어가나 봅니다.




코로나 초반에 쓴 마스크 관련 글이 있어 소개합니다~

< 열일곱 번째 시시콜콜 디베이트 - 사람의 인상은 하관이 결정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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