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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un 29. 2022

'그것'을 발견하는 곳, 응급실

6월 3주 보글보글 글놀이
"응급실"


지금껏 응급실에 네 번 가봤다. 모두 보호자 신분이었다. 


20년 전 첫 아이가 두 돌 가까이 됐을 무렵, 심한 열감기에 걸려 아동병원에 간 것이 처음이었다. 해열제로도 쉬이 떨어지지 않는 열을 잡아줄까 싶어 한밤중에 찾아간 병원이었건만 밤새 아이를 홀딱 벗기고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주라는 처방만 내려졌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가득한 응급실 구석 침대에 누운 아이는 칭얼댈 힘도 없이 축 늘어져 뜨거운 입김을 내쉬고 있었다. 

열감기에 장염까지 더해져 설사까지 하는 아이에게 의사는 금식을 처방했다. 지금도 복스럽게 밥을 먹는 큰아이는 당시에도 '밥'을 좋아했다. 그런 아이에게 이틀간 금식이라니, 아이는 몸을 묶어둔 수액 바늘보다도, 밤새 온몸을 비벼대는 물수건보다도, 밥을 못 먹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아이는, 이틀 만에 첫끼니로 나온 멀건 미음을 두 그릇이나 해치웠다.


두 번째 응급실 방문은 그로부터 3년 뒤였다. 

갯벌에 갔다가 무엇에 쏘였는지, 자고 일어난 작은 아이의 발이 땡땡하게 부어올랐다.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는 두 돌 된 아이를 데리고 찾아간 동네 대학병원 응급실. 의사는  자못 심각한 얼굴로 파상풍 위험이 있으며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른다며 입원을 지시했다. 돌 반된 아이를 앞에 두고 '사망'을 논하는 상황이 기가 막혀 얼마나 울었던지...

2박 3일 입원생활 동안 작은 아이는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한다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퇴원 당일, 수액 바늘을 빼자마자 팔을 양옆으로 펼친 채 제자리에서 빙그르르 돌던 아이의 모습이 선하다. 


그로부터 또 3년 뒤, 5살이 된 작은 아이가 자전거를 타다 넘어졌고 팔이 부어올라 같은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당직의는 아이의 골절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와 나흘의 연휴를 쌩으로 아프고 불편한 상태로 보냈다. 아무래도 이상해 찾아간 다른 정형외과에서 관절 내 골절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6주 동안 깁스를 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이었는데 응급실에서는 놓쳤던 것이다. 

작은 아이를 상대로 한 번은 사망을 논하고, 한 번은 오진을 했던 응급실. 두고두고 "%&^?$@#$*!%#"가 절로 나오는, 원망스러운 기억의 장소다. 


가장 최근의 응급실 방문은 2020년이었다. 

저녁을 먹던 남편이 왼쪽 얼굴이 이상하다며 고개를 들었는데 먹던 국이 벌려진 입 사이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심하게 일그러진 입보다 눈은 더 심각했는데, 눈을 깜빡일 때 왼쪽 눈꺼풀이 감기지 않았다. 

"응급실 가자!"

남편과 나는 밥 먹던 숟가락을 그대로 내려놓고 옷을 걸친 다음  응급실로 내달렸다. 신경계나 뇌, 심혈관계 환자는 중증 응급상황으로 분류돼 우선 조치를 취한다는 안내가 무색하게, 이런저런 검사를 받느라 대기만 4시간을 했다. 새벽 1시가 되어서야 검사와 진료가 끝났고 남편은 안면마비라는 진단을 받았다.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얼굴로 솟구쳤음을 아는 나에게 가장 비참했던 날로 기억된다. 130만 원이 넘는 진료비 영수증과 커다란 약봉지를 받아 들고 나오려던 순간, 남편은 창구로 가서 진료비에 대한 의문을 강하게 제기했다. 한참을 대기한 후 다시 의사를 찾아가 '신경학적 이상 증상이나 뇌질환이 의심되는 경우 MRI 촬영비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느냐'며 따졌다. 결국 60여만 원 할인을 받고서 귀가하던 때, 나와 남편을 덮쳤던 착잡함, 딱함, 서글픔...

경제적인 문제로 고민을 하다 맞이한 안면 마비.

안면마비로 찾은 응급실에서 받은 진료비 폭탄.

그걸 또 협상해서 깎아 낸 입이 돌아간 남편... 


응급실은 어쩌면 우리가 그곳을 찾는 순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드러내 주는 곳이 아닌가 싶다. 

밥 한 공기의 간절함을 원했던 큰 아이, 링거에 매달리지 않는 자유로움을 원했던 작은 아이, 한 푼이 아쉬운 가장의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던 남편.

가족이 무사하기만을 바랬던 엄마, 아내, 나.



지금의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것'은 무엇일까? 

사실 나는, 매일 응급실에 간다.


오후 4시가 되면 어김없이 극심한 피로가 몰려오는데, 반드시 15분 정도의 낮잠을 자야 해소가 된다. 지중해나 남미 사람들이 한낮 무더위를 피해 잠을 잔다는 '시에스타'와 같은 개념이랄까. 낮잠을 자지 못하면 눈에 총기는 사라지고 뇌에 안개가 낀 듯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저녁 준비도 해야 하고 다음날 수업 준비나 아이들 학원 픽업, 못다 한 집안 일등 할 일이 잔뜩인데 도통 뇌가 움직이지를 않는다. 그러니 피로가 몰려오는 4시가 되면 열일 제치고 서둘러 응급실 침대 위에 올라 짧지만 강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 천근만근 내려앉는 눈꺼풀을 응급실 침상에 뉘어 꿀잠 수액을 맞추고 나면 개운하고 말똥말똥한 눈으로 살아난다. 


오후 낮잠 루틴을 과감하게 버리고 하루 일정을 일찍 마감하는 생활패턴을 만들었다면 좋았을 테지만, 하루를 더 길게 쓰고 싶다는 욕망이 오후 응급실행을 만들어 냈으리라. 쪽잠 15분을 투자해 늦은 밤부터 새벽 1,2시까지의 여유를 얻어내고는 꽤 괜찮은 거래였다고 만족하는 것이다. 

내가 매일 방문하는 응급실에서 찾아낸 나의 가장 중요한 '그것'은 시간에 대한 집착이 아니었을까...



* 매거진의 이전 글, 김장훈 작가님의 < 응급실. 장례식장보다 더 슬프고 아픈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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