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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Jun 30. 2022

언니 죽지 마

6월 4주 보글보글 주제: 응급실


"언니! 죽지 마! 언니!!!"

이것은 나를 부르는 동생의 목소리다. 

언니 안 죽어, 안 죽는다고. 그러니 이제 그만 울어.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이었다. 어느 일요일, 아빠는 출근을 했고 엄마는 볼일이 있어 잠시 나갔다 올 터이니 절대 나가지 말고 집에 있으라고 하였다. 6살 내 동생은 엄마가 나가자마자 나에게 슈퍼에 가서 간식을 사 먹자고 꼬드겼다. 집에 엄마가 마련한 간식거리가 있었지만 우리에겐 그런 건강한 간식거리 말고 슈퍼의 과자 쪼가리가 필요했다.

"엄마한테 혼나면 어떡해?"

"빨리 갔다 오면 되지. 후딱 사서 오자."

걱정이 많은 나와는 다르게 동생은 과감했다. 


동생은 내가 보기에 항상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곤 했다. '난 왜 저런 생각을 못했지?' 동생의 아이디어에 나는 늘 솔깃했다. 물론 집안이 한껏 어지럽혀지거나, 물건이 부서지거나 하여 결국은 엄마한테 혼나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부모님이 없으면 언니인 내가 보호자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래, 나는 보호자야.

과자를 먹고 싶은 마음 반, 동생을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 반으로 나는 길을 나섰다.


사택 아파트에서 좁은 길을 건너면 천막처럼 생긴 작은 구멍가게가 있었다. 우리는 거기서 신중하게 군것질을 골랐다. 과자를 하나씩 사고 길을 건너러 왔다.

"차 오기 전에 빨리 건너자. 뛰어!"

동생과 나는 전속력으로 달렸으나, 나는 거의 다 와서 넘어지고 말았다. 그 나이 때 넘어지는 건 다반사여서 사건도 되지 않을 거리인데 하필 내가 넘어진 곳이 깨진 보도블록 앞이었다. 나는 차가 올 새라 후다닥 일어나 걸었는데 뭔가 이상했다. 뜨끈한 뭔가가 흐르는 느낌이었고 바닥엔 이내 피가 떨어졌다.

"언니, 피 나! 언니 눈에서 피 나."

눈이 잘 보이는 것으로 보아 눈을 다친 건 아니고 눈 위가 깨진 보도블록에 찢어진 모양이었다.


집에 가도 아직 부모님이 올 시간이 아니었다. 우리는 울며 아파트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다. 울음소리에 2층 '산아 아줌마'가 나오셨다. (그 집 애 이름이 '산아'여서 우리는 아줌마를 '산아 아줌마'라고 불렀다.) 산아 아줌마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놀라며 병원에 가자고 하였다.

"안 돼요! 엄마한테 혼난단 말이에요. 병원 안 가요."

몰래 나가서 다쳤기 때문에 나는 엄마한테 혼나는 게 무서워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완강히 거부했다. 산아 아줌마는 택시를 안 타겠다는 나를 택시에 거의 욱여넣다시피 하였다. 일이 이 지경이 되자 나는 이제 반쯤 포기하고 내 몸을 산아 아줌마에게 맡기기로 했다. 


"언니, 죽지 마. 죽지 마!"

 동생은 병원 가는 택시에서 내내 울면서 죽지 말라고 외쳤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응급실은 마침 환자가 많지 않고 한산했다.

"어린아이들은 보통 마취를 하고 꿰매는데요, 오늘이 일요일이라 마취과 선생님이 없습니다. 그냥 꿰매야겠는데요."

산아 아줌마에게 설명하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동생은 더욱 흥분했다.

"우리 언니 수술하는 거예요? 으앙! 언니, 죽지 마!"


부끄러웠다. 동생의 울부짖음에 아픔과 걱정이 모두 사라졌다. 부끄러움이 모든 감정을 이겼다. 이런 걸로는 안 죽을 거 같은데 왜 저러나 싶었다. 눈썹을 꿰매는 동안 동생은 밖에 있었지만 동생의 우렁찬 목소리는 처치실 안에까지 들렸다. 

"언니! 죽지 마! 언니!!!"

언니 안 죽어, 안 죽는다고. 그러니 제발, 제발 누가 쟤를 좀 멈춰 주세요. 


"눈썹을 밀고 꿰맸습니다. 아이가 아주 의젓하게 잘 하네요. 흉터가 살짝 남을 순 있는데 다행히 눈썹이라서요. 상처 부위에 눈썹이 덜 날 수 있는데 눈썹은 나중에 그려도 되고요. 동생이 언니 생각하는 마음이 대단하네요. 언니 안 죽고 수술 잘 했으니 걱정 마."

의사 선생님의 말에 동생은 다행이라며 나를 부둥켜안았다. 

선생님, 사실 제가 의젓하게 견딘 게 아니에요. 동생의 목소리가 너무 신경 쓰여서 주삿바늘이 들어가는지 수술 바늘이 들어가는지도 몰랐다고요. 응급실이 이렇게 창피한 곳인가요?



우리 큰 아이도 입학하기 이틀 전에 콧등이 찢어졌다. 피가 철철 나고 코가 부어 오른 모습에 얼마나 놀랐는지. 코뼈가 다쳤을까 봐 많이 걱정했는데 다행히 코뼈는 괜찮아서 몇 바늘 꿰매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입학식 날에 코에 두꺼운 밴드를 붙이고 등교를 하는 아이 모습을 보니 눈썹에 밴드를 붙이고 학교를 다녔던 내 1학년 생활이 오버랩되었다. 

"건이 심하게 다친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애가 다쳐서 울고 코는 막 부어오르는데 심장이 두근거리더라. "라고 동생에게 말하니 동생이 말한다.

"그래. 이만하길 천만다행이지. 옛날에 언니 다쳤을 때도 내가 얼마나 놀랐겠어. 눈앞에서 피가 철철 나잖아. 얼마나 무서웠겠어. 그러니까 그렇게 울었지."

"그랬겠다. 나는, 다친 나는 안 우는데 네가 왜 그렇게 우나 했어."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언니, 죽지 마!"라고 외치던 동생의 목소리가 귓가에 선하다.

사랑스러운 동생아, 언니 안 죽어. 그러니까 걱정 마.

 

(이 글이 닿지는 않겠지만 그때 병원에 데려가 주신 산아 아줌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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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웬 작가님, <또 응급실? 자꾸 가면 버릇된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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