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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ul 27. 2022

일신우일신

7월 4주 보글보글 매거진 글놀이
"다람쥐만 쳇바퀴를 돌리는 것은 아니겠죠?"


쏟아지는 햇살이 볼을 기분 좋게 간지럽히고 살랑이는 바람에 커튼이 수줍게 왔다 갔다 하면 저는 나지막하게 "잘 잤다~"를 외치며 기지개를 켭니다. 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틀어놓고 커피를 내리면서 여유롭게 아침 식사를 준비합니다. 오전 요가 수업이 끝나면 풍광 좋은 카페에 앉아 지인들과 담소를 나눕니다. 때로는 혼자 노트북을 펼쳐놓고 글을 쓰거나 브런치 이웃 작가님들의 글을 읽지요. 오후가 되면 슬슬 장을 봅니다. 집으로 돌아올 가족들을 위해 따뜻하고 맛난 저녁을 준비하지요. 과일을 먹으며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정리합니다. 이렇게 저의 일상은 잔잔하고 편안하게 흘러갑니다.


는 개뿔.

겨우겨우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킵니다. 여름엔 숙면이 힘들거든요. 방에 누웠다가 답답해지면 소파에서 한두 시간, 그러다가 새벽녘에 추워지면 다시 방으로 가서 두어 시간 눈을 붙입니다. 여름밤만 되면 유목민이 됩니다. 그러니 하루 중 제일 졸린 시간은 아침에 눈떴을 때입니다. 눈곱도 안 떼고 커피를 내려 마시면서 분주히 아침 식사를 준비합니다. 그러면서 생각합니다.

'아... 이번 주 보글보글 글은 뭘 쓰지?'


저의 예민한 장은 '아무도 없는 오전 아홉 시, 노트북 앞에 앉아 커피를 반쯤 마셨을 때'에만 신호가 오는데 그 루틴이 깨진지는 오래입니다. 어떤 날은 1교시부터 학교 수업이 있어 가족들보다 먼저 나가기도 하고 어떤 날은 꼼짝없이 줌 화면 앞에 앉아야 하는 날도 있기 때문이지요. 가족들이 북적거리는 날에는 큰 일을 보지 못합니다. 들쑥날쑥 뒤죽박죽인 저의 화장실 타임. 다행히 이용 시간은 짧습니다. 볼일을 보는 짧은 시간, 힘을 주며 생각합니다.

'요즘 브런치를 통 못 들어가 봤네... 오늘은 꼭 들어가 봐야지.'


매일 그날 할 일을 메모합니다. 예전에는 다이어리나 달력에, 요즘은 휴대폰 메인 화면에 기록하지요. 오늘 할 일과 읽을 책을 쓰고 앞으로 읽어야 할 독서 리스트를 점검합니다. '오늘 해야 할 일'에 놓치지 말 것들을 많이 써두지만 결국은 완수하지 못하고 다음날로 이월되는 일들이 태반입니다.

어떤 날 오전에는 봉사가 있고 또 어떤 날 오전에는 들어야 하는 교육이 있습니다. 봉사센터 회의가 있는 날도 있고 아무것도 없는 날도 있지요. 직장이 없는 사람, 어디에 소속이 안 된 사람의 스케줄은 매일이 너무 달라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매일 찾아가야 하는 학교, 학급도 다르고 수업 주제도 다 다르고 만나는 사람들도 다릅니다. 반복해서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이 애초에 힘듭니다. 매일이 새롭습니다. 그래서 생각합니다.

'매일이 달라서 다행이다. 도처에 글감이 널렸구만.'


간헐적 단식 좀 해볼까 하는데 동네 지인이 맥주 한잔 하자며 연락을 해옵니다. '16시간 공복에 8시간 식사' 규칙을 지키면 된다고 합리화를 하는데, 다음날 점심때 또 다른 지인이 밥을 먹자고 합니다. 16시간 공복 루틴은 가볍게 깨지고 맙니다. 다시 16시간 카운트를 시작하는데 미친 듯이 배가 고픕니다. 다이어트는 내일부터가 국룰이라며 기분 좋게 식사를 합니다. 그러면서 생각을 합니다.

'다이어트 도전기 글을 써볼까?'


저녁식사를 마치고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오늘은 여유롭게 브런치 유랑을 떠나볼까 했지요. 보글보글 매거진 글을 일찌감치 써놓고 잠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주 수요일 발행을 앞두고 아이디어도 없고 너무 피곤해서 수요일 새벽에 일어나 써야지 했는데, 밤새 글감을 찾아 헤매는 꿈을 꾸었거든요. 그래서 노트북 앞에 앉았건만, 이번에는 남편이 조깅 겸 산책을 가자더군요. 몸을 움직이고 오면 아이디어가 더 떠오를까 싶어 따라나섰는데, 조깅 후 편의점 맥주 한잔까지 이어졌고 집에 와 찬물 샤워를 했어도 눈은 절로 감깁니다.

'이번에도 내일 새벽에 일어나 써야겠다...'



루틴(Routine)은 반복적인 습관을 말하고 리추얼(Ritual)은 루틴 중에서도 의미 있는 반복적인 행위를 뜻한다고 합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반복되는 일상중에서도 의미 있는 반복, 나를 일깨우고 성장시키는 반복은 무엇일까.

제 매일은 변수가 기본값입니다. 계획했던 일 중 몇 가지만이 실현될지도 모르고, 어떤 돌발상황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새로운 매일, 날로 새롭고 또 날로 새로워진다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 제 루틴이자 리추얼입니다. 거기에 더해 브런치 글쓰기를 향한 고민과 남모르는 강박이 리추얼이라면 리추얼이더군요. '뭘 쓸까, 어떻게 쓸까, 언제 쓸까, 왜 쓸까'를 고민합니다. 아무도 쓰라고 하지 않았는데 쓰지 않는 것에 조바심이 납니다.


제 루틴, 리추얼은 끊임없는 혼돈과 무질서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당황하지 않고 그러려니...

제 루틴, 리추얼은 그 혼돈과 무질서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매거진의 이전 글, 김장훈 작가님의 <반복되는 일상에 감사해야 합니다>


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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