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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Jul 25. 2022

주부의 시계

"다람쥐만 쳇바퀴를 돌리는 게 아니겠죠?"

이른 여섯 시! 눈이 떠졌다. 이런... 늦잠을 자려고 가족들에게 선전포고까지 했는데 저절로 눈이 떠지다니 짜증이 밀려왔다. 이럴 거면 어젯밤 뭐하러 호들갑을 떨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 내일 늦잠 잘 거야. 아무도 깨우지 마! 알았지? 아침은 각자 알아서 챙겨 먹기! 내가 일어나서 저절로 나올 때까지 나를 찾지 말아 줘!"


며칠 전부터 잠이 부족했었다. 낮에 일이 많았고, 장거리 운전도 했다. 물에 젖은 빨래 마냥 온몸에 추를 단 듯 무거웠다. 사실 누가 잠을 못 자게 하는 것도 아니다. 일부러 깨우러 오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스스로에게 다짐이라도 하듯 내뱉었다. 알람이 울린 것도 아닌데 매일 일어나던 습관대로 저절로 눈이 떠지다니, 늦잠도 아무나 자는 게 아닌가 보다.


정신은 말똥말똥한데 일어나기 싫어 침대에서 꿈지럭거렸다. 한참 지난 것 같은데 십 분도 안 지났다. 눈이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자외선 지수가 높은 여름이 되면 눈이 더 불편하다. 김장훈 작가님께서 특급 비법을 알려주셔서 아침, 저녁으로 눈 마사지를 하고 있다. 체온보다 살짝 높은 40도 온도로 따뜻하게 온열 찜질을 해주면 더 좋다고 하셔서 젖은 수건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려 찜질을 했다. 이내 귀차니즘이 발동되었고, 검색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장비 빨 세우기 좋아하는 내게 딱 좋은 아이템 하나가 눈에 쏙 들어왔다. 망설임 없이 장바구니에 넣었다.



눈 마사지기가 도착하니 천군만마를 얻은 듯 한 뿌듯함이 밀려왔다.


"앵글아, 이것 좀 봐. 완전 신기한 거 보여줄게."

"엄마가 산거야?"

"응. 장훈 작가님께서 찜질을 하면 좋다고 해서..."

"내가 먼저 해볼게."


설명서 읽기 귀찮을 엄마를 대신해 앵글이가 먼저 사용하고 알려주었다. 한 번 사용할 때마다 십 분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아침, 저녁 십 분씩 마사지를 하고 나면 눈이 좀 맑아지는 기분이다. 내가 부린 소소한 사치로 앵글이와 동글이도 힐링 모드를 누리고 있다.


더 이상 누워있을 수 없어 벌떡 일어났다. 여섯 시 사십 분, 브런치에 글 소식을 올렸다. 매주 일요일마다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다.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자각과 아쉽게도 오전 여섯 시라는, 굳이 이른 기상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스쳐도 괜찮은 이유 하나가 되어준다.


아침을 준비하러 주방에 들어섰는데 시선에 가스레인지와 주방 후드 얼룩이 들어왔다. 식사 준비할 맛을 앗아가 주섬주섬 분리해서 개수대에 넣었다. 주방 후드의 기름얼룩은 왜 이리 안 닦이는지 세제를 이것저것 바꿔가며 닦아도 맘에 들지 않았다. 치약 스프레이를 만들어 뿌리고, 뜨거운 물을 부어 녹여가며 반짝반짝 광이 나도록 닦고 또 닦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엄마, 아침은 언제 돼? 나 시간 없는데..."


이런, 오늘은 동글이의 그림책 교실이 있는 일요일인데 바쁜 아침, 주방 청소를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급하게 어묵국, 어묵볶음, 계란말이를 해서 동글이를 챙겨주고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결국 가족들 아침만 챙기고 나는 아침을 거르고야 말았다. 매번 이런 식이다. 허겁지겁 두 아이를 차에 태워 그림책 교실로 향했다. 동글이를 내려주고 카페에 들어 서니 한숨 돌려졌다. 앵글이와 함께 앉아 느긋하게 애플티에 케이크를 곁들였다. 따뜻하고 상큼한 애플티를 한 모금 넘기니 한결 여유가 느껴진다.   



일요일 오후라고 해도 주부의 일거리가 줄어드는 건 아니다. 세탁기와 건조기를 돌리고 개켜 각 방에 넣어야 한 가지 일이 마쳐진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방학을 맞은 앵글이가 내일 혼자 점심을 챙겨 먹을 수 있도록  '밥을 짓고',  '뚝딱 두부찌개'를 끓였다. 밑반찬을 즐기지 않는 앵글이 밥상은 언제나 일품식이다.



지난 2년 아이들이 집에 머물 때의 나는 그날이 그날 같았다. 아침에 눈을 떠 저녁에 눈을 감는 순간까지 같은 시간, 같은 일을 무한 반복하는 느낌이었다. 바쁜 것도 아니고 한가하지도 않은 분주한 하루를 보내도 뭔가 허전했다. 결과물이 문제다. 종일 종종 대며 무언가를 하고, 가족을 챙기고, 이웃과 함께 했지만 하루를 정리하려다 보면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의 방학이 시작됐다. 앵글이는 지난 수요일에 방학을 했고, 동글이는 돌아오는 화요일에 방학이 시작된다. 매일 반복되는 등교 준비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밥과의 전쟁이 들어설 예정이다. 반복되는 일상은 많은 것을 잊게 만든다.  


"오늘이 며칠이니? 무슨 요일이야?"

"잠깐... 내가 뭐 때문에 주방에 들어갔지?"


수시로 잊고, 찾는다. 규칙적인 일상이 흩어지면 늘 하던 것을 잊게 만들기도 하나보다.


이상하게도 방학 전 계획을 세워두면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사건사고가 계획을 어긋나게 했다. 앵글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였으니 거의 10년째이다. 올여름방학도 앵글이와 나름의 계획을 세웠었다. 그런데 친정어머니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방학 동안 고3 앵글이를 위해 시간을 쓰려했던 나의 계획은 어머니를 챙기며 보내게 될 것 같다.


나이가 들며 '나'의 자리는 '우리'의 자리로 채워지고, '나'를 위한 시간은 '우리'를 위해 사용되었다. 아직은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으로 살 수만은 없나 보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지만 크고 작은 변화들이 '나'를 깨운다. 쳇바퀴처럼 돌고도는 삶, 오늘도 나는 돌고 있다.


새벽닭이 우는 이른 다섯 시 이십오 분.

구름이 예사롭지 않게 하늘에 걸렸습니다. 사진으로는 저 멀리 회색빛 푸른 구름이 몰려있는 느낌과 색감이 담기지 않아 아쉽네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022-07-25 am.0525

※ 7월 4주(7.25 ~ 7.30) "다람쥐만 쳇바퀴를 돌리는 게 아니겠죠?"

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보글보글과 함께하고픈 재미난 주제가 있으시면 언제든지 댓글로 제안해주세요.

참여를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매주 일요일 주제가 나간 이후, 댓글로 [제안] 해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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