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봄유정 Nov 06. 2019

D-100 프로젝트 < D-53 >

사람은 '언젠가' 죽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죽을 수 있다.( 키키 키린 )               

100일 후에 죽는다고 생각하고 살면 하루가,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다.


"큰일 났다. 예비 29번인데?"


가족 톡방에 갑자기 올라온 큰아이의 말에 끼고 있던 고무장갑을 벗어던지고 노트북을 켰다. 4시 발표라더니 2시에 벌써 발표해 버렸다.

큰 아이의 수시 첫 발표였다. 도대체 왜 수능 일주일 전에 발표를 하는지...

대학 홈페이지에 들어가 입학처를 찾아 클릭했다. 접속자가 많은지 도통 들어가지지가 않는다.

겨우겨우 들어가 확인하니 아이의 말대로 예비 29번... 절망적인 숫자다.


"너무 신경 쓰지 마~~ 수능과 남은 실기에 집중하자~~~"

"뭐가 큰일이야~ 아직 수능도 있고 실기시험도 남았고 한데~"

나와 남편이 돌아가며 위로, 격려를 했지만 아이는 답이 없었다.

전화를 했다. 애써 담담하게 무심한 듯 대답하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니 내가 흔들렸다.

"많이 속상하지?"
"아니, 별로..."
"신경 쓰지 말고 일단 수능에 집중해~~ 이 악물고 공부 혀~"
"ㅎㅎ 알았어~~"

이 악물고 공부하라면서 내가 이를 악물었다. 떨리는 목소리가 들킬까 봐...

설거지를 마저 하고, 음식쓰레기를 버리고 오고, 빨래를 널고, 여기저기 행주질을 했다.


예상치 못한 결과가 주는 충격이란 이런 거구나...

아이가 한 달 전 이 학교 실기를 보고 나오면서 보냈던 메시지에는

"20학번 이 OO 인사드립니다~"라고 쓰여있었다. 그만큼 실기 결과에 자신 있어했다. 당연히 여기는 붙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시험을 치르지 않은 두 학교가 더 가고 싶으니, 수능을 잘 봐서 최저를 맞추고 실기 준비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하던 터였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행복한 상상을 했더랬다. 당연히 합격할 테니 '조금은 마음 편하겠구나'했다.

수시 원서를 쓸 당시에

'여기 붙으면 무조건 간다'였던 마음이,

'이왕이면 원하는 더 좋은 학교에 갔음 좋겠다'로 바뀌던 아침이었다. 그 오만방자함에 대한 벌같이 느껴져서 아이에게 미안했다.


홍삼 전문점으로 가서, 수험생을 위한 7일 패키지 제품을 가격도 안 보고 단번에 샀다.

기억력을 좋게 한다는 환 7개와 체력을 보해준다는 홍삼액. 상술이 뻔하지만 그래도 기대 본다. 알면서도 당해주는 것이다. 아니 도리어 고맙기까지 했다. 이런 좋은 제품이 있다니...마음의 짐을 덜어줄 좋은 제품...

이걸로 일주일을 잘 버텨주기만 바랄 뿐이다. 이것밖에 해줄 수 있는 게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체대 입시에서는 어느 학교에 원서를 낼지  고민하는 것이 부질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내신과 평소 실기 점수를 가늠해 학교를 정하지만, 실기 당일의 컨디션이나 실수 한 번이 합을 좌우하는 것이었다.

"성적이 학교를 결정하고, 실기가 합격을 결정한다."는 명제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아직 남은 두 학교에는 희망이 있다는 얘기일 거다.


남은 일주일 동안은

당사자는 물론 식구 중 누구도 아프지 말아야 한다.

다치지도 말아야 한다.

어떤 돌발상황도 없어야 한다.

2년 전 지진으로 수능이 일주일 미뤄지는 것 같은 사고야 어쩔 수 없다지만,

조심해서 피할 수 있는 모든 걸 피해야 한다.

모든 정성을...

다해야 한다...



아이의 입시를,

입시 결과를 내 글의 소재로 소비하는 게 미안하다.

하지만, 아이도 내 삶의 일부이고 내 하루인걸 어쩌겠는가...    

작가의 이전글 D-100 프로젝트 < D-54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