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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Sep 27. 2022

이런 게 나이 듦이라면...

"흰머리는 왜 뽑아?"

"자꾸 거슬려."

흰머리를 뽑기 시작했습니다. 머리빗에도 흰머리가 박히기 시작한 것이 신기하면서도 아리기 때문입니다.


요즘 부쩍 나이 드는 제 자신을 자각합니다. 거울 속 나와는 달라도 한참 다른 저를 사진이나 영상에서 발견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한 달 전, 교육자원봉사 홍보영상을 찍었습니다. 각 봉사팀의 팀장들이 내레이션을 하고 자료 영상이 함께 나가는 간단한 3분 남짓의 영상을 위해 3kg을 뺐습니다.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살이 쪘지만 조금이라도 날씬해 보이고 싶었거든요.

결과물을 보고... 참담했습니다. 정말 이게 나라고? 내가 이 정도라고? 이렇게 늙었다고? 이렇게 퍼졌다고? 받아들이기 힘들었지요.

"영상이 너무 이상하게 나와 속상하시겠어요."

"왜 이렇게 나왔지?"

위로해주는 이들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다시 찍겠다는 농담을 던졌지만 헛헛해진 마음은 달래기 힘들었습니다.


가족들에게도 차마 보여주지 못했지요. 남편은 두고두고 놀릴 것이 분명하고 작은 아이는 당연히 괜찮다며 위로할 테니까요. 조만간 유튜브에도 올라갈 영상의 조회수가 0에 수렴하기만을, 절대 흥행에 성공하지 않는 홍보영상이 되기만을 기도 중입니다.



"하늘 사진은 왜 찍어? "

"그냥? 이쁘잖아~"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얼마 전부터 주차장에 들어가기 직전 눈앞에 펼쳐지는 하늘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17년을 흘려보내던 광경에 발목이 잡힌 까닭입니다. 흰머리를 뽑거나 하늘 사진을 찍으려고 차를 세우는 엄마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들에게 용기를 내어 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에이. 절대 엄마처럼 안 보이네. 잘 됐네. 이 영상 봐서는 아무도 엄마인 줄 모를 것 같은데?"

아들의 하얀 거짓말에 깜빡 속아 이내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나이 드는 것이 흰머리가 늘어나고 넓적해진 얼굴을 달고 사는 것이더라도, 인정하렵니다.

저에게 나이 든다는 것은 자꾸 하늘을 쳐다보게 되는 것이기에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나이 들어야겠습니다.

같은 장소 다른 하늘


용인 대장금 파크의 가을,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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