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글보글 매거진] 글놀이 '마스크'
"요즘 애들 진짜 웃겨요. 급식 시간에도 마스크 내리고 먹는 애들 거의 없어요. 마스크 살짝 들고 밑으로 숟가락 넣어서 밥 먹는다니까요? 화장도 눈이랑 이마만 해요. 쉬는 시간에 보면 다들 이마만 두들기며 화장하고 있어요. 톡톡톡톡 딱따구리 같다니까요? 남친을 사귀어도 절대 마스크를 내리지 않는대요. 아마 그런 애들은 마스크 실내 착용이 해제되어도 계속 하고 다닐걸요?"
중학교 1학년 조카는 열변을 토했습니다. 딱따구리처럼 이마에만 화장을 한다는 친구들을 흉내 낼 때는 온 가족이 배꼽을 잡고 웃었지요. 지난 설, 가족들의 대화 주제는 '마스크'였습니다. 지난 3년간 지겹게 해온 이야기였지만 실내 마스크 착용의 부분 해제를 앞둔 대화는, 조금은 들떠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마스크를 벗지 못할 것 같아. 어떨 땐 쓰고 있는 게 편하기도 해. 썼다 벗었다 하는 게 더 불편하기도 하고."
70여 년을 마스크 없이 살아온 부모님들에게도 3년간의 마스크 착용은 이미 적응해 버린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직은 마스크를 벗고 다니는 사람을 찾기 힘듭니다.
코로나 3년, 마스크 생활은 우리에게 여러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사람의 인상 혹은 미모는 하관이 결정한다는 것부터 청소년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마스크를 포기 못한다는 것까지 말이죠. 마스크를 쓰지 않던 일상을 찾으면 모든 것이 순식간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예전으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당분간은 또 다른 혼란에 빠질 것 같습니다. 마스크를 내린 모습으로는 서로를 알아볼 수 없는 난관 말이지요. 특히 코로나 시기에 처음 만난 사이, 마스크 쓴 모습밖에 보지 못한 사이라면 길에서 만나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칠지 모르겠습니다. 상대가 아는 척을 한다 해도 "댁은 뉘슈?" 하는 표정으로 멍하니 서있을테죠.
얼마 전 졸업한 둘째의 고등학교 졸업앨범을 볼 때였습니다. 3학년 담임선생님들 사진에서 둘째 아들의 담임선생님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요. 한참만에 찾기는 찾았는데 너무 낯선 모습에 당황했고 길에서 만났다면 절대 인사를 드리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에 당혹스러웠습니다. 이름은 잘 못 외워도 한번 본 얼굴은 잘 기억하는 편이라고 자부했는데 마스크 착용 전 후를 매칭시키는 일은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지난 3년간 학교 수업을 하면서 만났던 수백 명의 학생들과 선생님들, 곳곳에서 만난 인연들. 그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 같습니다.
1983년 6월 30일부터 138일 동안 방송했던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라는 프로그램이 생각납니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던 기구한 사연들의 주인공들이 끝없이 나와 전 국민을 울음바다에 빠뜨렸던 그 프로그램이 40년 만인 2023년에 부활할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해봅니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얌전한 몸매에 빛나는 눈
고운 마음씨는 달덩이같이
이 세상 끝까지 가겠노라고
나 하고 강가에서 맹세를 하던
이 여인을 누가 모르시나요
당시 타이틀 곡이었던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의 가사 중 '얌전한 몸매'와 '빛나는 눈', 그 밑으로는 설명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2023>은 '전설의 고향'을 봤을 때처럼 눈을 살짝 가리고 봐야 할지도 모릅니다. 마스크 착용 전 후의 간극은 눈물보다는 충격, 공포에 가까울 수 있으니까요. 혹은 배꼽 빠질 준비를 하던가, 때로는 "와~~~"하는 탄성을 지를 수도 있겠네요. 수많은 마기꾼(마스크 사기꾼)과 마해자(마스크 피해자)를 만나볼 준비, 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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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훈 작가님의 글입니다.
전지은 작가님의 글입니다.
실배 작가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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