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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Feb 24. 2023

자격증 공부의 이유

남편은 2020년 봄부터 자격증 취득을 위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국가자격증이라 녹록지 않은 시험이었지만 그의 의지는 확고했습니다.  

              

남편은 두 가지 이유로 자격증 시험을 공부한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의 수입이 우리 네 식구의 생활비로 충분치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작은 회사에서 근근이 입에 풀칠할 정도의 월급을 받는 남편은 늘 제게 미안해했습니다. 다른 남편들처럼 충분한 생활비를 주지 못하는 것, 아내가 네일아트 한번 받아보지 못했다는 것을 꽤 속상해했지요. 먹성 좋은 아들 둘의 끼니를 어떻게 마련하는지 궁금해했고 후회 없이 뒷바라지해줘야 한다는 강박도 컸습니다.      

결국,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그를 자격증 취득의 길로 내몬 셈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나랏돈을 써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남들처럼 주식이나 비트코인으로 돈 버는 재주는 애초에 갖고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전문직도 아니요 요즘 잘 나간다는 IT계열도 아닙니다. 그러니 우연한 기회로, 혹은 개인의 능력으로 억대의 수익을 올리는 것은 힘듭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국가자격증을 취득해 국비지원사업을 따내 느리고 성실하지만 꾸준히 벌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자격증 도전으로 첫 도전 해인 2020년 1차 합격이라는 결실을 맺었습니다. 이듬해인 2021년에는 2차 시험을 준비하며 매일 열공했습니다. '출근시간 한 시간 전 회사에 도착해 공부, 7시 퇴근 후 도서관이나 스터디 카페에서 밤 10시까지 공부, 토요일 오전 3시간 스터디 모임, 일요일 종일 공부'라는 루틴을 수달동안 이어갔습니다. 100세 시대에 곧 50에 이르는 사람으로서 바람직한 자세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가슴 한편이 시렸습니다. '정말, 자격증 취득 자체가 목적이자 공부를 하는 순수한 동기일까?' 하는 의문이 뒤따랐기 때문입니다.                


그즈음 동네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이런 얘기가 오고 갔습니다.      

"남편들은 참 이상해. 애들 한참 어리고 손 많이 갈 때는 바깥일 바빠서 매일 늦게 들어오고, 주말에도 골프다 뭐다 해서 집에 붙어있지를 않아서 마누라 고생시키더니, 이제는 칼퇴근에다가 회식도 안 하고 꼬박꼬박 집에 와서 밥을 먹질 않나, 주말에도 애들은 학원 다니느라 정신없고 나도 애들 밥 먹이고 픽업하느라 종종거리는데 심심하다고 얼마나 칭얼거리는지..."     

"그 집도 그러는구나? 자기가 언제부터 그랬다고 마누라 껌딱지가 돼서는 얼마나 귀찮게 하는지 몰라."     

"어디도 가지를 않아. 젊었을 때는 약속도 많더니 이젠 그런 것도 하나 없나 봐. 회사생활만 했으니 동네 친구도 없고. 그저 마누라에, 집밥에, 집 밖에 모르게 돼버렸어."     

"왜들 그러나 몰라? 초점을 못 맞춰. 인생은 타이밍인데 말이야."     


"자기들 남편도 자격증 공부하라고 해~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많이 줄어~ 애들한테도 아빠가 공부하는 모습 보이니까 바람직하고~"     

이렇게 말하던 순간 머리가 띵해졌습니다. 어쩌면 남편은, 가족 내에서 소멸돼 가는 자신의 자리를 찾느라 아등바등거리는 대신 '자격증'이라는 그럴듯한 핑계를 만들어 부유하고 있는 게 아닐까. 명분도 있고 뜻하는 바도 있다지만, 때로는 강박을 내려놓고 집에서 적당히 뒹굴거리고 싶지는 않을까.     

중년 남성의 귀소는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고 지레 겁먹은 것은 아닐는지... 정력, 정렬, 의욕이 모두 떨어진다는 갱년기를 들키지 않기 위해 여전히 열정적인척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정에서, 사회에서 여전히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공식 자격을 취득하려는 것인지...           

    


2021년 2차 시험에 아깝게 떨어진 남편은 2022년 재도전에 성공해 경영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동시에 공인중개사 1차에 합격했고 올해는 공인중개사 2차와 가맹거래사 1차에 도전 중입니다. 코로나 창궐과 함께 불붙었던 공부가 코로나와 함께 시들해진 걸 보니, 지난 3년간의 자격증 도전이 어쩌면 갱년기와는 무관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만, 오늘도 남편은 꾸역꾸역 가방을 꾸려 나갔습니다.


볕 좋은 어느 일요일, 학생들도 그날쯤은 하루 쉬고 싶었는지 휑한 도서관 열람실에서, 신문을 보는 중년 남성과 이어폰을 끼고 야구 중계를 보는 남자들 사이에 앉아있는 남편을 본 적이 있습니다. 군대 간 아들에게서 물려받은 아이패드에 수험서를 다운 받아 열심히 필기해 가며 인강을 듣던 그는, 갱년기를 꽁꽁 감추고 있던 걸까요, 여전히 열정이 넘치는 사람인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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