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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Mar 04. 2023

식탐도 갱년기 증상인가요?

남편은 늘 입버릇처럼 말합니다.     

"난 먹는 거에 별로 관심 없어. 한 끼 때우면 그만인걸."     

하지만 관심 없다고 하기엔 미각이 너무 발달했고 아무거나 입에 넣는 사람이 아닙니다. 외식업계에 발들인 뒤부터 생긴 직업병 같은 것인데 정작 본인은 자신의 입맛이 까탈스럽다는 것을 모르고 있지요. 아니, 인정하지 않는다는 게 더 맞을 겁니다.

            

그러던 그가 언제부터인지 먹을 것에 노골적으로 집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아이들과 자신의 반찬 비교였던 것 같네요.

퇴근할 때 신발을 벗기 전부터 코를 킁킁대며 말합니다.      

"우리 아들들한테 고기 구워 줬구나?"     

거기서 한 술 더 떠 한마디 보탭니다.      

"그저~ 아들아들. 아들들만 챙기네. 음하하하하"      

농담이라고 한 건지 자식만 챙기지 말라는 경고인지는 모르겠으나, "당신도 먹을래?"라고 물어보면 좋다며 얼른 식탁에 앉습니다. 콧노래를 부르며 소주를 한병 챙기고 좋아하는 쌈을 야무지게 싸 먹습니다.

              

식사가 끝나면 간식 넣어두는 캐비닛을 열어 놓고 한참을 째려봅니다. 제일 좋아하는 감자과자를 꺼내 한봉 통째로 클리어하고 나면 냉동실을 열어 아이스크림을 꺼냅니다. 그것도 두개나요. 순식간에 먹어치운 뒤 마지막으로 부스러지지 않는 과자, 예를 들면 빼빼로 같은 걸 들고 침대로 향합니다. 좋아하는 유튜브를 시청하며 과자를 먹다가 잠들고 싶은 겁니다.      


과자가 당기지 않는 날엔 그냥 자냐고요? 아뇨... 마른오징어를 먹습니다. 몸통 옆구리에 가윗집을 넣어 굽는 섬세함도 잊지 않습니다. 마른오징어가 너~~ 무 맛있답니다.            

    

아침엔 도시락을 챙겨 나갑니다. 회사에서 먹는 밥이 영 시원찮다고 해서 싸주기 시작한 게 벌써 서너 달이 됐습니다. 현미밥에 국, 반찬 하나, 김치하나, 과일 한통.     

단출한 도시락이지만 싸는 사람 입장에서는 보통 성가시고 신경 쓰이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남편이 먼저 됐다고 하기 전에 제가 먼저 그만두기가 참 그렇습니다.        

제가 도시락을 싸는 동안 남편은 냉장고를 열고 두유 한팩과 박카스 한 병을 챙깁니다. 얼마 전, 박카스 두 박스를 사놓았는데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는 겁니다.      

"난 박카스를 하루에 한 병은 먹어야 피로가 확 풀리는 것 같아."     

"언제부터 박카스를 먹었다고?"

"나 원래 박카스 좋아했어. 너~무 맛있어."               

커다란 백팩에 도시락을 넣고 가방 양 옆에 달린 보조 주머니에 박카스와 두유를 챙겨 출근하는 모습이 마치 소풍 가는 아이 같습니다.    

            

갱년기가 되면 원래 식욕이 저하되는 것 아니었나요? 모든 의욕이 떨어진다고 하던데요... 먹는 것에 도통 관심이 없어지고 뭘 먹어도 아무 맛도 안 나고. 그런 것 아니었나요?     

제 남편에게 발견되는, 아직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갱년기 증상, 식탐.

갱년기를 거부하고 싶은 심리가 역으로 모든 욕구에 불을 지핀 것만 같습니다.



2021년 5월 4일에 써두었던 글입니다.

지금은요?

여전히 음식에 관심이 없다, 아무거나 먹고 허기만 때우면 그만이라고 합니다만...

갱년기는 다 지나간 것 같은데, 한 번 불붙은 식탐은 그대로 식성이 되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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