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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May 23. 2023

자기네 학교 축제는 안 가면서...

대학 1학년, 5월.

녹음이 우거진 캠퍼스 곳곳에는 활기가 넘치고 매일매일이 축제 같은 시기. 

동기들과 술, 선배들과 술, 미팅 나가서 술, 낮에도 술, 밤에도 술. 

공부를 하러 온 건지 술 마시며 놀러 온 건지, 그러려고 비싼 등록금을 낸 건지 고민할 겨를도 없고 집보다 학교가, 가족보다 동기들이 더 좋아 학교에서 살다시피 하는 삶.


그랬던... 95학번인 엄마와는 전혀 다른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둘째입니다. 대학생활에서 큰 재미를 찾지는 못했지만 학과 공부는 그럭저럭 재미있다며 공부만 하는 아들. 그의 다름을 지켜보는 것이 재미있는 요즘입니다. 

아들은 시간표에 맞춰 등교하고 수업을 마치기 무섭게 귀가합니다. 술을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객쩍은 농담이 오가는 술자리를 무의미한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아들은 성향이 비슷한 동기들과 점심 학식을 먹는 것으로 교우관계를 다집니다. 

귀가 후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엔 과제를 합니다. 할 게 너~~ 무 많다며 깨알 같은 글씨로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 '대학을 가긴 간 건가? 고등학교 때보다 공부를 더하는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과제를 끝내면 자정이 훌쩍 넘을 때까지 게임을 합니다. 친한 친구들이 거의 재수 중이라 게임하는 친구는 늘 인근학교에 진학한 A. 게임을 하며 서로의 대학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우리 학교 3대 바보가 있거든? 그중 하나가 우리 학교 축제에 가는 애래. 그 정도로 재미가 없대. 연예인도 안 불러. 올해는 웬일로 '있지'를 불렀더라? 축제라는데 학교가 썰렁해. 너네 학교엔 연예인 누구누구 오냐? 뭐? 르세라핌? 아이콘? 피식대학 정재형? 대박!!!"



...

아들에게 소개팅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남편은 아들에게 지인의 딸인데 모 여대 서양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이라며 만나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습니다만, 아들은 바쁘기도 하거니와 여친 사귀기에는 관심이 없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여자 친구라 생각하지 말고 다른 학교 친구를 사귀어 보는 기회가 아니냐며 재차 권해보았지만 시큰둥했습니다. 타고난 기질에 가까운 아들의 귀차니즘이 이성교제에까지 미칠 줄이야... 


남편은 소개팅 상대였던 여학생의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그 여학생이 우리 아들 이름과 학교, 학과만 알려달라고 했대. 자기가 SNS로 찾아보고 알아서 연락 주고받겠다고 말이야.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어디에서도 우리 아들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더래."

- 갸가 우리 아들을 모르는구먼? 우리 아들은 SNS상에서는 생존반응이 없는 안데 말이여. 인스타는커녕 카톡 프로필 사진이나 상태메시지도 안 쓰는 애잖어. 찾을 수가 없지. 

"그러니까... 그래서 그 여학생이 그런 애랑 사귀고 싶지 않다고 했대. 보나 마나 SNS도 안 하고 공부만 하는, 재미없는 애일 것 같다고."

-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어. 그런데 공부하려고 SNS 안 한 게 아닌데 큰 오해를 하고 있네. 우리 애는 그냥 귀찮아서 안 하는 건데... 차라리 그 시간에 게임 한 판을 더 하자는 주의인데...


관심 없던 소개팅이지만 나가기도 전에 까여버렸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까이고도 아무 반응 없는 아들이었습니다. 엄마가 느꼈던 캠퍼스의 낭만, 1학년만이 느낄 수 있는 자유, 어울림의 즐거움, 이성과의 자연스러운 만남, 그때가 아니면 누릴 수 없는 것들을 아들도 경험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저의 욕심이었습니다. 강요한다면 폭력이요, 강요한다고 들을 아이도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

그런데 며칠 전, A가 다니는 대학의 축제에 다녀온 아이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떠들었습니다. 

"바로 그런 게 대학생활이지.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몰라. 축제도 재미있고 사람들도 재미있어. 종강파티 때 나도 불러달라고 그랬다? 우리 학교랑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달라. 사람들도 달라. 나 인스타도 깔았다? A의 동아리 선배들 몇 명을 팔로우했어."

먹지도 않던 술에 거나하게 취해서는, 

자기네 학과 개강파티는 가지도 않았으면서, 

자기네 학교 축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면서, 

SNS는 한 적도 없으면서, 

남의 학교 축제에 갔다가 한껏 달뜬 얼굴로 돌아온 아들이 참... 

어이없고 신기했습니다. 


- 그런데 있잖아. 네가 몸담고 있는 학교에서 즐거운 것을 찾고 함께 즐거울 사람을 찾아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너는 너희 학교의 학생들이 달라서 안 맞는다고 하지만 사실, 네가 바로 그 학교 학생이잖아. 

꼰대 잔소리를 늘어놓은 저입니다만 삶에 정답이 없는데 하물며 대학생활에는 정해진 답, 방식이 있겠는가 싶습니다. 그러니 그저, 계속 지켜보고 응원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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