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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un 25. 2023

관례 대신 답례

학기말이 다가오며 고민거리가 생겼다.  

팀이 함께 움직였던 예년과 달리 혼자만 불려 간 수업이 많았던 올해라서 생긴 고민이었다. 학생들 수업 외에 교사연수 등의 다른 강의까지 소개해준 선생님, 작년에 맺은 인연을 잊지 않고 다시 불러 두 개 학년의 수업을 몰아준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싶었던 것.


수년간 영업을 했던 남편은 말했다.

"당연히 사례를 해야지. 학교도 사람 사는 곳이야. 다음에도 당신을 또 불러주길 원한다면 반드시 성의 표시를 해야 하는 거야. 당신이 사회생활을 안 해봐서 모르나 본데, 다 그러고 살아."

그러면서 업무 담당 선생님을 따로 만나 상품권이라도 챙겨드리라 했다.

프리랜서 강사로 왕성하게 활동 중인 지인은 말했다.

"개인적으로 불러준 거라면 해드리는 게 관례죠. 보통 강사료의 10% 정도 선에서 준비하곤 해요. 명품 스카프나 넥타이 정도 해드리는 게 좋겠네요."


조언을 구해놓고 기껏 답을 들었는데 마뜩잖았다. 결국 현직 초등교사로 있는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유정아~ 그런 사례는 안 하는 게 좋겠어. 괜히 네 이미지만 안 좋아질 거야. 내가 만약 그런 선물 받으면 난감하고 불편할 것 같아. 널 다시 보는 게 오히려 민망할걸?"

"그치그치? 그렇게 과한 선물은 사리에 맞지 않는 거지? 그런 관행, 관례를 따르지 않아도 괜찮은 거지?"

그랬다. 내가 듣고 싶은 답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수업 마지막 날, 평소처럼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다. 디베이트는 우리가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도구 중 하나라는 것을 기억해 달라는 당부와 함께 'DEBATE'라고 쓰여있는 연필 한 자루씩을 나누어주었다. 선생님들께는 연구실에서 함께 드시라고 작은 쿠키 한 상자를 드렸다. 선생님들은 그마저도 난색을 표하셨지만 쉬는 시간마다 커피와 간식을 챙겨주시고 수업 시간 내내 함께 해주셨던 노고에 대한 답례는 꼭 하고 싶었다. 관례라 불릴 만큼의 부담스러운 선물 대신 답례 수준의 작은 마음.


나도 선물을 받았다.

어떤 5학년 남학생은 집에서 손수 포장해 온 고구마말랭이와 러스크를 수줍게 내밀었다. 자신이 한 번도 안 쓴 건데 쓰시겠냐며 빨간 볼펜을 준 아이도 있고 자신이 끼고 있던 반지를 빼서 내 손가락에 끼워준 아이도 있었다. 미처 마지막 수업인 줄 몰랐던 4학년 남학생은 허둥대며 잠깐만 가지 말라며 외치더니 가방에서 깨끗한 메모지 두장을 선물로 주었다. 편지라도 한 줄 써서 달라고 과욕을 부렸더니 그건 싫다며 빈 메모지 두장만 손에 쥐어주고 돌아섰다. 주머니에 있던 초콜릿 하나를 급하게 건넨 아이, 우르르 뛰어와 내년에 또 만나자고 꼭 안아준 아이들도 있다. 연필 한 자루 쥐어주고 답례를 잔뜩 받았다.

"내년에도 꼭 다시 와주세요~"

아이들과 선생님께 마지막까지 선물을 받았다.


친구는 말했다.

"선물 같은 거 드리지 않아도 네 실력을 인정한다면 결국 널 다시 찾아줄 거야."

실력이 별로라면 다시 불러주지 않는 게 당연하다.

과한 선물을 안겨주면서 다시 불러달라고 하는 사람이라면, 거한 선물을 받았다고 다시 불러줄 사람이라면, 서로 거르는 게 맞다.

프리랜서 강사라는 직업을 가진 나에게는 선생님보다 아이들이 가장 큰 고객이다. 아이들에게 받은 과분한 선물은 거를 수가 없으니, 다시 고민 시작이다. 행복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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