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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an 03. 2024

그녀가 남긴 숙제

6년간 교육자원봉사센터 업무를 책임졌던, 교자봉의 중심이었던 업무담당자가 떠났다. 2주 전 조촐한 송별회를 열었다. 그녀와 함께했던 몇 년간을 돌아보며 우리 모두 한껏 울고 실컷 웃었다. 타지역 교육지원청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그녀를 열렬히 응원해 주었다. 남겨진 우리는 섭섭하지만, 떠나는 그녀의 발걸음은 가벼울 수 있게...


케이크를 주문했다. 캐릭터를 넣고 문구도 넣은 특별한 케이크. 여러 업체를 알아보고 직접 찾아도 가봤다. 맘에 드는 업체와 몇 번의 문자를 주고받았다. 송별회 당일 아침 일찍 픽업을 했다.

케이크 위에 꽂을 타퍼를 주문했다. 업체를 알아보고 그녀의 사진과 문구를 보내고 또 몇 번의 문자를 주고받았다.

감사패를 주문했다. 디자인 업체 사이트에 들어가 맘에 드는 감사패를 고르고 문구를 여러 번 수정하며 시안을 확인했다.

감사패를 주문하는 김에 테이블에 놓으면 좋겠다 싶어서 미니 배너도 주문했다. 그 작은 것 하나 디자인하는 일도 손이 많이 갔다.

송별회 2주 전부터는 영상을 만들었다. 그녀와 함께 찍었던 사진을 수집해 순서를 매겨 영상 편집기에 넣었다. 송별회 영상에 어울리는 배경음악을 찾다 보니 플레이리스트에 온통 이별 노래만 쌓였다. 잘할 줄도 모르면서 노가다 같은 영상편집을 무턱대고 했다. 만들고 맘에 안 들어 다시 만들기를 수십 번. 송별회 당일 새벽까지 뜯어고쳤다.

그녀가 전근 간 교육지원청에 넣을 간식을 준비했다. 떡을 맞추고 쿠키와 캔디, 음료를 작은 쇼핑백에 넣었다. 간단한 문구를 적은 카드도 출력해 쇼핑백에 붙였다.

그녀의 새 직장에 간식을 배달하는 것으로 송별회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이 모든 걸 혼자 해야 했다. 그러면서... 그제야 보였다.

여태 그녀 혼자 이 모든 걸 감당했구나. 많이 외롭고 때로는 힘들었겠구나. 각자의 분야에서 바쁘게 활동하는 봉사자들을 대상으로 어느 것도 강요할 수 없었겠구나. 도와준다는 말만 믿고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없고 기운도 빠졌겠구나. 그런데 그게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서 어디다 하소연할 수도 없었겠구나...


그녀가 완전히 떠난 센터에 누구라도 앉아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새해 첫날 출근을 했다. 연휴 동안 차갑게 얼어버린 공간에 전등과 난방을 켰다. 뜨거운 커피를 내리고 컴퓨터를 켰다. 이제 할 일을 싸 들고 매일 이곳에 와야겠다는 강박, 의무감이 생겼다.

그녀 혼자서 했던 일들이 내게 주어졌다. 모두 한 목소리로 말한다. 혼자 하지 말라고, 함께 하자고... 그런데 함께 나누어하기에는 애매한 일들이다. 그녀가 매일 했던 말이 들린다. "다들 너무 바쁘셔서..."


그녀 혼자 동분서주할 때 많이 돕지 못한 것이 내내 미안하다. 다른 이들이 내게 내내 미안해하지 않게 함께 짐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게, 내게 주어진 가장 큰 숙제가 될 듯하다.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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