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봄유정 Sep 22. 2024

아무튼 오리

< 라라크루 금요문장공부 >

⭕ 라라 크루 <금요 문장 : 금요일의 문장 공부 > 2024.09.13

[오늘의 문장] - 뱀파이어 생존 투쟁기 中, 퇴마사 강태인이 자신의 가장 소중한 친구를 지키기 위해 마녀와 싸우러 가는 길에 한 독백.


'그래, 이 정도는 당해주지. 하지만 난 이긴다.'

합리적인 근거는 없었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그는 지쳐있었고 마녀는 모든 준비를 끝내놓고 있었다. 그러나 이겨야 했다. 그러니 이길 것이다.

'그래. 마녀여. 난 지킬 것이 많고 넌 없었기에 내가 불리하다. 그러므로 내가 이긴다.'


[나의 사진과 나의 문장]

'그래, 지금은 잠시 물러나 있겠다. 하지만 결국엔 내가 그녀의 마음을 얻을 것이다.'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보였다. 하지만 멀리서 지켜봤을 때 상대는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생각에 안주하는 듯 보였다. 나 역시 더 늦기 전에 진심을 전해야 했다. 그러니 전달될 것이다.

'난 아직 내 마음을 전하지 못했고 넌 전했기에 내가 불리하다. 하지만 내게는 기회가 남아있다는 얘기니, 럭키비키잖아?"


[그들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 

작년 이맘때쯤, 탄천 길을 걷다가 세 마리의 청둥오리를 발견했습니다. 한 마리를 가운데 돌 위에 앉혀두고 두 마리가 신경전 내지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했습니다. 가까이에 있는 녀석은 의기양양해 보였고 멀리 떨어진 녀석은 의기소침해 보였지요. 그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그들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다시 사진을 보니 가운데 앉아 있는 오리가 참 요망해 보였습니다. 몸은 가까이 있는 녀석을 향해있는데 시선은 멀리 있는 녀석을 보고 있었어요. 가까운 곳에서 바라봐주는 사람은 외면한 채 먼 곳에서 다른 사람만 찾고 있는 엇갈린 사랑을 보는 것도 같았고, '지금, 여기'에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의 욕망을 말하는 것도 같았습니다.


검색을 하고 사진을 꼼꼼히 보니, 세 마리 모두 암컷 청둥오리인 듯싶었습니다. 수컷의 머리는 광택이 나는 녹색이라는데 제가 본 세 마리는 모두 비슷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거든요. 내가 오해했구나. 저 멀리 어딘가에 있는 수컷을 향한 암컷 세 마리의 암투이거나, 세 명이 모이면 한 명은 꼭 따돌리고야 마는 집단의 습성이었을 수 있겠다는 것으로 생각의 방향을 틀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더 알아보니 그들은 청둥오리가 아니었습니다. 흰뺨검둥오리더라고요. 암수가 비슷하게 생겨서 외형만으로는 구분할 수가 없다는 충격적인 사실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대체 난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가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객관적 사실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눈에는 여러 가지 필터가 덧씌워져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무지의 필터, 편견의 필터, 상상의 필터, 욕망의 필터...

객관적이라고 할 만한 사실은 그들이 '오리'라는 것뿐이었습니다. 종, 성별, 나이, 성적 지향 등을 따지지 않고 남는 것은, 아무튼 오리라는 것.


1년 전 무심코 찍어둔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니, 그때의 시선도 생각도 모두 엉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과거의 모든 순간을 다시 끄집어내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나라는 사람의 역사가 얼마나 엉망이었는지를 알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아닙니다. 끄집어내는 일은 재앙이 될 터, 오늘의 역사부터 담백하게, 깔끔하게 다시 써 내려가렵니다. 필터 없이 객관적으로 세상을 보는 방법도 연구해 봐야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하기는 할까요?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금요문장공부

#편견없는세상은편견없는시선에서부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