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에서 온 나에게

3부 경계와 귀환, 기나긴 우회로

by 가브리엘

11장 ― 일본, 우회

계약서는 도쿄의 한 호텔 스위트룸에서 작성됐다.

천장 조명이 낮았고, 탁자 위엔 정갈하게 놓인 붓펜과 잉크.

통역사는 앞자리에 앉아
조용하고 정확한 톤으로 문장을 옮겼다.

“연봉은 JPY 기준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성공 수당은 퍼포먼스 연동이며…
가족 교육 지원은 별도 규정으로 처리됩니다.”

계약서엔 숫자가 세 줄이나 있었다.

기본 연봉.
성공 보너스.
가족 정착비.

마지막 페이지 하단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외국인 전용 맨션 제공.
가족 국제학교 학비 전액 지원.
차량 및 기사 지원.”

나는 숫자보다 문장에 압도되었다.

내가 아닌,
‘내가 된 어떤 존재’를 위해 준비된 환대.

펜을 들었을 때
내 손끝은 조금 떨리고 있었다.

며칠 후, 오사카 공항.

검은 정장, 흰 장갑의 기사가
내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차창 밖으로 흐르던 도시 풍경이
이상하게도 하얗게 느껴졌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신호등의 색과 도로 표지판은
나를 어느 방향으로든 인도했다.

맨션은 간사이 대지진 후 새로 개발된 로코아일랜드의 한가운데, 오사카만이 내려다 보이는 고층 빌딩이었다.


엘리베이터는 카드 키로만 작동됐고,
복도 끝엔 피트니스룸과 사우나, 도서실이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거실 창 앞에 섰을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잘 지내자.”

그 말은 아이들에게 한 말이었지만,
사실은 나 자신에게 건넨 주문이었다.

회사는 나를
‘글로벌 인재’라 불렀다.

그 명패가 달린 책상,
전용 회의실,
통역이 대기한 프레젠테이션 룸.

나는 그 안에서
한 사람의 전문가로 취급받았다.

아무도 내 과거를 묻지 않았다.

어디서 자랐는지,
누구의 아들인지,
왜 유학을 갔는지,

그 누구도 묻지 않았다.

오직 내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만 물었다.

그것은
어떤 애정보다 선명한 신뢰였다.

나는 처음으로
‘누구의 아들’이 아닌
그냥 나로서 계약된 인간이 되었다.



12장 ― 용병, 또는 해결사
복도 끝 창문에 한신 타이거스 유니폼을 입은 사내가 자전거를 끌고 섰다.

맨션 9층.
나는 방금 세탁기에서 꺼낸 수건을 들고 그를 지켜봤다.

아래층엔 미식축구 감독이 살았고,
옆 라인은 오페라 성악가 부부가 입주해 있었다.

우리는
국적도 직업도 다르지만,
똑같은 대우를 받는 ‘외국인 용병’들이었다.

엘리베이터 안은 항상 정숙했고,
관리인은 매일 아침 로비 향을 교체했다.

현관문 앞엔 계절마다 바뀌는 식물 화분과
유리로 된 우산꽂이가 놓여 있었다.

회사에서 마련해 준 맨션이었지만,
나는 가끔 호텔에서 임시로 살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내는 “여기, 너무 좋아”라고 했고
아이들은 스칸디나비안 스타일의 방에 금세 익숙해졌다.

매일 아침 검은 리무진이 도착했고,
기사는 일본어를 못하는 나를 위해
영어로 가벼운 농담을 연습해 왔다.

아이들은 일본어를 배우기도 전에
프랑스어 수업에 더 빠져들었다.

국제학교에서는 국적 대신
부모의 직업을 더 자주 물었다.

어느 날 아들이 물었다.

“우리 집이 왜 이렇게 좋은 거야?”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건 나의 것이 아니라,
내가 잠시 ‘된’ 사람이 누리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일은 늘 바빴다.

동경에서 회의를 마치면 곧바로 오사카로,
오사카에서 프랑크푸르트로,

프랑크푸르트에서 파리로 돌아오는 비행 편에서 PPT 슬라이드를 다시 손봐야 했다.

내 여권엔 출입국 스탬프를 찍을 페이지가 모자라 이미 수십 페이지를 추가한 상태였고,
입국 심사원이 가끔 고개를 들고 나를 다시 보곤 했다.

출장 가방은 언제나 반쯤만 풀려 있었고,
숙소의 식탁엔 호텔 봉투와 자잘한 영수증들이 늘 흩어져 있었다.

모든 것이
지극히 편리하고,
지극히 외로웠다.

가끔, 맨션 테라스에서
저녁 도시를 내려다보며 맥주 한 캔을 마셨다.

눈앞엔 오사카 만의 불빛이 흐릿했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점점 작아져 갔다.

성공한 사람의 삶이란
때로는 화려한 그림 속 유리 벽 같았다.

나는 그 유리벽 안에서,

누가 그린 지도 모르는
경로를 따라 걷고 있었다.


13장 ― 동경, 뉴욕, 브뤼셀, 오사카, 서울, 다시 동경

회의는 도쿄에서 시작됐다.

화이트보드 한쪽에 쓰인 숫자들이
오사카 공장의 생산 속도를 조정하고,
서울 지사의 연간 계획을 바꾸고,
달라스의 파트너를 긴장시켰다.

내 말 한 문장이

대륙 하나를 건너
누군가의 이메일 제목이 되었다.

아침 7시 반, 롯폰기 회의실.
일본식 정장에 깔끔한 회의자료.

고개를 끄덕이는 임원들,
통역사가 한 템포 늦게 따라오는 단어들.

점심엔 신칸센을 타고 신 오사카로.

미끄러지듯 나를 옮겨주는 정확한 신칸센 안에서 나는 다음 보고서를 손으로 메모하며 정리했다.

오후에는 오사카 공장 담당들과 회의.

거친 현장 냄새,
흰 유니폼과 래미네이트 바닥.

기계의 진동음 위로
누군가 나를 소개했다.

“나카모토 부문장님 직접 지시 사항이니 전달해 주신 내용대로 이행해 주세요.”

나는 그 순간,
시스템 안의 사람도
시스템 밖의 사람도 아니었다.

며칠 뒤, 뉴욕

알바니 근처 회의실,
두 개 국어가 동시에 튀어나오는 자리에서
나는 영어로 말하고 일본어로 끄덕이며
한국어로 생각했다.

프로젝트는 하나였지만,
언어는 셋이었고
정서는 다섯이었다.

호텔방 문을 닫을 때마다
나는 하루치의 역할을 접어 넣듯
정장을 벗고 가만히 앉았다.

그때마다 문득,
나는 어느 국가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곤 했다.

출장 가방엔 늘 세 개의 충전기가 있었고,
명함 지갑은 두 개였다.

하나는 동경 주소가 적힌 공식용,
하나는 뉴욕에서 만든 개인 브랜드용.

그리고 가끔,
나는 내 이름을 일본식 발음으로 소개했다.

농담처럼 시작된 그 말이
어느 순간엔
나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나는 국경을 넘는 사람이었고,

동시에
아무 곳에도 완전히 정착하지 못한 용병이었다.


14장 ― 무대 위의 나

아침 회의 직후,
비서가 내게 신문 한 부를 조심스레 내밀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 일면입니다.
어제 기자가 다녀갔었죠?”

나는 제목부터 눈이 갔다.

「S사 창사이래 최초의 외국인 본부장,
다국적 전략 이끈다」

내 사진은 너무 크고,
이름은 이상하게 정돈돼 있었다.

아내는 그날 저녁 그 기사를 스크랩해 액자에 넣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축하받았고,
팀원들은 단톡방에 사진을 돌렸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날 밤,
호텔방에서 그 신문을 다시 펼쳤을 때

어딘가 내 말투도, 내 얼굴도
낯설게 느껴졌다.

그 회사는 나를 무대 위에 올렸고,
나는 성실히 대사를 외우고 있었다.

프레젠테이션 리허설,
방송 인터뷰,
글로벌 포럼 단상.

사람들은 내 말을 듣고 끄덕였고,
나는 더 많은 언어를 준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쿄 본사 엘리베이터 앞에서
고위 간부 한 명이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정말 훌륭한 용병이에요.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 같아요.”

웃으며 대답했지만,
그 말은
이상하게 오래
가슴에 박혀 있었다.

나는 일본인이 아니었고,
한국인으로도 오래 머물지 못했고,
미국인이라 불린 적도 없었다.

나는 언제나,
각 나라에서 가장 적절한 얼굴을 골라 쓰는 사람이었다.

무대 위에서
나는 빛났고,

무대 아래에서
나는 점점 비치는 사람이 되어갔다.

박수는 컸지만,

무대 뒤로 돌아갔을 땐
아무도 나를 불러주는 사람이 없었다.


15장 호텔 로비, 그리고 한 남자

벨보이는 내 가방을 받으려 했지만
나는 손으로 조용히 막았다.

그저, 천천히 걷고 싶었다.

로비엔 클래식 피아노가 흐르고 있었고,
수국 꽃다발이 커다란 유리병 안에 담겨 있었다.

누구도 나를 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공간에 나 혼자 있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체크인은 익숙했다.
영어, 일본어, 이름 철자, 여권, 카드.

매번 같은 질문,
같은 대답,
같은 미소.

나는 내 삶이
호텔 예약 시스템처럼 반복된다는 걸 느꼈다.

목적지와 날짜만 바뀌고,
나머지는 복사처럼 돌아갔다.

룸키를 받아 들고
한참을 로비에 앉아 있었다.

커피숍에서는
두 남자가 태블릿을 보며 자료를 넘기고 있었고,

벽난로 옆에선 어떤 노인이
묵은 가죽 가방을 닦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사이 어딘가,

어느 출처도, 어느 종착지도 없는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멀리 있는 TV에서는
내가 한 달 전 출연했던 포럼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음소거된 화면 속,

나는 또렷한 표정으로 손짓을 하고 있었다.

마치
그 사람이 지금 여기 앉아 있는 나와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처럼.

나는 그때 처음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지금 나는
어디로 가는 중인가?

호텔방 문을 열 때,

가끔은
그 안에

진짜 내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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