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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해 Aug 16. 2022

1. 엄마! 내 최종 합격했데이!

커리어 우먼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 떠난 서울행.

여전히 더운 대구의 어느 여름날이었다. 불쾌한 습기와 함께 왁자지껄한 소리가 사무실에 찾아왔다. 어느샌가 우르르 몰려온 사장님과 친구들은 자리를 잡고선 나를 쳐다봤다.

1차는 “커피”.

2차는 “매실차”.

3차는 “율무차”를 내오라는 지시를 했다. "예 고객님 주문받았습니다."라고 할 뻔.. 그때 나는 다짐했다. 이 지긋지긋한 대구를 떠나기로. 내 행복 따위는 단 1g도 존재하지 않는 이 지옥에서 탈출하리라.


27년 지겹도록 대구에서 살았다. 그나마 덜 보수적인 부모님의 사랑 아래에서 자랐지만, 사회초년생이 겪은 대구 사회생활은 학교에서도 가르쳐주지 않은 지옥이었다. 창립 이래 30년 동안 단 한 번도 여성은 대리라는 직급조차 달아본 적 없는 기적 같은 회사. 똑같은 학교, 학과를 나와도 나는 여자이기에 커피나 타오라는 사무보조라는 일을 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야 대박!
이번에 XX팀에 사람 뽑았거든?
근데 실수로 여자를 합격시킨 거야.
거긴 여자 안 뽑는 팀이라 회장 비서 시킨데.
XX팀은 남자 직원으로 다시 뽑는다더라.



성차별이 없이 능력에 따라 승진이 가능한 곳. 아니 적어도 성별에 따라 업무를 차별하지 않는 곳에서 커리어를 쌓고 싶었다. 분지라는 찜통더위만큼이나 이곳은 바뀔 것 같지 않았다. 이사를 하더라도 같은 동 내에서 한다는 이곳.


무작정 서울에 있는 회사 공고에 서류를 넣었다. 그렇게 큰 회사에서 설마 나를 뽑아주겠냐는 마음으로 며칠을 보냈는데 기적처럼 합격했고, 면접을 차례대로 통과한 나에게 최종 합격했다는 메일이 왔다. 세상 기뻤다. 사실 그 회사는 취준생에게 꿈과 같은 회사였다. 내 운은 이때 쓰기 위해 아껴둔 건가 생각했다. 거기에선 내 커리어를 쌓으리라 다짐했다. 아무것도 무서울 건 없었다. 내 꿈과 행복을 찾아 떠나는 중이니까. 살면서 처음으로 내 인생에 환하고 밝고 큰 문을 하나 연 것 같았다.



상경

그 자체만으로도 설랬다.
옛말에도 사람이 뛰어나면
서울로 보내야 한다고 했던가.
서울행 자체가 성공한 기분이 들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부모님, 연인, 친구들에게 차례로 통보했다. 꿈을 찾아 떠난다니 멋있다, 축하한다는 말들을 들으니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아서 들떴었다. 어떤 친구는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하겠다는 게 용감하다고도 얘기해줬다. 당장 2주 뒤에 입사라는 걸 알리니 부모님은 이제 말리기를 포기했다. 하지만, 걱정으로 가려진 부모님의 눈물을 그때는 몰랐다.



울 딸래미!
밥은 챙기묵겠나..
챙기주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서
뭔 일 생기면 엄마아빠가 빨리 가도 몬하게 그 먼데 간다 카노.
지금이라도 안 간다카믄 안되겠나.



부모님의 사랑과 걱정을 그땐 간섭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꿈을 찾아서 자식이 둥지를 떠나야 하는 상황을 부모님이 이해해주길 바랐다.


그렇게 부모님의 마음을 대구에 둔 채, 나는 부랴부랴 서울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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