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은 또 어찌나 복잡한지
서울로 왔다는 기쁨도 잠시, 3.5평이라는 놀라운 평수의 집에 월 50만 원이라는 돈이 나가야 한다는 현실에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애초에 부모님 도움 없이 내 힘만으로 서울에서 정착하겠다고 다짐했고, 설사 부모님의 도움을 받더라도 이 3.5평 집을 전세로 전환하기엔 어려울 것 같았다.
부동산 : 근처 공원도 있고, 근처에 마트도 있어서 살기 편할 거예요. 이 정도 금액이면 제가 신경 많이 써드린 거예요.
나 그런데 월세 계약이 왜 2년이에요? 월세는 1년 아니에요?
부동산 아.. 대구에서 오셔서 몰랐구나, 서울은 원래 그래요.
뭔가 찝찝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를 택한 회사에 뼈를 묻기로 했기 때문에 2년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며 부모님과 상의도 없이 덜컥 계약해 버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서울은 원래 그런 거 따윈 없었다. 하지만 그 당시엔, 대로변인 데다가 비교적 신축이고, 풀옵션에 지하철이 보도 15분 거리에 있고, 회사에서 가까운 곳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내 예산으로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와....
서울은 모든 것이 놀라운 곳이구나.
(특히 물가가...)
난생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부동산 거래. 전재산을 다 털어 넣어도 이 작은 방 하나, 그것도 월세라는 현실에 심란했지만 서울 왔다는 들뜬 마음이 그때는 더 컸다. 한강에서 한가롭게 점심을 먹은 후, 남자 친구의 샌들이 많이 낡아서 하나 새로 사기로 했다. 그런데 남성 샌들로 아무리 검색을 해도 주변엔 판매하는 곳이 없었다.
그 흔한 ABC마트나 슈마커가 여긴 왜 없는 거지? (1차 당황)
집 근처가 번화가라 바로 옆에 백화점도 있었고 큰 마트도 여러 개 있었다. 음식점도 쏟아질 듯 많이 있는데 정작 내가 필요한 물건은 버스를 타고 나가서 사야 했다. (2차 당황)
한평생 대구에서 살았던지라, 대구 길바닥은 훤히 알지만 서울에서 나는 길 잃은 미아 같았다. 해외에 사는 기분. 백화점 옆에 마트가 있고, 다시 그 옆에 또 백화점이 있었다. 아무리 찾고 찾아도 들어온 곳으로 나갈 길을 찾지 못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서울의 유명한 미로중 하나인 코엑스는 같이 간 일행이 날 버리고 갔다면 나 혼자서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10년 만에 만나기로 한 친구와 고속버스터미널 스타벅스에서 약속을 잡았다가 서로를 포기할 뻔했다.
그 후로도, 1호선의 특급행과 급행을 구분하지 못하고 9호선의 급행과 완행을 구분하지 못해서 지각하기도 했다. 특히나 9호선을 찾는 인파를 보며 재난이 아닌가 싶었고, 지하철 문이 어떻게든 닫히는 게 신기하면서도 공포스러웠다. 거짓말 조금 더 보태면 출근시간에 이렇게 목숨까지 걸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찾아왔다.
엄마 딸, 요즘 서울 뉴스 보는데 그 서울 지하철 어데드라, 내 난생 그런 건 첨 본다 아이가. 지하철이 마 트질라카는데도 사람들이 계속 타드라고. 지옥이 따로 없드라. 회사 근처로 집 얻었으니까 망정이지.
참, 한 번씩 니가 파견 간다는 데는 괜찮제?
나 으응.. 엄마가 말한 불지옥에 탄 사람 중에 하나가 나야.
입맛도 까다로운 나는 한동안 서울 음식에 적응하는데도 고생했다. 대구에서 감자탕이 7천 원 하던 시절, 서울에선 9천 원이었다. 감자탕을 원래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대구에서 먹었던 감자탕의 국물은 걸쭉하기라도 했는데, 서울 맛집이라며 찾아간 곳은 국물 맛이 정말로 라면수프 같았다. 그런 집을 두고 맛집이라니.. 내가 너무 자극적으로 먹어왔던 걸까? 아무리 맛집이라는 곳을 찾아가도 싱겁거나 깊은 맛을 느끼지 못했다.
회사 근처에서 가장 저렴한 식당이 분식집이었고, (대구에서 일반 분식집 김밥 한 줄이 2천 원이던 시절) 고급 프랜차이즈도 아닌데 김밥 한 줄에 4천 원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 외에는 무엇을 먹던 기본 1만 원이었다. 심지어 서울 물가에 적응한 후에는 대구의 지나치게 저렴한 음식 값들을 보며 저렇게 팔아서 주인이 남는 게 있는 걸까 하는 오지랖을 떠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도 이젠 서울 턱별시 시민이라는 생각은 그런 불편함쯤은 사소함으로 받아들였다. 화려한 도시를 볼 때마다 매일이 즐거웠다. 꾸밀 여유조차 없는 방이지만, 내 물건들로 하나하나 채워갈 때마다 뿌듯했다. 회사 사옥을 볼 때마다 애사심이 넘쳐흘렀다. 사옥의 높은 층 카페에서 서울 전경을 바라볼 때의 여유란. 일을 하면서도 처음으로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봤다.
사람들은 친절했고, 다정했다. 점심시간마다 하는 이야기가 즐거웠고, 커피 타오라거나 사 오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팀장님이 커피도 자주 사주셨다. 더운 날씨도 상쾌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좀 친해지고 나니 가끔 사투리가 심하다고 놀리기도 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너, 사투리 고쳐야겠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