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도전

말라버린 이름 2. 재희.

by 차혜원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휴대폰에 쌓여 있는 지수엄마의 대화창을 열었다.



대화상대 : 지수엄마

> 연수엄마, 이거 강의 들은 사람들이 다들 너무 좋대.

> 옆집 할머니도 이 강의 듣고 제2의 인생 사는 것 같다잖아~~

> 생각해 봤어??

> 제발~~!!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나는 이거 너무 듣고 싶은데, 혼자는 가기 싫단 말이야ㅠ

> 이제 마감 1시간 남았어~~ 하자~~



정 하고 싶으면 혼자서라도 갈 것이지, 피곤한 나를 왜 끌고 가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문자도 무시하면 그만이다. 1시간만 지나면 끝날테고, 다음 강의가 열릴 때쯤이면 지수엄마의 흥미도 가실 거다.

그래도 그간의 정이 뭔지, 고민하고 있는 나 자신이 무서워진다. 분명 신청하고 나면 후회할 텐데….

잠시 고민하며 휴대폰을 내려놓으려는데, 연수로부터 문자가 와있다.



대화상대 : 이쁜 우리 딸

< 생리대 주문 완료


> 이미 주문했는데, 뒀다 쓰면 되니까. 오늘 업무가 바빠서 야근할 것 같아.



연수는 항상 이런 식이다. 내가 조금만 잔소리하고 싫은 소리 하는 날이면 꼭 야근을 한다.

저는 이만큼 바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바쁜 것인지. 꼭 다툼 후에 하는 야근이 진실인지 심히 의심스럽다.

그냥 독립을 시켜야 하나 고민이 들정도지만, 어디에 귀한 딸을 내놓아야 할지 몰라, 그 마음은 다시 접어 놓으려는데, 메시지가 또 왔다.



대화상대 : 이쁜 우리 딸

> 내가 생각해 봤는데, 엄마도 뭔가 엄마 일을 찾는 게 좋을 것 같아.



나의 일?

나의 일을 찾으라고?

그동안의 내 일과의 70%는 가족을 위한 것이었는데, 나의 일을 찾으라고?

말의 뜻이 무엇인지 묻고 싶어, 답장을 썼다.



대화상대 : 이쁜 우리 딸

> 내가 생각해 봤는데, 엄마도 뭔가 엄마 일을 찾는 게 좋을 것 같아.


< 나의 일이 뭔데? 나가서 돈 벌어오라고?


> 아니, 또 왜 그래? 그냥 엄마도 이제 하고픈 일 찾으란 거지.


< 그러니까, 그게 무슨 의미냐고.


> 말 그대로 엄마가 하고 싶은 일.


> 나 오늘 진짜 바쁘거든? 집에서 말하자.


< 넌 너 하고픈 말만 하는 거야?



열불이 올라와서 가슴과 등이 동시에 타오르는 것 같다. 휴대폰을 소파에 엎어 놓고, 냉수를 받아 들이킨다.



잠시 눈을 감자, 또 그 꿈이 스친다.

손끝에 닿을 듯 말라비틀어진 그것.

어두운 곳에서도 내 눈에만 들어오는 그것을 나는 잡고 싶지만, 잡고 싶지 않다.

여전히 나는 허공만 허우적댄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나는 뭐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처음부터 엄마고 주부였나?

나도 직장 생활하던 사람이었는데, 50이 넘은 나이에 이제 와서 무슨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있단 거야. 이게 사람 놀리는 거지.


당장에 전화해서 따지고 싶지만, 바쁘다니까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다.

이것도 참 억울하다. 자기들은 바쁘다는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이 끝난다. 집에 있는 내가 한발 물러서야 한다.


갑자기 꿈나리 문화센터 강좌가 생각나서, 얼른 휴대폰을 집어 들어 수강신청란을 눌렀다.

[진작 배웠어야 했는데! 집정리]라는 강좌가 눈에 들어온다. 괜히 한 번 눌러보니, 완강하고 시험을 치르면 ‘정리수납 전문가’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강의다.


‘아, 내가 관심 있는 분야는 이건데… ….’


그런데 이 나이에 자격증을 어떻게 따나 싶어, 괜히 한숨만 흘려보낸다.

다시, ["나를 찾는 여정" 에세이 강습]을 눌러 수강신청을 완료한다.


저질렀다. 내가 할 수 있을까?

글이라니.


“피식”


방금까지 화내던 사람이 맞나 싶다.


내가 글을 쓴다면 비웃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더니, 나부터 실소가 새어 나왔다.



내가 뭘 쓸 수 있을까.

강사가 나한테 질문을 많이 하면 어쩌지?

설마, 발표도 시키려나.


충동적으로 이미 누른 내 손가락이 원망스럽다. 그렇지만 수강취소를 하진 않을 거다.

나도, 나라는 사람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내가 업어 키운 내 새끼한테, 엄마가 집안의 붙박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거다.

keyword
이전 10화2-2. 아침부터 몰아치는 모래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