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아침부터 몰아치는 모래바람

말라버린 이름 2. 재희.

by 차혜원

"띠링"


설거지를 하는데 메시지가 왔다. 장갑을 벗고 싶지 않아서 무시하고 하던 설거지를 이어서 한다.


"띠링. 띠링."


연달아 메시지가 들어온다.


"아이참…."


하는 수 없이 갑에 묻은 거품을 헹궈내고, 장갑을 벗고, 손을 헹군다. 이 행위를 하는 순간에도 메시지가 연이어 울려댄다.

대체 뭐길래….

손에 묻은 물기를 닦아내고서야 핸드폰을 향해 걸어간다.



대화상대 : 지수엄마

> 연수 엄마, 저번에 글쓰기 강좌 오늘까지야.

> 서아네도 같이 한대

> 옆집 할머니, 이번에 책 나왔다고 주는데 멋지더라. 하자~ 응?

> 꿈나리 문화센터 요즘 경쟁률 치열해서 신청기간 지나면 더 안 받아준대. 하자!!

> 왜 답이 없어?

> 바빠??

> 연수엄마? 할 거지?



"휴…."


지수엄마의 앵앵거리는 소리가 귓가에서 들리는 것 같다.

기껏 장갑 헹구고 손 씻고 왔더니…, 문화센터 독촉문이라니….

오늘 계속 문자 보내겠네…, 답장을 해야겠다.



대화상대 : 지수엄마

< 마감시간 많이 남았으니까, 조금만 생각해보고 할게.



다시, 설거지를 하려고 핸드폰을 두고 돌아섰다.


"띠링"



대화상대 : 지수엄마

> 그냥 바로 신청하지, 왜 고민하는 거야?



"하"


가슴 언저리가 답답하다. 그냥 처음부터 하기 싫다고 단호하게 했어야 했나.



대화상대 : 지수엄마

< 하기 싫어서. 조금 더 생각해 볼게. 나 지금 설거지해야 해. 나중에 전화할게.



지수엄마는 외부활동도 많으면서, 왜 나를 못 끌고 가서 안달인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그냥 싫다고 했으면 더 편했을까... 그냥 이대로 마감 끝날 때까지 더 이상 연락하지 말아야겠다.


다시, 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한다. 이번에는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놓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놨다.


"쏴"


거품을 두른 그릇들이 흘러내리는 물에 깨끗하게 씻겨간다. 설거지의 매력은 역시 헹구기임이 분명하다. 저 거품 안 가득 담긴 음식물의 기운이 뽀득뽀득 씻기는 것에 쾌감마저 불러일으킨다.


내 마음도 그릇처럼 닦으면 좋을 텐데….


마음 뚜껑을 열고 안을 온통 거품질을 하면, 여기서는 미움이 저기서는 귀찮음이 또 다른 곳에서는 지적하는 잣대가 거품에 불어 뭉게뭉게 나오면 좋을 텐데….

그다음 호수로 물을 실컷 분사해서, 마음속 거품을 뽀득뽀득 닦아낸다면 좋을 텐데….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치유되는 것 같다.



***



설거지를 시작으로 청소와 빨래.

내 오전 일과다. 이제 커피 한잔을 려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틀었다. 이 시간만이 오롯이 나의 시간이다.


오늘은 티브이에서 청소 팁이 나온다. 구연산과 베이킹소다를 잘 다루면 집안일의 능률이 급격히 오르게 된다. 그래서 나는 '과탄산소다, 베이킹소다, 구연산' 청소 삼 형제를 늘 구비해 둔다.


"띠리링 띠리링"


집중해서 청소팁을 보는데, 우리 집 가장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무슨 일인가 서둘러 전화를 들었다.


"어, 무슨 일이에요?"

"아니, 저번에 나 보험금 청구했나?"

"저번에 뭐요? 어떤 거 있었나?"

"아니, 거 그때 나 병원 간 거. 청구하라고 내가 줬잖아. 싹 나아 병원 거."

"… …"


그게 무엇인가 잠시 생각했다. 싹나아병원이 언제 적이더라...


"여보. 듣고 있어?"

"어, 듣고 있어요. 언제 갔던 건가 생각하느라고."

"아니, 지지난달 초에 갔잖아. 나 손목 아파서."


아, 생각났다. 청구하라고 영수증이랑 서류를 줬는데, 계약자가 내가 아니어서 내 핸드폰에서는 청구가 안되었다.


"그거, 당신이 계약자라서, 당신 핸드폰으로 어플 받아서 청구하라고 돌려준 거잖아요."

"그랬나? 나한테 줬어?"

"그때 해보다가, 본인이 직적 해야 한다고 안된대서 당신한테 줬잖아요. 그걸 기억 못 하고 애먼 나한테 그래?"

"아니, 회사 업무가 바쁘니까... 내가 깜빡했나 보네. 근데, 그 서류 어디 있지?"

"하…, 당신이 알지. 난 당신한테 줬어요."

"어. 기억이 안 나네. 오늘 퇴근하고 처리할게, 책장 좀 찾아봐 줘."

"하…, 알았어요. 끊어요."


집중해서 보고 있던 청소팁이 끝났다. 속 타는 마음에 커피잔을 들어 올린다. 입술에 닿는 커피가 미지근하게 식어 있었다.


"하…"


잠시 올라오는 감정을 추스른다.

나는 남편의 비서가 아니다.

나를 비서 취급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다.


다만, 아침부터 설거지하다 말고 지수 엄마의 폭탄문자를 받고, 좋아하는 프로그램의 시청을 놓치고, 내 기준으로 이미 처리한 업무(보험청구)를 다시 처리해야 하는 일에 커피까지 식어버린 일이 복합적으로 생겨서 그런 것이다.


각각 다른 날이더라면, 잘 추슬러서 넘어갔을 텐데...

뭔가 오늘은 추스르기가 버겁다.


"스읍… 후우우… 스읍… 후우우…"


심호흡을 하며, 전자레인지에 커피를 데운다.


"띠. 띠. 띠. 띠."


적막한 공간에서 요란한 전자레인지 알림음이 울려댄다. 늘 듣던 저 소리가 오늘은 내 심장에 연결된 경고음처럼 느껴진다.



데워진 커피를 들고 식탁에 앉아 온라인배송 주문 앱을 켠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앱 한번 보고. 다시 커피를 마신다. 마음이 점점 차분해진다.


문득, 어제 윤서와의 일이 떠올라서 생리대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결제까지 완료하고 윤서에게 문자를 한다.


[생리대 주문 완료]


이모티콘 하나 넣을까 고민하다가 말았다.

화해는 하고 싶지만, 사과는 윤서가, 용서는 내가 하고 싶다.


오늘은 아침부터 너무 지친다고 생각하는데, 쌓인 지수엄마의 문자가 눈에 들어온다. 심장이 다시 답답해온다.


모래바람 속에 들어가, 눈을 뜰 수도 입을 벌릴 수도 없어서 온 힘을 다해 얼굴을 가리는 기분이 든다.

날아오는 수많은 모래들이 내 피부를 따갑게 하고 숨조차 편히 쉴 수 없게 한다.


갑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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