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버린 이름 2. 재희.
휘오오 휘오오.
거친 바람이 불어온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끓임 없이 부유한다.
이 바람으로, 또 저 바람으로 실려 밀려난다.
먼 구석에 구겨져 감춰진 것을 어둠 속에서도 나는 찾아낸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것을 잡아야 할 것 같다. 바싹 말라, 구겨진 채로 버려진 그것. 잡으면 바스러질 것만 같은.
그것을 잡아서 펴봐야만 이 부유의 끝이 오리라.
***
눈가가 촉촉하다. 힘겹게 일으키는 몸을 밑에서 잡아 끄는 듯하다. 선풍기가 꺼진 건가 쳐다보지만 잘만 돌아가고 있다. 목 언저리가 끈적인다.
며칠새 비슷한 꿈을 꾼 듯하지만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언제나 그렇듯 가볍게 무시하고 욕실로 향한다. 가벼운 샤워로 간 밤의 찝찝함을 닦아낸다.
거실의 커튼을 젖히자 햇살 대신 어둠이 가득 서려있다.
하늘이 반으로 갈라진 것처럼 먹구름이 선을 이뤄 잔뜩 끼어있다. 저 먼바다 끝, 먹구름의 경계선 아래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처음 보는 하늘이다.
가족들을 한 번씩 부르고 아침을 차려낸다. 이제 각자의 일터로 보내야지.
***
"연수엄마! 연수엄마!"
"어? 어. 불렀어?"
"아이참, 이거 같이 등록하자니까, 혼자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야."
지수엄마가 연수엄마를 보며 핸드폰을 들이댄다.
[꿈나리 문화센터 "나를 찾는 여정" 에세이 강습]
"아유, 나는 안 한다니까. 난 글 못 써."
"못 쓰니까 배우자는 거지. 요즘 글쓰기가 대세래."
"그니까, 나는 그런 거 못한대도. 나이 오십 넘어 무슨 글쓰기야."
"무슨 소리야. 우리 옆집 할머니도 이거로 글 쓰기 배웠다는데, 우리가 더 젊은데 왜 못해."
"아이참. 난 책도 별로 안 좋아해."
"그냥 한 번 들어보기나 하자. 응? 해 보자~"
지수엄마의 끈질긴 조르기가 다시 나왔다. 연수엄마를 설득하는 지수엄마의 고집은 여전했다. 곤란하다. 지수엄마는 한 번 꽂히면 상대방이 곤란할 정도로 놔주질 않는다.
이럴 때는 일단 수긍하는 척하고 일보 후퇴 했다가,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끝까지 확답을 받아낼 테다.
"생각해 볼게."
"진짜지? 우리 이거 같이 하는 거다."
"생각해 본다고."
***
저녁상을 치우는데, 연수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걸어 나온다.
"엄마, 생리대 안 사놨어?"
"아, 맞다. 엄마가 안 하니까 자꾸 깜박하게 되네. 네가 좀 사."
"아니, 엄마가 맨날 장 보니까... 그때 사 오면 되니까 그렇지. 회사일도 바쁜데... 알겠어. 이제 내가 주문할게."
"바쁘다 소리는 왜 해. 나는 뭐 한가하니?"
"내가 주문한다잖아."
"됐다. 말을 말자."
서늘한 침묵이 잠시 흘렀다.
싹수없는 것. 내가 저를 거저 키웠나. 말을 꼭 저렇게 해야 하나. 고운 손 망가질세라 설거지 한 번 안 시킨 것을. 아침저녁으로 상 차리는 거는 쉬운 줄 아나. 집안은 거저 돌아가나. 서운하다.
***
다시, 그 꿈이다.
어두운 밤하늘인가.
정처 없이 떠다니고 있다.
나는 먼지가 되어 버린 것인가.
끝없는 부유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점점 나도 이 공간의 하나로 녹아드는 것 같다.
손 끝에 무언가 스치는 기운에 손을 움찔거려 본다.
잡아야 하는데, 잡히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