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말라버린 이름

말라버린 이름 1. 윤

by 차혜원

온통 새하얀 병실에는 기계음만이 띡띡거리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이다. 어떻게 이곳에 온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좁은 거실에서 죽어가고 있음을 느꼈는데….


그렇다. 나는 분명 죽었다. 내 몸이 모두 녹아 흘러 없어짐을 분명 느꼈다. 그러나 나는 살아있다.

주변에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뭘까…. 아직도 꿈인가…. 그만 끝내고 싶다….


*** ***



정이가 의사 선생님과 대면하고 있다.


“저희도 처음에는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몸에 욕창도 상당히 심했고 무엇보다 체내 수분량이 많이 떨어져 있었고, 거기다 패혈증으로 다발성 장기부전이 진행된 상태라고 판단되어 회복이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만, 기적적으로 3일 만에 호흡도 동공도 정상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아버님과 같은 다발성 장기부전의 환자들은 의식이 돌아오더라도 호흡기를 10일 이상 착용 하는 것을 생각하면, 기적과 같은 일이 맞습니다.”


정이의 떨리던 심장이 오히려 차분해짐을 느꼈다.


처음 윤의 집을 마주했을 때의 정이는 처참한 현실이 끔찍하다는 느낌보다, 자신이 한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죄책감이 앞섰다.

윤이 살아나 준 것만으로도 정이가 숨을 쉴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선생님, 그럼, 일상생활 회복은 가능할까요?”

“아…, 안타깝습니다만, 아버님의 상태가 워낙 위중했기에 지금 자발적으로 호흡이 가능해진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제가 말한 기적은 완치의 개념이 아닌, 살 수 있음에 대한 것입니다. 욕창은 수일에서 길게는 한 달 이상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 또, 일상생활을 하려면 스스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하는데, 재활을 하더라도 스스로 걷고 씻고 하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결론은 도와주는 손이 없다면 일상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요양을 돌볼 손이 가정에 없다면, 요양병원을 알아보셔야 할 겁니다.”


선생님을 만나고 나와, 병원 복도 의자에 앉았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생각했다.

미현과의 대화로, 또 교회에서의 일로 정이의 마음에는 나름대로 윤을 용서했노라 생각했지만, 용서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과 현실의 문제를 마주하는 것은 조금 다른 일이었다.

복도 끝에서 동생 산이가 다가왔다.


“누나. 의사 선생님이 뭐라셔?”

“이제 자가 호흡 가능하다고, 발견 당시 상태랑 비교하면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래. 근데, 예전처럼 혼자 활동은 안될 거라고 요양병원 알아봐야 한 대.”

“그럼, 요양병원부터 알아봐야겠네?”

“응. 일단 치료를 여기서 좀 더 해야 하니까. 치료하면서 알아보면 될 것 같아.”

“아빠 살 던 집부터 내놓아야겠다. 그래야 운용을 하지.”

“응.”


산이는 정이의 어깨를 톡톡 다독였다. 철부지 동생이었는데,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는 듯했다.


“매형한테는 연락했어?”

“이제 해야지. 나도 방금 나왔어.”

“그래. 고생했어.”



*** ***



윤이 살던 17평 아파트를 내놓았다. 작은 평수라서 그런지 부동산 거래가 많지 않다는 뉴스와는 무관하게 금방 처분할 수 있었다.


주인 없는 집을 다른 이가 정리하는 것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무엇하나 아까운 물건이 없음에도 이렇게 버려도 되는 것인지…, 왠지 물건들을 잘 보관해 두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마땅히 보관할 장소도 없었기에 모두 버리거나 중고 판매를 했다.


하루 만에 이뤄지는 일도 아니었다. 정이도 산이도 주말에 시간을 내어 움직여야 했기에 다소 시간이 필요했다.

집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방문한 날이었다. 베란다의 창고를 정리하는데 커다란 상자에서 앨범이 나왔다.

정이와 산이의 사진들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앨범을 펼친 순간 정이는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는 걸 겨우 참아내었다.


“누나, 아빠도 참 대단하다.”

“뭐가?”

“보통 앨범은 안방이나 거실에 있지 않아? 얼마나 불필요하면 창고에 있냐. 자식 사진이라고 버리지는 못하고, 갖고만 있었나 보다.”

“… …”


산이의 말에 정이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것이 윤의 마음인 것 만 같아 덩달아 서운함이 올라왔다. 그렇게 우리가 윤에게 짐이었던 것인가라는 생각에 잠기려 하자, 정이는 의식적으로 생각을 환기시켰다.


“빨리 정리나 끝내자. 정리할 수 있는 날도 오늘이 마지막이야.”


정이의 말에 산이는 상자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 ***



윤은 정이의 집과 가까운 요양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윤의 건강은 욕창이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윤의 팔다리였다. 그래도 팔은 어느 정도 움직이는데, 다리가 도통 움직이질 않았다. 의사소통도 문제였다. 알콜성인지, 뇌 혈관성인지, 아니면 그 두 가지 요인 모두 다 작용한 것인지 윤은 간혹 정이와 산이도 알아보지 못하는 때가 있었다. 거기다 발음도 어눌하고 목소리도 또렷하지 않아서 윤과 대화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 ***



윤이 요양병원에 입원하고 1년 반이 흘렀다. 그사이 정이의 자녀들은 모두 초등학교에 입학할 정도로 많이 자라 있었다.


정이와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산이와 산이의 아내, 정이의 어머니가 함께 윤을 만나러 가는 날이다. 산이의 아내는 임신상태였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굳이 오지 말고 쉬라 했는데도, 함께하겠다는 산이의 아내가 정이는 내심 기특하고 고마웠다.


여름철 무성하던 나뭇잎이 아름다운 색들로 물들더니, 머지않아 하나둘 이별하며 떨어지고 이제 몇 남아있지도 않았다. 매섭지는 않아도 제법 싸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에 윤의 생일을 맞아 온 가족이 출동한 것이다.


요양병원에 도착해서 기다리는 가족들 앞으로 휠체어를 탄 윤이 나타났다. 보호사 선생님의 추천으로 정원을 함께 산책했다. 보호사 선생님으로부터 휠체어를 인도받은 정이의 남편이 윤의 휠체어를 끌며 길을 걸었다. 기온은 조금 낮았지만, 햇볕이 따스해서 기분 좋은 날이었다.


벤치에 임신한 산이의 아내와 정이의 어머니를 앉도록 하고, 서로 마주 보고 서 있었다. 병원 한가운데는 작은 연못도 있었는데, 정이의 아이들은 신이 나 붕어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평화로웠다.


그때였다. 윤이 무언가 말을 시작했다.


“어! 어!”


윤은 이미 이혼한 자신의 아내를 손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산이가 나서며 말했다.


“뭐? 엄마?”


윤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소리를 냈다.


비…하…해…”

응?”

피하…해.”


가족들은 윤의 말을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그때, 정이의 남편 민준이 나섰다.


“아버지. 미안하다고요?”


윤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순, 모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정이의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산이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정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머니를 보자, 정이의 어머니는 놀란 채 벤치에서 일어서서 윤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다시, 민준이 윤에게 말했다.


“아버지. 지금 어머니한테 미안하다고 하신 거죠?”


윤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윤의 양 볼에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그 눈물이 윤의 참회의 눈물임을 느낄 수 있었다. 정이와 산이, 정이의 어머니가 모두 울기 시작했다. 모두 윤의 사과에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앉아 있던 산이의 아내도 조용히 입을 가린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할머니, 엄마! 왜 울어?”


연못을 구경하던 큰아이가 놀라서 달려와 정이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정이의 허리춤을 연신 토닥였다. 정이는 감정이 북받쳐 눈물이 더 흘러내려 멈출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이의 작은아이가 윤에게 다가가 윤의 눈물을 작은 손으로 닦아주었다.


“할아버지도 울어? 왜 울어?”


윤은 미소 지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눈물은 흐르지만, 웃어 보이는 윤을 작은아이가 안아주었다.

민준이 장모님을 감싸며 애써 밝은 얼굴로 이야기했다.


“아버지가 그동안 어머니께 미안하셨나 봐요. 아버지. 장모님 마음은 모르지만, 정이는 다 용서했대요.”

정이의 어머니가 자신의 어깨를 감싼 민준의 손을 잡아 내리며, 윤에게 다가갔다.


“나도…. 나도 용서했어요. 옛날 일은 다 용서했어요.”


정이가 제 어머니의 말에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그동안 너무 미웠던 아빠인데, 내 엄마를 괴롭힌 악당인데, 사과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지난날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그리고 언젠가 교회에서 보았던 윤의 환상과 지금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정이는 마음속으로 윤을 용서할 수 있음에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 ***




요양병원에 입원한 지 2년이 되는 여름. 윤은 세상을 떠났다. 그의 마지막은 17평 좁은 거실에서 맞이할 뻔했던 모습과는 다르게 평온했다. 그의 가족들 또한 평온했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정이가 입을 열었다.


“예전에, 아빠 쓰러졌을 때. 산이랑 집을 정리하는데, 앨범이 베란다 창고에서 나오더라…. 그때 산이가 아빠 너무하다고 어떻게 자식 앨범을 창고에 처박아두냐고 서운하다고 그랬거든…. 이제까지 잊고 살았는데, 오늘 아빠 보내는데, 갑자기 그게 생각난 거 있지. 나도 서운했나?”


정이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며 운전하던 남편이 긴 호흡을 내뱉었다.


“휴……. 있지. 산이랑 정이는 서운했을 수도 있는데, 나는 아버지가 왜 그랬나 조금 이해되기도 해.”

“이해가 된다고? 보통 앨범은 안방이나 거실에 두지 않아? 언제든 꺼내보게.”

“음…, 너희한테 미안한 말이지만, 상처를 너희만 갖고 있는 건 아니거든.”

“… …”

“아버지 본인이 만든 결과인데, 본인도 상처를 갖고 있었던 거지. 사진을 보기도 힘들 정도로….”


정이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제는 흐르지 않을 것 같았던 눈물이 다시 흘러내렸다.


다시는 부르지 않을 것 같던.

말라버려서 쓸모없이 떨어져 나간 이름이.

정이 안에 다시 되살아 났다.


윤. 나의 아빠.






*** ***





“응애! 응애!”


윤이 떠난 그 여름. 산이의 첫아기가 태어났다. 우렁찬 울음이 병동을 가득 채웠다.


“고생했어. 애 낳는 게 보통일이 아닌데, 그것도 이 여름에 낳느라 정말 고생 많았어.”


정이는 두 손을 신생아의 면포 뒤로 넣어,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고왔다. 신생아답지 않게 뽀얀 피부와 오밀조밀한 입술이 정말 고왔다.

한 생명이 떠나고 다른 한 생명이 태어난다.

세상은 그렇게 유지되나 보다.


보다 나은 어른으로 이 아이를 대해야지.

보다 나은 아이로 키워야지.


그 아이가 자라나 보다 나은 좋은 어른이 되길.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바르고 당당한 부모이자 고모가 되어야겠다.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보다 아름다워지도록 노력해야겠다.








- ‘윤’ 끝 - 감사합니다 -

keyword
이전 06화1-6. 용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