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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양이야기 Apr 06. 2023

유치원 한 달 적응기

유치원 고군분투기(5)

아이와 누워서 장난치며 웃을 때, 아이가 통통한 손으로 내 목을 끌어안으며 '엄마가 참 좋아.'라고 말하는 순간, 이 감정을 모르던 때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 사랑은 해일과도 같아서 모든 것을 쓸어가 버렸다. 나는 속수무책인 상태로 거기에 잠겨버리는 것이다. p.56-57

<돌봄과 작업> 중에서 '서유미, 손을 잡고 걸어가는 일'


이 감정을 모르던 때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는 것에 굉장히 공감한다.


 유치원을 벌써 한 달 다녔네요. 유치원 버스를 타는 경험이 처음이라 혹시라도 안 탄다고 울면 어쩌지 와 같은 걱정이 앞섰어요.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는 게 첫날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다행히도 유치원에 적응을 너무 잘해서 유치원에 가기 전에 기대된다는 둥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벌써 이렇게 커버렸나 싶더라고요.


유치원 버스 태우기


 유치원 버스는 정해진 시간에 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 생기게 되죠. 일어나서 아침도 먹고 씻고 갈 준비도 하고 옷도 갈아입고 조금 놀기도 해야 하니까요. 물론 버스를 타고 가야 하기 때문에 그 시간이 지나면 저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게다가 한 달을 지내보고 느낀 점은 어린이집을 다녔을 때보다 시간개념이 생기고 저녁에 너무 피곤해서 잠을 일찍 자기 시작했다는 점이죠. 낮잠 시간이 없어진 것도 한몫 하긴 하지만요.


유치원 생활


 유치원에 등원하고 나서는 선생님 2분이 20명의 아이들을 담당하게 됩니다. 어린이집 인원보다 훨씬 많아지죠. 어떤 곳은 정원이 25명인 곳도 있나 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이 발견되더라고요. 어린이집에서 어릴수록 선생님 1분 당 아이의 수가 적었거든요. 만 0세는 2명? 만 1세는 3명 이런 식으로 늘어가는데 초등학교 1학년이 한 반 정원이 20명 정도 되는데 유치원에서 2분 선생님이 25명의 아이들이라는 것이 너무 아이들 인원이 많은 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이들을 가르쳐본 분들이라면 혹은 아이들을 잠깐이라도 봐주신 분들이라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만 3-4세 아이들 10명을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온전히 봐야 한다면 어떨까요. 정말 전 상상도 안됩니다. 아직 아이이기 때문에 도와줘야 할 것부터 아이들 간의 다툼의 중재, 한 명씩 관심을 가져주기 힘든 현실적인 상황에 선생님의 업무 부담과 아이들의 소외는 불 보듯 뻔합니다. 그 와중에도 잘 크는 아이들을 기준으로 제도를 만드는 것은 너무 안일하죠. 그 제도 안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는 사람을 뽑는 것도요.

 게다가 유치원 선생님들이 하는 일이 아이들을 보는 일에만 국한되지 않아요. 매주 유치원에서 보내주는 안내문과 상담일정 정하기와 같은 어찌 보면 자질구레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눈에 보이는 것만 이 정도인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또 얼마나 많겠어요. 그런 면에서 유치원에 국가에서 지원하는 금액으로는 방과 후 수업이 5시가 넘어가기 힘든 거죠. 그때 아이들이 하원을 하게 되면 어딘가에 맡겨야 하는 부담이 양육자에게 주어지는 흐름도 막을 수 없어요.


방과 후


 유치원의 재량에 맡겨진 부분이라고 느껴지더라고요. 요즘엔 영어공부를 일찍부터 하는 흐름이라 유치원에서도 월수목에 영어수업을 하고 있었어요. 화요일은 책 읽기를 하고 금요일에는 선택을 할 수 있는데 저는 아이가 미술을 하고 싶어 해서 미술/과학을 선택했습니다. 방과 후 과목이 다양하고 적절한 금액에 할 수 있도록 운영을 하는 것이 유치원의 재량이었습니다. 저는 몰랐지만 다른 유치원은 방과 후 금액이 다르더라고요. 심지어 몇 십만 원 이상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이를 키우고 양육하는데 물리적인 어려움도 있지만 재정적인 어려움도 분명히 존재하죠. 특히 시간을 채우기 위해 원하지도 않는 프로그램을 들어야만 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상대적으로 방과 후 수업을 듣는 것이 그 시간에 다른 활동을 하는 것보다 비용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에 선택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생각해요. 결국 방과 후를 어떤 식으로 운영할 수 있는지가 유치원을 운영하는데 혹은 누군가 선택하는데 중요하다는 말이 되는 거죠.


하원


 하원을 하는 시간을 선택할 수 있게 되어있더라고요. 저는 되도록이면 방과 후는 해야 하지만 너무 오래 유치원에 있으면 집에 일찍 가는 친구들 때문에 집에 가고 싶고 피곤해할 수 있어서 4시 하원으로 선택을 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5시 하원을 하기도 하더라고요. 아직 어리고 유치원에 있는 시간이 오래되면 지루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다른 친구들은 다 가고 혼자 남는 경우가 생긴다면 소외감과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데 정서상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참 어려운 문제네요. 동일한 시간에 하원을 하게 만들고 그런 분위기라면 좋을 텐데 말이죠. 저만 하더라도 늦게까지 있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있어서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하원 이후의 삶


 하원 이후에는 유치원에서 보낸 안내문이 있다면 그것을 챙겨야 합니다. 그리고 식판이나 수저 등 세척하고 말리고 매일매일 쓰는 것을 정리해야 하더라고요. 저녁도 준비해야 하고 숙제가 있거나 아이가 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을 챙겨줘야 합니다. 제가 일하는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었다면 이 모든 것을 외주로 해결해야겠죠. 이런 구조가 고착화되어 있는 것이 문제인데 많은 경우에 자신이 일하기 때문에 아이를 제대로 못 본다고 자책하는 경우가 많아 아래 글을 가져와봤습니다.


주디스 리치 해리스가 교재 집필을 때려치우고 1998년에 쓴 책이 바로 [양육가설]이다. 이 책의 주장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1 부모는 아이의 성격을 결정하는 데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아이는 부모를 닮지만 그것은 부모의 영향 때문이 아니라 유전적 형질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혹은 같은 문화에 속하기 때문이다.
2 아이들은 집 밖의 경험, 또래들과 함께하는 환경 속에서 사회화되고 성격이 형성된다.
3 사람의 행동과 감정은 사회적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p.73

<돌봄과 작업> 중에서 '홍한별, 아이를 버리고 도망쳤던 기억'


 위 글에서 얘기한 [양육가설]에 따르면 아이들은 집 밖의 경험, 또래들과 함께하는 환경 속에서 사회화되고 성격이 형성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의 경험을 양육자의 노력으로 만들어줘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예전에는 놀이터만 가더라도 놀 아이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누군가와 약속을 잡지 않으면 놀 친구가 없더라고요. 많은 양육자가 이 글을 보고 자책하는 것에서 벗어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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