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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양이야기 Jun 30. 2023

E 생애 첫 부동산 계약서

부동산 드라마 (7)

 E는 부동산 계약서를 작성하기 전날 침대에 누워서도 자꾸 최악의 상황만 그려지면서 잠을 이룰 수 없다. 혹시 집주인이 사실 실소유자가 아니면 어떡하지. 내일 갑자기 집주인이 안 나오면 어떡하지. 혹시 돈을 보냈는데 오류가 나서 안 가면 어떡하지. 정말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이 마구 떠오르면서 생각을 멈추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 최근에 부동산 계약을 해본 친구에게 밤늦게 전화를 할까 말까 핸드폰을 만지는데 조급해하는 내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관둔다. 그러다가 번뜩 내일 계약할 때 너무 우습게 보이면 안 될 거란 새로운 걱정이 머릿속에 더해진다. 말도 잘 못하고 부동산을 하나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혹시 사기라도 당할까 봐 아는 척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검색 사이트에서 '전세 계약'을 적어보니 전세 계약 해지, 전세 계약 순서가 보이는데 전세 계약 사기는 보이지 않는다. 워낙 조심하라는 얘기를 듣다 보니 신경과민이 되어버린 거 같다. 생각보다 전세 사기가 많지 않은데 괜히 겁부터 낸 거 같아서 헛웃음이 나온다. 적당히 사람들 이야기가 적힌 글을 읽다 보니 마음이 진정됐는지 새벽 4시쯤 잠을 잘 수 있었다.


 D는 E에게 오전 10시에 와서 계약서를 작성하자고 말했다. B와의 2억 전세 계약이다. 드디어 E는 꿈꾸던 독립을 이루게 될 것이다.


 D는 A에게 오전 11시에 와서 계약서를 작성하자고 말했다. B와의 2억 매매 계약이다. 드디어 A는 경제적 자유를 이루게 될 것이다.


 C와 D는 10시에 전세 계약을 하고 11시에 매매 계약을 하면 연달아 진행하면 등기 이전까지 수월하게 진행될 거라 예상했다. D는 돈 벌 생각에 어제 계약서를 작성하면서부터 흥얼거리던 노래를 오늘은 크게 틀어놓고 춤까지 추고 있다. 보다 못한 C가 노래 좀 끄고 계약서 세팅이나 하자고 얘기한다. D는 전세 계약서부터 먼저 준비하고 그다음 매매 계약서를 준비했다. 매매 계약서 작성할 때 가장 중요한 건 2.4억에 업계약서를 쓰기로 했으니까 2.4억을 은행계좌로 받아야 한다. 그리고 차액 4천만 원을 현금으로 매수자에게 전달해야 했다. 4천만 원을 은행 계좌로 보내면 업계약서를 쓴 사실이 들통날 수도 있으니까. 게다가 매도자에게 4천만 원을 다른 형태로 다시 받아야 한다. 원래 2억인데 2.4억으로 계약서만 쓰는 거니까 말이다. 4천만 원을 다시 받기 위한 다른 사람들 계좌도 미리 확보해 놨다. 업계약서를 쓰고 마무리하는 일이 사실은 무척 번거로운 일이다. 결국 돈세탁이라고 하는 과정을 거쳐야 나중에 탈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돈 버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건 알았지만 더운 여름날 여기저기 은행 ATM기를 돌면서 5백 만원씩 인출하면서 돈을 찾을 생각을 하니까 답답하다.


 D는 전세 계약서랑 확인설명서, 개인정보 동의서, 등기부등본, 건축물대장, 공제증서, 계약금 영수증, 도장을 챙겨놓고 E를 기다리는 중이다. 9시 50분이 되니 B가 먼저 도착했다. E가 어디쯤 왔는지 확인하려고 연락을 했더니 거의 다 도착했다고 한다. E가 도착해서 B를 보니 집주인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D는 계약서를 보여주면서 각자 개인정보가 제대로 되어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한다. 그리고 신분증 확인을 서로 요청해서 신분증을 서로 교환해 주민번호가 맞는지 확인했다. 여러 글에서 집주인인지 제대로 확인해야 한다고 해서 꼼꼼하게 확인했는데 집주인이 맞았다. 신분증 사진과 지금 보는 모습의 차이도 별로 없었다. 드디어 계약서 특약사항을 D가 읽어주기 시작했다.

*현 상태의 임대차 계약이며 등기부등본을 확인, 계약서와 확인설명서, 등기부등본, 건축물대장, 공제증서를 받은 계약이다. <- 이 이야기하면서 지금 등기부등본을 확인시켜 줬다. B가 실소유주로 되어 있고 어떤 권리관계도 을구에 적혀 있지 않았다.

*계약기간 중 시설물 훼손 시 임차인이 원상 복구하며 흡연 및 반려동물 불가함. 위반하여 도배 혹은 바닥이 손상될 경우 복구비용 청구됨을 인지한 계약이다. < 반려동물은 물론 흡연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당사항이 없었다.

*관리규약에 따라 사용기간 중 공과금은 임차인 부담이다. < 이 사항이야 사실 당연한 이야기다.

*내부옵션 :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전자레인지, 붙박이장

*만기 전 퇴실 시에는 중개수수료를 임차인이 부담하기로 하며, 차기 임차인 확정 후 보증금이 반환된다.

*임차인은 만기 2개월 전 연장 혹은 해지 통보를 해야 한다.

*본 계약은 임대인이 변경되더라도 승계되며 계약 사항의 변동은 없고 변경된 임대인의 정보를 제공하기로 한다.

 갑자기 이 대목에서 이상했다. 임대인 변경 항목이 내가 그동안 봤던 글에서는 없었는데 별 내용이 아니겠지만 이게 무슨 뜻인지 물어봐야 되나 고민됐다. 어제 분명 아는 척하는 모습으로 부동산을 처음 한 티를 안 내려고 했는데 뒷덜미에 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D는 특약사항을 읽으면서 어떤 특이사항도 없다는 듯 태연했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데 괜히 내가 나서서 이게 무슨 항목이냐고 물어보면 우스워질 것이 뻔했다. 집주인 B도 나랑 비슷한 나이인데 벌써 집이 있는 것부터 사실 내가 우습게 보일 것 같았다. E는 말도 못 하고 마음은 답답하고 부동산 계약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다. 이제 계약서 사인을 하면서 계약금 2천만 원을 보내려고 핸드폰을 켜는데 손에서 땀이 났다. 생각해 보면 2천만 원을 모으려면 1년 꼬박 아껴야 하는데 몇 번 숫자를 입력하고 나면 집주인 통장으로 가버린다는 게 너무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1년 넘게 모은 돈이 손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 같았다.


 계약금을 보내고 별 이야기 없이 도장 찍고 사인하고 이름을 쓰고 계약서 파일에 이것저것 서류를 받고 나니 내가 진짜로 부동산 계약을 마쳤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B와 D에게 인사하고 나가려는데 B는 움직일 생각을 안 한다. 심지어 커피까지 더 달라고 하면서 D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뭐랄까 내 뒤에서 내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랄까.


 그때 저 멀리서 A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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