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양이야기 Jul 21. 2023

다주택 보유 첫걸음 A

부동산 드라마 (8)

 E는 어젯밤에 떠올렸던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면서 잠도 못 자고 고민했던 모습이 어이없게 느껴진다. 손에 들린 계약서를 보니 이렇게 어른이 되나 싶기도 하다. 살면서 가장 큰 금액이 쓰인 종이를 가져보는 첫 경험이었다. 사실 이번 부동산 계약서를 준비하면서 사인 고민을 조금 해봤다. 지금까지 사인이라고 할만한 게 없었는데 겸사겸사 만들어볼까 했다. 역시 그냥 이름 석자를 사인대신에 하고 말았다. 계약을 끝내고 나서 생각해 보니 너무 큰 금액이라 불안한 마음이 큰 줄 알았는데 신나는 것도 꽤 있었던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부동산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데 맞은편에 걸어오는 A의 얼굴을 보니 웃음이 한가득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무슨 일이 있으면 저런 행복한 얼굴이 될까 궁금해지더라. 난 지금 어떤 모습일까. 한 손에는 계약서를 들고 얼굴에는 조금 상기되어 홍조가 나타나고 있으면서 부동산 계약을 하면서 초보자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결연한 의지가 입술을 다물고 힘을 줘서 어색해 보이는 모습일 것 같았다. 나도 언제쯤이면 저런 행복한 모습으로 살 수 있을까 싶어 뒤를 돌아보니 '어?' 아까 계약을 마친 부동산 중개소로 들어가고 있었다. 조금 멀리 떨어져 있긴 했지만 왠지 B와 D가 A와 인사를 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냥 그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깨름찍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A는 수업 때 추천도 받고 듣기만 했던 두 번째 주택을 천만 원 차액의 계약을 하러 부동산을 향해 가고 있었다. 어제부터 드디어 말로만 듣던 주택 가격은 얼마 안 되지만 다주택 포지션에 입문한다는 생각에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부동산 계약도 처음이 아니라 예전보다 떨리지도 않았다. 다만 업계약서는 처음 써보는 거라 혹시 문제가 될까 봐 망설여졌는데 돈을 벌려면 조금은 과감한 선택을 할 필요성에 대해 고민해 왔던 터라 결정하는 데 있어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다. 세상에 정직하고 바르게 돈을 버는 사람이 없고 조금은 똑똑하게 행동해야 돈을 벌 수 있는데 나라고 그러지 않아야 한다는 법칙은 없으니까. 생각 정리까지 끝내고 나니 부동산 사무실을 향해 걸어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그동안의 고민이 이제 끝나고 다주택 보유자가 새롭게 시작된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나 보다. 맞은편 사람이 빤히 쳐다보는 모습이 왠지 좀 내가 미친 거 아닌가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너무 활짝 웃고 있었나 싶기도 하고 웃어야 복이 온다고 하니까 하면서 자기 합리화를 스스로 해보면서 경쾌하게 부동산 사무실 문을 열면서 인사를 건넸다.


 D는 B와 A를 인사시키고 준비해 둔 계약서를 꺼내서 확인했다. 서로 도장을 찍고 계약을 마무리 짓고 나니 잔금까지만 기다리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썩였다. E가 나간 이후 바로 A가 오는 바람에 혹시 마주쳐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던 마음도 있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C가 얘기했던 것처럼 생각보다 A와 B 같은 서로 다른 니즈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꽤 될 거 같다는 가설에 점점 설득됐다. C가 꿈꾸던 미래처럼 된다면 돈 버는 게 생각보다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A는 계약은 2.4억으로 하고 사실은 2억으로 매수하는 것이라 나중에 잔금 때 생각할 것이 많다. 2.4억을 준비하고 현금으로 차액을 받아야 하고 취득세도 조금 더 내야 하기 때문에 미리 돈을 좀 준비해야 했다. 그런데 4천만 원 차액을 그냥 마련하긴 힘들어서 신용대출을 좀 써야 할 것 같기도 하다. 부동산 사장님도 혹시 돈이 정 마련되지 않으면 차용증을 쓰고 빌려줄 수 있다고 이야기하셨는데 왠지 그러고 싶진 않았다. 은행 계좌로 이체된 흔적이 있어야 하니까 4천만 원을 계좌에 준비해둬야 했다. 계약은 했으니까 돈 마련하는 건 지금부터 조금 고민해 봐야겠다. 그러다가 문득 4천만 원을 어쨌든 빌릴 텐데 다시 현금으로 4천만 원을 받고 나면 그걸 그냥 갚아야 하나 아니면 주택을 더 매수할까 하는 생각이 정말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오.. 4천만 원이면 4채를 더 매수할 수 있는데 어쩌지? 만약 그 집들이 적어도 5천 만원씩 오르면 와.. 다 합쳐서 3억을 벌 수 있을 텐데 4천만 원을 갚아야 할까.

매거진의 이전글 E 생애 첫 부동산 계약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