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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양이야기 Jan 29. 2024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라는 시스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읽고

 이성적인 나르치스를 초반에 묘사하는 대목에서 스스로 오만하다고 표현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성적인 사람을 감성적인 사람보다 더 다가가기 어려워서인지 공감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져서인지 모르겠지만 오만하다고 생각하는 편인 것 같아요. 어쩌면 시대적으로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이성적인 사람을 요구하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이 마음껏 발휘할 수 있어 오만하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없지 않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굳이 왜 처음에 오만하다는 표현을 넣었을까 생각해 봤어요. 마지막에 골드문트로 인해 나르치스가 무언가 깨닫는 부분을 극대화하려고 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한마디로 나르치스 또한 골드문트와 때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거죠. 마치 헤세 안에 살고 있는 이성과 감성이 소설 속 인물이 된 걸까요.


 헤세는 아무래도 어릴 때 골드문트와 비슷한 기질을 드러내며 살았다면 시간이 지나고 나르치스의 면모도 갖추게 되었다는 추측을 해보게 됩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라는 제목을 마지막까지 고민했을 정도로 골드문트가 등장하는 비중은 높지만 나르치스없이 골드문트가 존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농후한 만큼 나르치스의 중요성 또한 간과할 수 없습니다. 책을 읽으면서도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사실은 한 사람 안의 다른 자아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세상의 기준에 갇혀있던 골드문트가 등장해(p.51,55) 나르치스가 골드문트가 갇혀 있는 달걀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킵니다. 이후 세상으로 나온 골드문트는 예술가로 변모하게 됩니다. 그에 반해 나르치스는 학문을 추구하는 사상가로 살아가게 되죠. 둘은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대립이자 보완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합니다(p.63).

 세상이 어떤 방식으로 현상되는지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보니 나에겐 어떤지 생각하게 된다. 골드문트에게는 형상으로 이루어져 있고 나르치스는 개념이라면 나에겐 아마도 시스템이지 않을까.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서로에게 작동하는 방식을 시스템이라는 프레임으로 보고 있네요.


 마지막으로 마음에 남는 질문은 '예술가에게 자유가 필수적이고 특별할까'였어요. 스승인 니클라우스에게 골드문트가 자유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할 때(p.269) 자유와 예술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합니다. 예전에 읽었던 <달과 6펜스>의 주인공도 떠오르고 <금각사>에서 이야기하는 자유와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일지 고민하게 만드네요.


 최근에 <내 삶에 예술을 들일 때, 니체> 책을 읽으면서 예술이 제 삶에 들어온 시작과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이 내용은 아마 오늘 모임에서 대화를 나누고 업데이트가 필요할 것 같아 뭐라 적긴 어렵지만 지금 제 생각을 적어본다면 고통을 경감하기 위해 예술이 거의 유일한 해결책으로 느껴집니다. 그렇다고 고통을 경감하려는 효과 때문에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용하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이전에 이야기한 <달과 6펜스>나 <금각사>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가 있었거든요. 정답이 있을 순 없지만 어디까지를 예술을 하기 위한 자유라고 인정할 것인지가 중요한 쟁점이라는 겁니다. 예전에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 모델을 속여 독약을 주고 죽어가는 사진을 찍은 사진작가의 사진이 상을 받았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무분별한 자유를 옹호한다면 악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문구도 잊을 수 없었어요. 바로 '예상치 못한 계기로'라는 표현이었습니다. 아마 모든 사람들의 인생에 등장하는 문구라고도 볼 수 있겠죠. 아마 헤세는 이 모든 것이 우연에 기대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상대적으로 다른 책들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싯다르타>, <황야의 이리>에 비해 왜 인상적이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골드문트의 여정 자체에 대한 이해나 공감이 잘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심지어 나르치스는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은 인물이기 때문에 더욱더 마음을 둘 인물이 적었던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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