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으로 산다는 것>을 읽고
책 초반을 읽다 보니 트럼프 대통령 후보가 부통령 후보로 뽑은 <힐빌리의 노래> 저자인 J.D. 밴스가 떠올랐다. 기득권으로 인식되는 백인 남성이 사회적 약자로 전락한 상황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실제로 해당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이 트럼프 지지율로 확인할 수 있다.
기득권으로 인식되는 사람들을 규정지으면서 발생하는 비용의 문제가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남성다움(p.27)과 여성다움으로 나뉘면서 유지를 위한 비용이 많이 소모된다. 한마디로 유연하지 못한 사고로 인해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거다. 신자유주의도 비판(p.41)하면서 대비되는 정체성 정치는 종종 저마다의 속성이 가진 특수성에 갇히고 만다(p.47)는 비판을 한다. 어떤 정치적인 프레임도 약자를 위한 돌파구는 마련되어 있지 않은 모습이다. 여러 가지 원인을 분석하고 이야기하면서 해결책도
'약자'나 '약함'을 절대 우위에 두고 피해자 의식에 갇히려는 의도가 아니다. '잔여' 또는 '잔여물'로 살아가는 자신을 자각하고, 이 사회의 벌어진 틈=경계선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려는 시도다. p.48
스스로 자신을 긍정하도록 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느껴진다. 해결책이 보여주는 취지는 좋지만 대체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모르겠다.
마이클 센델은 이렇게 지적한다. 최근 각지에서 분출하는 포퓰리즘의 배경에는 '부정의의 정치', 즉 정의가 정치적으로 실현되지 않는 데서 오는 분노의 문제보다는 '굴욕의 정치' 문제가 있다.... '굴욕에 항의하는 경우 (중략) 그 끝은 자기 불신이다.' p.63
자기 불신으로 끝나는 문제는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문제의 원인을 내재화시켜 사회적 해결을 바라는 대신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면 된다는 식으로 타협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괴로움의 정체 규명이 필요한데 그것은 당연히 스스로에게도 있지만 사회적 원인도 있기 때문에 개선이 필요하다(p.97). 쉽게 해결책으로 한 개인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사회적 인프라를 제공해줘야 한다.
결국 이 책에서도 존엄성 회복과 내면의 적과 싸울 힘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라고 느껴진다. 어쩌면 교육이 필요한 게 아닌가. 대화가 필요한가. 건전한 커뮤니티가 필요한 걸까. 폐쇄적이지 않을 공간과 설계, 그리고 사람들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의견에 대부분 동의하지만 아래 문장에 대해서는 공감하기 어려웠다. 전업주부가 되는 선택 또한 어쩌면 배부른 선택의 문제일 수 있다. 재정적으로 선택지가 없다면 둘 다 일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둘 중 한 명만 일해도 되는 상황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전업주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걸 선택할 수 없어서 하게 되는 디폴트 상태다. 그렇게 살기 어렵다는 건 사회적 분위기이지 진짜로 그렇게 살기 어려운 게 아니다. 여성은 전업주부에서 벗어나기 실제로 진짜 어렵다.
여성은 전업주부가 될 수 있지만, 남성이 그렇게 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p.51
조금 아쉬운 책이었지만 이런 책도 필요하다는 사실에 공감하며 모임을 끝냈다. 역시 버릴 책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