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감각>을 읽고
일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려야 하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문화적 관점에서는 일을 인간의 보편적 활동으로, 수고와 노고를 의미하는 노동 또는 근로를 뜻한다. 그 의미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변화해 왔으며, 근대로 이행하면서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구분하는 특징을 보였다고 한다. 철학적 관점에서는 일은 단순한 노동을 넘어 인간의 정체성과 깊이 연결된 개념이다. 때로는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자아실현과 사회적 존재 증명의 수단이기도 하다.
보통 일이라고 하면 노동력과 시간을 내어주고 그 대가를 받는 행위라고 인지한다. 이때 대가를 받지 않더라도 돌봄 노동과 같이 이름 없는 일도 시대가 변하면서 일로 인정을 받게 됐다고 가정하고 독후감을 쓰려한다. 개인적으로 일과 개인생활의 차이가 클수록 일에서는 잘하지만 자신의 생활로 그 장점을 가져오지 못한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안타까움이 많다. 일을 명확하게 구분 짓지 않고 그저 생활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면 일에서 잘 사용하는 감각을 일상생활에서도 풍요롭게 쓰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다.
감각이라고 하면 흔히 오감이라고 말하는 시각, 후각, 청각, 촉각, 미각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아마 감각을 확인하기 전에 인간의 특성이나 자기 자신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시각의 경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눈에 입력되는 게 아니라 기존 데이터를 바탕으로 일부 요소만 확인 후 이전 데이터를 불러와 상황을 뇌에서 판단한다. 감각 중 시각을 훈련하고 싶다면 이런 감각의 특징을 알고 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마다 감각의 시작점이 다르다. 시각이나 후각, 청각을 사용하기 시작하는 시점을 시작점이라고 정해봤다. 보통 같은 길을 두 사람이 걸어가게 되면 길을 다 걷고 난 뒤 떠오르는 게 다르다. 봤던 장면이 다르고 들렸던 소리나 냄새까지 전혀 다르게 받아들인다. 한마디로 자기 자신을 제대로 파악해야 어떤 감각이 더 필요한지 알 수 있다는 거다.
내 취향을 깊게 파고, 타인에 대한 공감을 높이 쌓아 올린 결과 만들어지는 것이 '감각'이라 생각합니다. p.51
내 취향을 깊게 파려면 나를 먼저 알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일을 계속하려면 본질을 잊지 않아야 하는데 감각적인 사람은 우리가 잊고 있던 본질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는가(p.155). 그렇지만 이렇게 쌓아 올린 감각도 본질을 잊은 일에 사용하게 되어 주객전도가 되면 안 된다. 감각은 단지 일을 더 잘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본질은 음식인데 디자인이 주인공이 되면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p.90)
마지막으로 디자이너에게 필수적인 조형 감각에 대해 타이포그래피를 언급(p.209) 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왜냐하면 <글자풍경>이라는 책을 인상적으로 봤을 뿐만 아니라 저자와 모임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디자인에 대한 감각을 조금이나마 곁눈질로 배울 수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감각을 만드는 중이다. 이와 같이 어떤 감각이 나에게 부족하고 필요한지 안다면 시간을 두고 감각을 익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