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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고통이란 무엇인가

여섯 번째 편지

by 태양이야기

민혜님 글을 보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 고통을 겪을 수 있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의문이 들더라고요. 태어난 시기, 자라온 환경에 따라 겪은 고통은 정말 너무 다르다는 생각을 계속하게 되거든요. 물론 공통적으로 겪는 고통은 있겠지만 그 고통의 강도나 기억되는 것이 과연 같을까라는 의문이 들어요. 한편으로는 고전문학이 아직도 읽히고 있는 것을 보면 보편적인 정서가 존재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해요. 보편적인 고통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한 것 같기도 했어요.


연대를 이루기 위해서는 보편적 고통을 경험했을 때 가능하다는 의견을 이야기했잖아요. 작년으로 기억하는데 요즘에 코로나뿐만 아니라 교육과정이 변하면서 한국에서 교육을 받을 때 공통적으로 기억할만한 지식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을 우려했던 분이 있었어요. 태어난 시기와 자라온 환경이 다른 사람들을 하나로 엮어주는 공통분모가 약해지는 것에 대한 우려였다고 생각해요. 보편적 고통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의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신화를 만들고 그것을 믿는 것도 같은 이야기이지 않을까요.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믿고 상상의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하잖아요. 국가나 인권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상상에 불과합니다.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편적 사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보편적 고통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 전에 사실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아요. 미루고 미뤘던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 뿐만 아니라 신형철 평론가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그리고 한병철의 '고통 없는 사회'를 읽어야 할거 같아요. 그래도 읽기 전에 어느 정도 보편적 고통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는 건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책이나 지식을 습득하기 전에 과연 내가 어떤 생각을 평소에 했는지 기술해 보는 것 자체가요.


요즘에 코로나 때문에 물리적 고립을 겪은 어른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관심을 가지다 보니 보편적 고통이 어쩌면 코로나로 인한 물리적 고립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코로나가 물리적인 고통의 외관을 가지고 다가왔고 가까이 와서 실제 겪어보니 어느덧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을 받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그동안 마치 공기처럼 우리 곁에서 다른 사람과 연결시켜주고 있던 네트워크가 2년 동안 학교를 가지 않으면서 연대가 끊겨버렸잖아요. 선배와 후배, 선생님과 학생, 학생과 학생, 학교와 학생 그 모든 연결고리가 안 보이던 공기였는데 진짜로 사라져 버렸어요. 눈에 보이지 않았던 무형의 가치는 문제가 생겨야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데 이번 코로나 덕분에 제대로 느끼게 됐네요.


코로나 때문에 연대가 깨지고 있다고 느꼈는데 과연 이것을 회복할 수 있을지 어떤 방법으로 회복하게 될지 궁금해요. 저번에 '알쓸인잡'에서 김상욱 교수님이 물리적 거리 두기를 했지만 사실은 사회적 거리 두기는 좁히는 방법을 찾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어요. 사회적 거리를 좁혀주는 방법은 다양한데 그중에 보편적 고통에 대해 이야기해 보는 것은 어떨지 해보고 싶네요. 민혜님 생각은 어떤가요. 보편적 고통을 경험했다면 그것을 이야기하고 나눠서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부류라는 것을 알게 되면 연대가 생기는 것인지. 이런 가설을 검증하려면 어떤 시도를 해보고 어떤 결과를 도출해봐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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