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나의 일
어느 날 한 조합원이 민주노총 집회에 우리 노조가 나가는 이유를 물었다. 질문을 던진 조합원의 성정을 알기에, 그 말에 어떤 항의나 비난의 의도가 있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어쨌든 나는 두고두고 이 질문과 대답을 신규 입사자 교육마다 이야기했다.
대개 큰 노동자 집회에서 나오는 구호들을 보면 전체 노동자들의 상황을 악화시키는 정책을 바꿀 것, 노동법 개악을 멈출 것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물론 당장은 우리 사업장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 보이는 문제들도 있다. 그러나 대개는 어떤 식으로든 대다수 노동자의 앞날에 영향을 미치는 이슈들이다. 이런 문제들은 하나의 사업장 안에서 해결할 수 없고, 다 함께 정부를 대상으로 요구해야 하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어떤 제도가 나쁜 방향으로 수립되어 우리가 다니는 기관에서 실행된다면, 우리 노조만의 힘으로는 막아낼 도리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한꺼번에 모여 사용자 모두와 정부를 대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우리는 운 좋게도 노조가 있는 직장에 입사하게 되어 권리 주장의 기회를 갖고 실제로 노동조건이 점점 더 좋아지는 걸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더 많은 노동자들이 노조를 갖지 못하고 있다. 특히 5인이 안 되는 작은 사업장에서 일하거나 정규직이 아닌 형태로 계약한 사람들 중에는 노조를 갖기는커녕 기본적인 노동법의 영향도 받기 어렵다. 이 노동자들도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사업장을 넘어서 모두 함께 싸워야 하는 것이다.
어떤 때는 특정한 곳의 싸움에 함께 하기도 한다. 정리해고 같은 절박한 이슈로 오랜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곳이라든지, 싸움의 의미가 큰 사회적 울림을 주는 곳이라든지. 유사한 성격을 가진 서울시 출연기관이나 공공운수노조 산하의 가까운 기관에서 벌어지는 싸움에는 물론 함께 한다. 투쟁기금을 전달하거나 시위에 참여하거나 농성장에 함께 하는 방식으로 연대를 표시한다.
어느 노조든 언젠가 다른 노조의 도움을 받게 될 수 있다. 우리도 힘든 싸움을 하고 있을 때는 주변 노조에서 기꺼이 도와줄 테니 말만 하라는 말은 듣고 고마워했었다. 그런데 연대를 요청해야 하는 입장이 될 때를 예상해 보면서 우리 노조가 지켰던 방향이 있다. 우선 우리가 싸운다. 그러니까 위원장이나 간부들만의 싸움이 아니라 모든 조합원들이 함께 무엇이라도 액션 취하기를 먼저 해야 한다는 것. 그러고 나서 연대를 요청하고, 그러고도 안 풀릴 때만 노조 바깥, 예를 들어 국회, 시의회 같은 곳을 찾자는 것. 간혹 위원장이나 간부 몇 명만 사측을 상대하다가 조합원들의 손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상급단체나 주변 노조들의 도움부터 요청하거나 정무적 해결을 시도하는 노조들이 있는데, 올바른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생애 첫 집회 참가를 축하합니다!
우리 노조가 생긴 후 열린 첫 전국노동자대회가 그해 11월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기념 대회였다. 미처 준비를 못하고 집행부도 각자 사정이 있어, 위원장인 나와 부위원장만 집회에 참가했다. 둘이서 깃발도 없이 참석하면서, 다음부터는 꼭 조합원의 10퍼센트 이상은 조직하자고 이야기하고 다음 해부터 실천에 옮겼다.
내부의 사안을 가지고 액션을 조직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외부 집회 참여를 조직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전국 노동자대회에 나가기 위해서는 한 달 전부터 준비를 했다. 내부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조합원이라도 외부 집회에 나가는 건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노조 활동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의 범위에 외부 집회 참가는 들어있지 않은 것 같았다. 미리 붙여놓은 홍보물은 간단한 안내와 함께 그야말로 분위기 붐업을 위해서이지, 홍보물만 보고 참여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래서 일대일로 권유를 해야 했다.
함께 행진하고 뒤풀이를 하면 다들 기분이 좋았다. 당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사안이 있으면 해결을 위한 좋은 아이디어들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생애 첫 집회 참가자가 생기면 당사자보다 동료들이 더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