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사랑하게 되면
고백하자면 나는 그때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서로의 결핍을 완벽히 채워주는 것이 진짜 사랑이라 믿었다. 다행히 그 서툰 믿음만으로도 너에게 꽤 칭찬받는 남자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너의 작은 한숨, 찰나의 망설임, 스치는 미소까지 허투루 놓치지 않고 기억에 담았다. 노력이라기보다 본능에 가까웠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너에게 집중하면 자연스레 생기는 능력이었다. 다른 여자들과 있을 때는 나오지 않던 내 모습이 너를 만나 발현됐다고 나는 자랑했다. 네가 내 과거를 알기에 '나쁜 남자'라고 또 말했지만, 나는 그 미묘한 타박 속의 칭찬을 정확히 읽어냈다.
네가 좋아하는 음악, 영화, 음식, 청결 상태까지도 존중하며 따랐다. 나는 명분이 있을 때만 술을 마셨지만, 너는 '너와 내가 함께 마시는 것 자체가 명분'이라며 즐거워했고, 나도 굳이 싫지는 않았다. 노래방을 꺼리던 나였지만, 안치환의 ‘사랑하게 되면’을 부르는 내 모습을 좋아하는 널 보고 싶어 기꺼이 마이크를 잡았다. 첫 소절만 나와도 너는 환호했고, 나는 감동받은 척하다가 이내 진짜 감동에 젖었다.
유치하다고 여겼던 ‘타이타닉’도 너와 세 번이나 보았다. 세 번째엔 졸다 깨다를 반복했지만 다행히 들키지 않았다. 네가 눈물을 흘릴 때는 기가 막히게 깨어나 너를 품에 안았다. 네가 해준 모든 요리는 미슐랭 쓰리스타급이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짠맛은 담백함으로, 매운맛은 더 깊은 매운맛으로. 그렇게 내 입맛은 진화했다. 어느 아무 날도 아니었던 날, 네가 뚝딱 끊여내었던 된장찌개. 그 된장찌개는 지금까지도 내 인생 최고의 음식이다.
너는 하루 세 번 양치했고, 한 번만 하던 나는 치약을 한 달에 다섯 개 쓰는 사람이 되었다. 여전히 가운데를 눌렀지만, 최소한 뚜껑은 닫기 시작했다. 소소한 진보였다.
너도 내가 사랑한 나를 닮기 위해 애썼다. '나도 오빠처럼 되고 싶어.' 너는 그렇게 말하고 니체를 들었다. 며칠 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덮으며 중얼거렸다.
“이건… 인간적으로 너무나 힘드네.”
곧 쿤데라로 넘어갔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끝까지 읽고, 짧은 독후 메모를 내 앞에 놓았다. '오빠가 좋아하는 책을 다 읽음. 이렇게 오빠에게 한 걸음 더.' 나는 미소로 답했고, 너는 크게 웃었다. 그러고는 창밖을 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요즘 아빠랑 계속 부딪혀. 졸업하면 안정적인 곳에 취직하길 바라시는데…이 책을 읽으니까, 마음이 좀 가벼워진달까? 꼭 아빠가 말하는 그 '무거운' 길만 정답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냥… 어떤 길이든 내가 선택하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 "
그 순간, 나는 네가 단지 나를 위해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그 책을 징검다리 삼아 너 자신의 삶의 무게를 가늠하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꼈다.
내가 책을 읽을 때 너는 나를 혼자 두었고, 내가 우울해 보일 때는 왜냐고 묻지 않은 채 조용히 내 품에 안겼다. 질문은 없었지만 답은 있었다. 학생회 일을 함께할 때 나는 널 여자 친구로 대하지 않았고, 너는 삐지지 않았고 티 내지 않으려 애썼다. 우리는 그 암묵적 합의를 성실히 지켰다. 전 여자 친구와 헤어지며 비판했던 플라톤의 ‘반쪽’ 이론이 너로 인해 절대 진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반쪽이라 부르기엔 조금 모자라고 한 사람이라 하기엔 조금 넘치는. 그 사이 어딘가의 균형.
뮤즈를 사랑하자 나의 예술은 하얀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올랐다. 막혔던 시나리오가 술술 풀렸다. 단편 두 개와 장편 하나를 완성했다. 일곱 살 아이가 받아쓰기 백 점을 들고 엄마에게 달려가듯 너에게 달려갔다. 너는 시나리오를 당장 읽는 대신, 그날 밤의 흥분한 나를 먼저 사랑스럽게 읽어 주었다. 그 독서법은 늘 정확했다. 문장보다 맥박을 먼저, 줄거리보다 체온을 먼저.
너 덕분에 나는 라디오를 좋아하게 되었다. 싸구려 카세트 라디오를 시장에서 사 왔다. 주파수를 맞추자 잔잔한 음악과 함께 DJ의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할 것 같다는, 조금은 풋내 나는 청취자의 사연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너는 내 품에 안겨 가만히 듣고 있다가 속삭였다. '우리 이야기 같네.' 나는 대답 대신 너를 품었다. 라디오 불빛이 어둠 속에서 작게 깜빡였다.
너의 그런 모습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내가 ‘진짜 사랑’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는 걸. 사랑은 결핍을 채우는 솜씨가 아니라, 그 결핍을 함께 들고 걸어갈 체력에 가까웠다. 너는 모난 나를 고치기보다 내 손을 잡았고, 나는 너의 빈틈을 메우기보다 네 옆을 데웠다. 치약 다섯 개를 쌓아두는 성실, 노래 한 곡 끝의 무모한 고음, 졸다 깨어나 네 눈물을 받아내는 타이밍.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충분함'을 배웠다. 충분은 완벽이 아니었고, 완벽은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았다. 웃음과 한숨 사이 작은 자리를 하나 남겨 두고, 그 자리에 서로의 이름을 조용히 올려두는 일. 사랑하게 되면, 그 사소한 자리가 곧 세계가 되곤 했다.
남겨진 아쉬움마저 괜찮았다. 그 아쉬움이 서로를 다시 찾게 만드는 동력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사랑하게 되면 사람은 자꾸 미래를 꿈꾸는 법이다. 다음 주의 영화, 다음 달의 책, 언젠가의 바다 같은 약속들을. 약속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향한 미소였다. 나는 그 미소를 사랑했고, 너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우리는, 목마름이 채 가시지 않은 입술로도 기꺼이 다음을 말했다. 그것이 그 시절 우리가 가질 수 있었던 최고의 유머이자, 최선의 낭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