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by 황 영


5.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오늘 우리는 첫 키스를 했다. 시간은 입술과 입술 사이에서 늘어지다가, 한 번에 툭 끊어졌다. 첫 키스는 사랑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는 강력한 진통제이자, 최상의 행복을 선사하는 은밀한 처방이었다. 잠시 떨어져 나는 누운 채로 네 얼굴을 바라보았다. 코가 닿을 듯 가까운 거리였다. 손끝이 네 이마의 얇은 솜털을 스치고 광대의 곡선을 따라 내려가 입가에 닿았다. 손끝에 체온이 묻었다. 내가 네 얼굴을 더듬을 때마다, 너는 아주 작게 숨을 들이켰다. 너를 영원히 소유하고 싶은 욕심이 목울대를 타고 속을 데웠다. 욕심이 오를 때마다, 나는 주저 없이 다시 네 입술을 찾았다. 들이마시는 숨과 내쉬는 숨. 너의 모든 숨을 사랑하겠다고 조용히 다짐했다. 숨에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그 밤의 이름은 너였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네 남자 친구를 상상했다. 상상 속 그는 증오의 눈길로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피하지 않고 그의 눈을 마주하며, 너의 허리를 더 깊이 감았다. 뺏길까 봐, 아니 뺏은 적도 없는데도 너를 더 가까이 당겼다. 그가 체념하듯 사라진 자리로 차가운 밤공기가 밀려들었다. 연인이 있는 너를 사랑하는 게 죄라면, 기꺼이 죄인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내 팔 안에서 심장이 터질 듯 뛰고 있는데, 그 심장을 이성으로, 규율로 막을 수는 없었다. 세상이 정해놓은 금기를 미워했고, 그 미움을 너를 더 절실히 원하는 힘으로 삼았다. 도덕과 비도덕의 경계는, 적어도 그 밤만큼은 색을 잃고 투명해졌다.


슬픈 사랑으로 널 가지려 했다. 내가 너와 하나가 되고 싶다 말했을 때, 너의 눈동자 가장자리에서 아주 가느다란 주저가 떨렸다. 그 떨림 속에 나와 닮은 복잡한 생각이 온몸을 휘감고 있음을 보았다. 이제 너의 시간이었다. 나는 물러섰다. 가냘프게 떨리는 너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아무 말 없이 기다렸다. 기다림은 우리에겐 오래 배우지 못한 언어였지만 그 밤만큼은 비교적 유창했다. 너는 눈물이 살짝 고인 채로 오랫동안 나만 보았다. 그리고는 마치 지금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해 두려는 듯, 내 얼굴을 매만졌다. 그 손길이 너의 대답이었다.


서랍 어딘가에서 얇은 비닐이 바스락했고 불빛이 숨을 죽였다. 방은 더 어두워졌고 어둠은 우리를 한 겹 더 감쌌다. 너는 내 이름을 불렀다. 그 소리는 아주 낮고 둥글었다. 나는 대답 대신 네 목덜미의 작은 점에 입을 댔다. 너의 등이 아주 천천히 반응했다. ‘괜찮아?’라는 묻지 않은 질문에 ‘응’이라는 말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때 우리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는 것을 동시에 알았다.


우리는 결국 하나가 되었다. 세상이 정해놓은 틀에 대한 반항이자, 우리를 지키기 위한 선택처럼 온몸과 온마음을 다했다. 허벅지의 근육이 느리게 긴장을 만들고 풀었다. 허리의 곡선이 한 번 더 깊어졌다. 땀에 젖은 살이 맞닿는 소리, 가빠지는 숨이 서로에게 섞이는 온기. 바닥의 낡은 장판이 아주 낮게 삐걱였다. 창틀 틈새의 바람이 얇게 훑고 지나갔다. 너의 눈에는 물기가 고였다가 흘렀다. 그 물기는 울음인지, 열인지, 합일의 증거인지 끝내 알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시렸던 결핍이 그 밤만큼은 어디에도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길고 긴 가을밤, 결핍은 잠시 우리를 잊었다.


잠이 오기 전의 침묵은 포만에 가까웠다. 서로의 등골을 손바닥으로 타고 내려오다가 손가락이 골반의 가장자리에서 멈췄다. 네 목 뒤의 잔머리 몇 올이 땀에 붙어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조심스레 떼어내주었다. 그렇게 사소한 다정이 새벽을 늦추었다. 창밖의 나뭇잎은 이미 반쯤 떠나 있었고, 바람은 잔가지에 남은 마지막 것들을 떨구고 있었다. 우리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한 번 더 입술이 닿았다. 마지막은 아니었지만, 오래도록 마지막처럼. 그날의 첫 키스와 마지막 키스 사이에 우리는 충분히, 그리고 조용히 하나가 되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 낙엽이 다 져버린 초겨울이 되었다. 너는 담담히 말했다. '남자 친구와 헤어졌어'라고. 우리는 따뜻한 종이컵을 손에 쥔 채 벤치에 앉아 있었다. 종이컵의 얇은 벽을 통해 전해지는 온기가 손바닥을 살렸다. 나는 네 얼굴을 세세히 살폈다. 혹시라도 미련의 그림자가 지날까 봐 조바심이 목 안을 긁었다. 너는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땅으로 떨구었다. 신발 코에 얹힌 먼지가 바람결에 아주 조금 흔들렸다. 위로와 축하 사이, 언어의 갈림길에서 나는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너의 얼굴에는 나와 같고도 다른 슬픔이 있었다. 끝을 내고 난 뒤에야 찾아오는, 홀가분함과 허전함이 한 몸인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 표정을 더 오래 보고 싶지 않았다. 종이컵을 벤치 위에 내려놓고, 너를 끌어안았다. 너의 어깨가 한 번 더 가볍게 떨렸다.


“고생했어.”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 너는 얼굴을 내 가슴에 더 깊이 파묻었다. 내 가슴에 닿은 네 귀가 조용히 대답하는 듯했다. 박동은 전보다 느리고 전보다 정확했다. 초겨울 바람이 볼을 스치며, 따뜻함과 차가움의 경계를 한 번 더 그었다. 우리는 그 경계 위에 나란히 서 있었다. 사랑은 언제나 경계에서 시작되고, 경계에서 자란다. 금기의 경계, 허기의 경계, 망설임과 확신의 경계. 우리는 이미 한 번 그 경계를 넘어섰고, 또 한 번 넘기 위해 숨을 고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발밑에서 낙엽이 얇게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나는 그 소리를 오래 들었다. 우리에게 닥칠 새로운 계절이 그 소리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서지되 아프지 않은, 낡았으되 더 따뜻한. 손바닥을 펼치니 종이컵의 열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 미지근함을 사랑이라 불러도 될까. 나는 조심스레, 그러나 분명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