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첫 키스는 한 번뿐이다
네가 없으면 불안했고, 너와 함께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행복했다. 네가 떠난 밤이면, 남아 있는 너의 온기에 기대어 불면을 버텼다. 희망 없는 결핍의 지속은 지옥이었다. 이렇게 살다가는 오래지 않아 무너질 것 같았다. 그래서 너를 마음에서 떼어내기로, 기어이 지워내기로 다짐했다. 너와 함께 해야 할 일들을 외면했다.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학생회를 쉬었고, 학교에도 나가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핑계로 꺼낸 ‘아픔’이 진짜가 되어 열이 오르고 몸이 떨렸다. 타이레놀 몇 알로 하루를 버텼고, 그렇게 일주일이 갔다. 나를 내버려 두는 너를 향한 원망과 그럼에도 너를 그리워하는 선망이 교대로 방안을 떠돌던 어느 밤, 문이 세게 두드려졌다.
문 앞에 너는 소고기 야채죽을 들고 서 있었다. 마음은 고마운데 괜히 뭐 하러 이러냐고, 어서 돌아가라고, 내 마음에도 없는 말을 애써 꺼냈다. 너는 짧게 말했다.
“마음에 없는 말, 하지도 마, 오빠.”
그렇게 말하는 네 눈 밑에 아주 옅은 그늘이 스치는 것을 보았다. 너는 애써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아프면 오빠도 나한테 이렇게 할 거잖아. 아니야?"
그리고 신발을 벗고 들어왔다. 나는 돌아누웠고, 뒷등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심장이 등을 돌아 너를 향해 옮겨 붙은 듯 등뼈 안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너는 죽을 냄비로 옮겨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싱크대에 있는 그릇을 씻었다. 물이 그릇을 때리는 소리와, 금속이 금속에 스치는 소리가 방을 낮게 채웠다. 네가 화장실로 가 변기 솔을 집어 들었을 때, 나는 벌떡 일어나 그 솔을 빼앗아 들고 싶었다. ‘내가 할게. 넌 그냥 누워 있어.’ 하지만 몸은 침대가 잡아끄는 듯 말을 듣지 않았다.
죽을 그릇에 덜고, 상을 내 옆으로 끌어왔다. 너는 몸무게가 두 배는 될 나를 아기 다루듯 일으켜 앉혔다. 그 순간, 너의 가슴이 내 팔을 스쳤다. 단 한 번의 닿음이었는데, 내 몸 어딘가에 엉겨 붙어 있던 나쁜 기운이 소리 없이 증발하는 듯했다. 얼굴이 달아오르자, 너는 입을 삐죽 내밀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많이 아프네.”
너는 죽을 한 숟갈 떠서 조심스레 식혔다. 나는 아기 새처럼 입을 벌렸다. 그러더니 그 숟갈은 우선 너의 입으로 들어갔다. '안 뜨겁네.' 네가 말하며 내게 숟가락을 쥐여주었다. 나는 혀끝으로 소금기와 참기름의 얇은 막을 느꼈다. 따뜻함이 식도 안쪽을 부드럽게 감싸며 내려갔다. 네가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기척에,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죽을 먹는 소리만 들려주었다. 그 소리는 작은 파도 같았다.
잠시 뒤 너는 구석의 빨래통을 들었다. 내 속옷과 양말을 한 움큼 꺼내 화장실로 들어갔다. '신경 쓰지 말고 다 먹어.' 너는 가볍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천을 비볐다. 손바닥이 젖은 면을 맞부딪칠 때마다 얇은 박동이 화장실 문을 통과해 방 안으로 전해졌다. 물비누 냄새와 죽의 김이 섞여 좁은 자취방을 데웠다. 흔한 세탁기 하나 없는 가난이 그날따라 조금 부끄러웠다. 너는 그 가난을 아무렇지도 않게 건너왔다. 마치 돌다리의 홈을 손으로 더듬어가듯, 내 삶의 빈 곳으로 망설임 없이 발을 들여놓았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목울대를 번갈아 치고 지나갔다. 너를 원망하던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죽지 말라’며 죽을 들고 온 너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너는 나를 사랑하고 있는 걸까. 아니어도 괜찮다. 지금 네가 나를 되살리고 있으니까.
너는 남은 죽을 싹싹 긁어모아 내 입에 넣어주었다. 마지막 한 숟갈을 받아먹고 나는 몽롱하게 침대에 누웠다. 잠시 눈을 감았다 떴을 때, 창가에 기대어 선 너의 옆모습이 보였다. 가로등 불빛에 비친 너의 얼굴에는 내가 처음 보는 깊은 피로감이 서려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혼자 무거운 짐을 지고 걸어온 사람처럼. 내가 뒤척이는 소리에 너는 화들짝 놀라며 언제나처럼 환하게 웃었다. 나는 문득 내가 너에게 지운 무게를 짐작했지만, 곧 너의 환한 웃음에 시선을 빼앗겼다. 너는 침대 모서리에 조심스럽게 앉아, '아프지 마'라고 말했다. 나는 '그래' 하고 힘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마 위로 너의 손이 내려왔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온기였다. 나는 그 손을 잡아 내 왼쪽 가슴 위로 가져다 얹었다.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낮은 음성으로 속삭였다.
“들려?”
가슴 깊숙한 곳에서 일정치 않은 북소리가 올라왔다. 한 박자 늦게 너의 손끝에서 작은 맥이 받아쳤다. 너는 웃으며 말했다.
“손으로 듣는 거 아니야, 오빠. 귀로 듣는 거지.”
그리고 네 왼쪽 귀를 내 왼쪽 가슴 위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귓바퀴의 가장자리가 살을 스치며 아주 미세한 전기가 일었다. 너는 나를 들으려 했고, 나는 나를 듣고 있는 너에게 물들었다. 그 자세로 한동안 숨을 맞췄다. 숨과 숨이 겹치는 곳에서 작은 파문이 일었다. 옆으로 보이는 서로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다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입술이 포개졌다.
첫 키스는 단 한 번 뿐이기에 소중하다. 우리는 그 가치를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인지, 아쉬움을 남기지 않겠다는 듯 서두르지 않고 이어갔다. 입술과 입술 사이에 숨이 갇히고 다시 풀리며 새로운 길이 열렸다. 네 입술 가장자리에서 비누 냄새가 더 짙게 났고, 내 입천장에는 죽의 미미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처음은 늘 서툰 법인데 그 서투름마저 우리 편이었다. 치아가 가볍게 부딪칠 때마다 멈춤이 생겼고, 그 멈춤이 다음의 터치를 불렀다. 나의 윗입술이 네 아랫입술을 배워가고, 너의 숨이 내 숨의 속도를 이끌어주었다. 손은 어디에도 닿지 못해 허공을 더듬다가 마침내 서로의 어깨 위로 닿았다. 어깨 위로 놓인 네 손가락이 아주 천천히 힘을 주었다가 풀었다. 내 심장은 그 리듬을 따라가려 애썼다.
잠깐 떨어져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에도, 입술은 아직 서로의 모양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기억이 우리를 다시 끌어당겼다. 이번엔 더 느리게, 더 조심스럽게, 마치 소리를 내면 부서질 유리컵을 다루듯. 네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고, 그 떨림을 따라 방의 공기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바깥에서는 누군가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스쳤고 멀리서 오토바이 배달 상자의 금속 마찰음이 지나갔다. 아무 소리도 우리를 방해하지 못했다. 우리는 서로의 숨이 식어갈 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첫 키스는 우리가 함께 만든 한 잔의 온기였고, 그 잔을 비우는 일은 천천히 끝까지가 예의였다.
입술을 떼었을 때 너는 내 심장 위에 다시 귀를 댔다. '이제 더 빨라졌네.' 너의 말에, 나는 웃음과 숨을 동시에 흘렸다. 첫 키스의 잔열이 방 안 곳곳에 스며 있었다. 젖은 수건의 물기, 식어가는 냄비의 얇은 김, 턱 끝에 맺힌 작은 땀방울까지, 그 모든 것이 우리가 나눈 온기의 흔적이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이 말보다 더 또렷했다. 그 밤 이후로, 나는 알았다. 불안은 네가 없을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네가 이렇게 가까이 있을 때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괜찮았다. 우리는 방금, 그 불안마저 온기로 데우는 법을 배웠으므로. 첫 키스는 한 번 뿐이기에, 우리는 오래 배우고 오래 마셨다. 그 한 번으로 오랫동안 목마름이 덜했다.
그때의 나는 네가 가져온 죽 한 그릇에, 네가 해주는 빨래에 감동하며 내 사랑을 확인받았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와 돌이켜보면, 너는 그저 아픈 나를 간호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너는, 아직 정리하지 못한 너의 연애에 대한 죄책감과 나에 대한 연민 사이에서, 가장 필사적인 방식으로 너의 마음을 증명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너의 그 분주했던 손길은 나를 향한 사랑의 표현이자, 너 자신을 향한 고통스러운 채찍질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