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늘 어제보다 오늘
사귄 지 2년이 다 되어갈 무렵, 마법의 콩깍지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영화 학교 입학을 준비했고, 너는 나 없는 학교가 쓸쓸하다며 가끔 푸념했다. 우리 사이에 실재하는 서로의 다름이 서서히 드러난 것도 그때쯤이었다. 다름은 처음엔 먼지처럼 가벼웠고, 눈에 보이기 시작하자 비로소 모양을 가졌다. 우리는 그 모양을 사랑이라 부르며 배웠다.
너는 쿨의 '아로하'를 좋아했다. 나도 처음엔 좋았다. 문제는 내 자취방에서 너는 '아로하'만 계속 틀었고, 나와 눈만 마주치면 '어둔 불빛 아래 촛불 하나'라며 노래를 불러댔다는 점이다. 하도 많이 들어서, 이 세상 전기가 다 끊겨도 난 결코 촛불을 켜지 않겠다고 다짐할 정도였다. 슬픈 발라드를 좋아했던 내가 '아로하'를 끊고 왁스의 '화장을 고치고'를 틀면, 너는 '나 같은 여자를 왜 사랑' 하냐며 헤어지고 싶냐고 투정을 부렸다. 껌딱지처럼 나에게 달라붙는 통에 목 늘어난 티셔츠가 벌써 여러 개였다. 다시 '아로하'를 틀어야만 너를 내게서 간신히 떼어낼 수 있었다. 결국 깨달았다. 세상엔 두 종류의 음악만 존재했다. 네가 좋아하는 노래와, 네가 지금 당장 듣고 싶은 그 노래. 나는 노래보다 껌딱지 같은 너를 더 사랑했다.
너는 오징어 짬뽕 라면을 좋아했다. 오징어 짬뽕 라면을 좋아하는 척하던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본색을 드러냈다. 나는 진라면 순한 맛이 라면의 근본이며, 이하는 라면이라 명명할 수 없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너는 '내가 끓이면 오징어 짬뽕에서 진라면 맛이 날 거야'라며 웃었다. 김이 한 번 올라왔다가 금세 얇아졌다. 결국 난 언제나 변함없이 오징어 짬뽕을 먹었다. 라면의 근본은 무너졌지만 관계의 근본은 단단해졌다. 나는 진라면보다 널 사랑했다. 가끔, 국물 끝에서 아주 미세한 '진라면'의 환상이 느껴졌다. 사랑은 입맛마저 상상하게 했다.
너는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십 년 넘게 서로를 기다리는 두 주인공이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몰입이 안 된다고 했다. 준세이는 '미련한 놈', 아오이는 '비겁하다'며 가슴을 쳤다. ‘내 인생 영화’라는 말은 목에서 멈췄다. 나는 준세이를 따라 피렌체 골목을 걸었고, 너의 짧은 한숨이 곁을 스쳤다. 네가 휴지를 건넸고, 휴지 끝이 젖을 때마다 네 손끝도 조금은 무거워졌다. 며칠 뒤, 퇴근해 돌아왔을 때 너는 내 방에서 혼자 ‘냉정과 열정 사이’를 보고 있었다.
“왜 울고 있어?”
“오빠가 운 이유를 이제 알겠어.”
양념치킨과 맥주를 앞에 두고 그 밤 우리는 영화를 한 번 더 돌려 보았다. 양념은 달고 맥주는 쌉쌀했다. 우리는 같은 영화 앞에서 다른 문으로 들어갔지만, 결국 같은 방에서 만났다. 그날 이후, 우리는 같은 장면을 다른 자리에서 되짚는 법을 배웠다. 피렌체까지 가지 않아도 우리 방 안에는 아르노 강이 흘렀다. 아쉬움이 남아 근처 강둑으로 나섰다. 편의점에서 생수 한 병을 나눠 마셨다. 너는 첫 모금을 넘기고 말했다.
“오빠랑 마시니까 물도 다네.”
나는 그 말이 조금 부끄러웠지만, 오래도록 좋았다.
첫눈이 내린다는 예보가 있던 초겨울의 주말이었다. 창밖은 금방이라도 함박눈을 쏟아낼 듯 잿빛이었고, 우리는 그 핑계로 낡은 자취방에 틀어박혀 온종일 뒹굴었다. 내가 끓인 라면을 먹고, 함께 영화를 보다 스르르 잠이 들었다 깨어났다.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방 안을 감싸던 미지근한 온기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낡은 보일러가 멈춰 있었다. 온수는 끊겼고, 싸늘한 냉기가 창틀을 비집고 들어와 발목을 시리게 했다.
“어떡하지… 하필 오늘 같은 날. 수리 기사님도 안 올 텐데.”
나는 당황해서 보일러 조작기를 몇 번이고 눌러봤지만 액정은 깜깜무소식이었다. 속수무책인 상황에 안절부절못하는 내 옆에서, 너는 의외로 침착했다.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이럴 땐 일단 제일 두꺼운 옷부터 꺼내 입는 거야.”
너는 익숙하게 내 옷장에서 가장 두꺼운 스웨터를 찾아 입고, 내게도 낡은 후드 집업을 찾아 어깨에 걸쳐주었다. 그러고는 주전자에 물을 끓여, 따뜻한 믹스커피를 타 내 손에 쥐여주었다. 차가웠던 손가락 끝으로 온기가 천천히 퍼졌다. 너의 지혜로움은 언제나 이런 사소한 순간에 빛났다.
“미안해. 춥게 만들어서…”
나의 자책에 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렇게 있으니까 더 좋다. 꼭 우리만 아는 비밀 아지트 같아.”
너는 방구석에서 먼지 쌓인 양초 몇 개를 찾아와 불을 붙였다. 방에 불을 끄자, 흔들리는 촛불이 방 안의 그림자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책상 구석, 영어 연극제 때 썼던 플라스틱 줄리엣 단검 위로도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우리는 두꺼운 이불을 함께 뒤집어쓰고 그 안에 우리만의 작은 온기를 만들었다. 너는 라디오를 틀었다. 지지직거리는 소음 끝에 익숙한 음악 프로그램이 잡혔다. 어둠과 불편함이 따뜻한 음악과 우리의 체온으로 점점 채워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평소에는 하지 않던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자의 어린 시절, 가족에 대한 기억, 혹은 남들에게 말하기 부끄러웠던 사소한 두려움 같은 것들. 변변찮은 내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 그 공간에서, 너는 나를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모든 것을 보듬어 안았다. 그날 밤, 나는 깨달았다. 우리의 사랑은 완벽한 조건 속에서만 빛나는 것이 아니라, 이토록 초라하고 불편한 현실의 틈새에서도 서로에게 기꺼이 담요가 되어주는 단단한 무언가라는 것을.
사귀는 2년 동안, 나는 나답게 너는 너답게 변해갔다. 나의 ‘근본’은 덜 고집스러워졌고 너의 ‘취향’은 더 사려 깊어졌다. 우리 사이의 마찰은 우리를 더 뜨겁게 만들었다. 같으면 신기했고 다르면 재미있었다. 같음은 우리가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는 신호였고, 다름은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는 증거였다.
가끔 다퉜다. 음악을 누구 걸로 시작할지, 라면은 어떻게 익힐지, 자막이 다 올라갈 때까지 버틸지. 작은 전쟁은 늘 빨리 끝났다. 휴전 협정서는 짧았다. 키스 한 줄, 라면 한 젓가락으로 충분했다. 너는 내 버릇을, 나는 네 버릇을 닮아갔다. 노래방에서 내 입은 ‘아로하’를 먼저 불렀고, 너의 이어폰에는 ‘화장을 고치고’가 흘러나왔다. 그 작은 항복들이 우리를 자라게 했다. 사랑은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라, 오늘의 나를 어제의 나에서 조금 덜어 너에게 건네는 기술이었다.
그리고도 여전히 아쉬웠다. 더 듣고, 더 먹고, 더 보고, 더 안고 싶은 마음. 하지만 그 아쉬움은 이제 결핍의 구멍이 아니라 내일을 부르는 작은 종소리였다. 우리는 그렇게, 같은 노래를 다른 귀로 듣고, 같은 라면을 다른 혀로 먹으며, 같은 영화를 다른 눈으로 보고도, 같은 곳으로 걸어갔다. 우리의 사랑은 단 한 번의 완벽이 아니라 매번의 미세한 수정으로 반짝였다. 스탠드 갓에 얇은 먼지가 조용히 내려앉았다. 그 먼지가 빛을 한 번 반사했다. 우리는 어제보다 오늘을, 노랫말 끝의 여운만큼 더 사랑했다.